한미 FTA 관련, 외교통상교섭부는 트윗을 통해 6일 "한미FTA 의료 민영화를 경제자유구역에는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약값 상승, 영리병원 허용 문제, 의료민영화에 따른 의료비 상승 문제 등이 괴담 수준을 넘어 걱정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제 음식물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지던 원시 공동체 사회처럼, 아픈 몸도 스스로 돌보아야 하는 시대가 오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본다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선조가 허준에게 명하여 짓게한 의서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보통 작가나 책이 너무 좋으면 아프지마라, 병들지마라 염원하게 된다.
하지만, 고미숙의 이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다 읽고난 지금...이분이 아프셨던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셨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실 수 있으셨을테고,
그러다보니 고전평론가답게 '동의보감'에 관심을 갖게 되셨을테고,
그래서 '리라이팅 클래식015-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라는 멋진 책이 탄생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그동안 고미숙님의 책은 제법 챙겨서 읽었다.
요번 책은 '의학적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의학서가 아니라 인문학적 관점에서 읽는다'는 전제가 달린다면,
이분의 것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문학 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책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읽으면 인문학책이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동의보감'은 판형과 해제를 달리하여 참 여러번 읽었었다. 아니, 외웠었다.
하지만, 그렇게 여러번 보면서도...동의보감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겠다는 생각은 고미숙님의 이 책'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만나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다시 말해, 무작정 외웠을 때는 참 어렵기만 한 책이었어서...
'동의보감'의 원래 취지인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쓰여진 것 같지 않아, 섣불리 누구에게 권할 수 있을 것 같지않았는데,
인문학 책이다 생각하고 고미숙 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니,
어느 순간 문리가 트인 듯...다양한 관점에서 여러가지 것들이 보여 참 쉽고도 재밌어서 누구에게든 침튀기며 권할 수 있겠다. 

그러다보니, 조선의 임금 선조도 백성을 사랑하사...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동의보감'같은 의서를 편찬하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의 2MB께서는  한미 FTA 비준안에 서명을 하는 것으로 의료민영화를 가속화하여, 돈 없는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아픈 몸을 스스로 돌보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하는 꼴이니 아이러니컬하기 그지없다.

처음 접근하기까지의 장벽이 두터워서 그렇지, 일단 접근하고 나면 책이 술술 읽힌다.
그 옛날, 의학이란 것이 '누구든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지침서여야 한다'는 깨어있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덕분이지만 말이다. 
선각자 허준은 "고인들이 처방에 넣은 약재의 양과 수가 너무 많으니 가난한 집에서 어찌 이것을 감당하겠습니까?"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약의 양과 수는 대폭 줄이고 약효는 최대로 끌어올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콩나물, 도라지, 파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물을 약재로 활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조선, 중국,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친 동의보감이지만, 실상 그 시대엔 일반백성에게까지 파급력이 미치지 못했나보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연암 박지원의 경우 은 닷냥이 없어 이 책을 사지못했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동의보감을 얘기할때 '삼교회통三敎會通'이니, '동양의학사의 방대한 산맥'이니 따위의 말들을 하지만...
그건 의학적 접근을 할때나 필요한 부분이고, 고미숙님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부분에 주목하였다. 

그 당시 의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 의서라서 우리 실정에 맞지 않았다.
이 얘긴 바꾸어하면, 중국의 질병엔 중국의 약재를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실정에 맞는 것이고,
우리의 질병엔 이땅의 약재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에 맞는다는 것이리라. 

이땅에서 지지고 볶고 몸 보대껴 살아가는 우리에겐,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땅의 자연과 풍광 속에서 자라난 우리의 농수축산물이 우리의 실정과 섭생에 잘 맞을 것이다.

made in USA 농수축산물을 먹고 병이 걸리면, 경제자유구역 안에 있는 made in USA 의사에게, made in USA 약을 지어 먹고 나야하는 것인가?
그럼 국적은 USA인가 KOREA인가? 

암튼, 이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읽는다는 건...
'아픈 몸을 스스로 돌본다'에서 '아픈'이 아니라 '스스로'에 무게가 실리는 것 일게고,
스스로 돌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말끄러미 객관화시키고 타자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것 일게다.
타자화해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또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 일게다.

* 사람들은 보통 두려움의 대상이 외부에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작 그 두려움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자신이다. 약간만 마음에 틈이 생기면 순식간에 이기심과 사악함이 침투하여 온갖 망상을 짓고 그 망상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물어뜯어 버리기 때문이다. 고로, 경계하고 경계해야 마땅하다.(97쪽) 
* 색에 빠진 자가 잃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성은 금기의 대상이 아니라 쾌락의 활용과 관련된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양생술이란 특정 질병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포괄할뿐더러, 외부적으로 주입되는 의술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을 스스로 조율하는 '삶의 기술'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소통의 지혜이자 자기배려로서의 기술인 것.(139쪽)
* 그런데 타자는 바깥에만 있지 않다. 내 안에도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많다.(182쪽) 

이런 알쏭달쏭한 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 자연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름답지 않지도 않다. 자연은 본원적으로 미추의 경계를 떠나 있다. 봄에는 살리지만 가을에는 죽인다. 여기에는 가차가 없다.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 자연에 있어서는 죽임과 살림이 다르지 않다.(123쪽)
* 잘 산다는 건 아플때 제대로 아프고 죽어야 할때 제대로 죽는것, 그 과정들의 무수한 변주에 불과하다.(430쪽) 

알쏭달쏭한 얘기의 정점은, 선과 악의 개념을 얘기할때이다.
선과 악이 적대적으로 대립하지 않고,
언제든 선은 악으로, 악은 선으로 전화할 수 있단다.
선과 악은 '기의 분배'를 가지고 나누는데...가볍고 맑은 것이 선이 되고, 무겁고 탁한 것이 악이 된다.
잘 통하면 선이고, 꽉 막히면 악이다.
막히면 집착에 빠지고 통하면 사방과 연결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의 분배, 기의 순환이라고 했을때는 좀 어려운 것 같지만...
'기'의 자리에 눈에 보이는 '돈'을 대입시켜 보면 한결 이해가 쉽다.
하지만, 이런 얘기의 최종 단계는 당연히 '마음'의 순환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마음'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순환이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則不痛 不通則痛)

여기서 가지를 뻗어나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태과(太過)와 불급(不及)이다.
사실상, 모든 병원에서는 사람들을 아프지 않은 상태(不痛)-태과와 불급의 중간 상태로 끌어올리는 것에만 집중할 뿐...
그 이상에는 관심이 없다.
아프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아프지 않으려고'가 아니라 '나으려고' 병원에 간다고 얘기하지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근본치료(원인치료)라기 보다 대증치료(증상치료)가 되는 경우가 많다.

* 무릇 의사란 '신명과 통하고 조화를 부려 요절할 사람을 장수하게 할 수 있고 장수할 사람은 신선이 되게'해야 한다.(137쪽)
* 죽어야 할 때 잘 죽게 하는 것도 의사의 소임이다. (300쪽) 

이런 알쏭달쏭한 얘기를 한가지 더 하자면, 꿈은 사라져야 한다. 

꿈은 아름답다.
꿈은 이루어진다.
꿈꾸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라.
You can do it! 
Boys, be ambitious!

이때 꿈이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할 것이다.
지금 현재의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내가 도달하거나 이루어야 할 목표를 바라보는 것인데...
꿈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비하가 커질 것이고,
꿈을 이루면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것이다.
결국 현재를 충실히 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수 있다.

"옛 진인들은 잘 때 꿈을 꾸지 않았다. 잘 때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신(神)이 온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행이 높아지면 자면서도 깨어 있게 되는데, 이 말은 불면증이라는 뜻이 아니라 잠을 잘 때도 무의식이 청정하게 살아 있어서 일체 망상에 끄달리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결국 좋은 꿈과 나쁜 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은 그 자체로 몸과 마음의 병리적 표현인 셈이다. 따라서 건강하고 청정한 삶을 위해서 꿈은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생리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표상의 단위에서도 그러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희망이란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그것으로 인해 현재가 망각될 때 희망은 비전이 아니라 망각이 된다. 그럴 경우, 점차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고 결과적으로 그 희망 때문에 삶이 추락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일찍이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루쉰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희망은 허망하다, 절망이 그러한 것처럼." 그러므로 희망에 대한 집착이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면 그런 꿈은 마땅히 버려야 한다. 지나간 것에 매달려서도 안 되지만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끄달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박노해) 우리가 대체 이토록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 꿈을 꾸지 않는 잠이 가장 건강하다는 건 그런 점에서 참으로 소중한 의학적 지혜다.(192쪽) 

하지만, 난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갖지 말라고는 못하겠다.
꿈을 꿀 수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때론 절벽 끝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ㅠ.ㅠ 

'꿈'과 더불어 내가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버거워하는 건, '이미 익숙해진 것들과의 작별'이다.

우리의 몸 또한 마찬가지다. 건강의 지표는 식스팩이나 롱다리가 아니다. 가장 먼저 소화가 잘 되는가? 그리고 똥오줌이 잘나오고 있는가? 그리고 이미 익숙해진 것들과의 작별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는가? 핵심은 거기에 있다. 어디 생리현상만 그러하랴. 인생살이 또한 마주침과 결별의 끊임없는 연속이 아니던가. 낯선 존재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시에 익숙해졌을 때 기꺼이 결별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 이떤 잉여도 남기지 않을 때 '지금, 여기'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똥오줌을 비롯한 내 안의 타자들이 전해주는 메세지다.(219쪽)

한미 FTA 의료 민영화 관련, 고미숙님도 상당히 걱정스러웠나 보다.
이런 재치있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좋은 병원이란 명의가 있는 곳이 아니라, 첨단의 장비를 갖춘 곳을 지칭한다. 이 장비의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려면 검진과 수술을 일상화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환자의 몸을 보는 궁극적 척도는 '자본'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검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예전에 대책없이 무당을 찾아가던 때랑 비교해도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많이, 비싸게, 자주'할수록 건강해질 거라는 믿음. 우리시대가 앓고 있는 새로운 미신이다.(300쪽)

* 덤으로 일상에서 간과하기 쉬운, 소리를 잘 다스리기 위한 생활규칙 몇 가지.
1. 해가 진 뒤에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2. 식사할 때는 말하지 말 것.
3. 누운 채로 크게 말하면 안 된다.
4. 길을 걸을 때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말을 하고 싶으면 반드시 멈춰선 후 말을 해야 한다.

* 언급된 책 중 좋았던 책

 

 

 

 

* 언제부턴가 박노해는 읽지 않았는데, 박노해가 계속 언급된다.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고...그냥 싫다~ㅠ.ㅠ
 '발바닥 사랑'이라는 시는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마라라>시집 속에 있나 보다.
 
* 이한철의 '안아주세요'라는 곡이 언급되었는데, 난 10cm의 '안아워요' 이곡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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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12-01 18:29   좋아요 0 | URL

잘잘라 2011-12-01 18:51   좋아요 0 | URL
예전에 대책없이 무당을 찾아가던 때랑 비교해도 훨씬 더 심각한 수준.. 동감. 의료 민영화 하면 그나마 '좋은 의사' 더 만나기 어려워지겠죠? 음.. 오랜만에 페이퍼, 저도 사서 쟁여둔 책이라 반가웠는데, FTA.. 의료민영화.. 갑갑~하네요. ㅠㅠ

감기는 다 나으셨어요?

blanca 2011-12-01 22:59   좋아요 0 | URL
이 책 몇 번이나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빼곤 했는데 양철나무꾼님의 글을 읽으니 결국 읽어야 겠네요. 고미숙씨의 책을 읽어보지 못해서 망설였거든요. "죽어야 할 때 잘 죽게 하는 것도 의사의 소임이다" 참 와닿아요. 요새는 이것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2011-12-02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12-02 10:20   좋아요 0 | URL
원래 이 나라가 '각자도생'의 정책을 펴는 나라지만,
의료 하나는 탄탄하다고 하던데, 이제 그게 무너지면 돈없으면 죽는 시대가 오겠군요.
보험 탄탄하게 들지 못하면 병원 문앞을 전전하다 죽는다는 뉴스를 듣는 시대가...
그게 내 일이 될 수도 있고요...

Shining 2011-12-02 17:34   좋아요 0 | URL
똑부러진 말투와 적확한 표현, 매력적인 책에 대한 매력있는 소개.
좋은 리뷰,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이란 걸 문득 깨닫게 하는 글입니다.
한 자 한 자, 공들여서 또박또박 잘 읽고 갑니다.
고마워요 양철나무꾼 님. 이런 글을 써주셔서, 읽게 해주셔서요-_-*

숲노래 2011-12-03 00:09   좋아요 0 | URL
병원이 병을 고치지는 않잖아요.
밥을 내가 내 몸에 맞추어 장만하고 차려서 먹듯
병도 내가 내 몸을 살피어 알맞게 다스려야 맞아요.

요리사나 영양사가 시키거나 가르쳐야
밥을 차릴 수 있지 않아요.
의사나 약사가 가르치거나 시켜야
내 병을 내가 알아채지는 않는답니다.

무얼 먹고 무얼 입으며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내 몸이 아픈지 튼튼한지 달라져요.

프레이야 2011-12-03 21:35   좋아요 0 | URL
고미숙님의 이 책 장바구니로 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