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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어제 ㅁ양이 '자긴 사랑을 해야 해..드라마도 보고..^^' 이런 문자를 보내왔을 때만 해도,
'ㅋ,ㅋ...점심시간에 잤어. 드라마 볼 시간 있음 사랑을 해야 하고, 사랑할 시간 있음 잠을 자겠어. 상태가 메롱이야'
하는 답 문자를 보냈었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또 얼마전 '지인과 도인' 얘기를 들은 몸도, 마음도, 직업도 자유분망한 내 오랜 친구는,
말 안해도 뭐든 다 안다는 듯,
나를 아프게 한 것도 사람이고, 그런 사람의 빈 자리를 대신 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사람 뿐이라며...
1,2,3...리스트를 뽑아 내 코 앞에 " 입맛 맞춰 골라봐~"하며 들이댔었다.
"또 다른 사람이라니, 친구야..."
말 안해도 다 알아주는, 한참을 어긋나 앞서 나가는 이 친구의 자유분망한 사고에 속으론 경악을 했었는데,
(당근, 이 책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오늘은 이 친구에게도, 내게 땡큐한 문자를 보내준 ㅁ양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나,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기실, 생각이 이리저리 널을 뛴다는 소리를 듣는 나는...개떡 같이 말해도 콩떡 같이 말해주는 사람에게 홀릭하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이 사람은 말을 안해도 알아듣는 묘한 재주를 지녔다.
이 사람이 건네는 시에 대한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뚫고 들어와 심장에 콕 하고 박혔고, 나를 어루만졌으며, 나를 울고 헤헤거리고 의기소침하고 지분거리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 쓴 산문들은 다소 헐거워 내 손가락이나 마음 한자락을 집어 넣어 그를 만지고 쓰다듬고 침 발라 넘길 수도 있겠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이,
"세상의 모든 정은씨, 살아서, 꼭 살아서 행복하십시오."(123쪽)
라는 구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이 사람도 '내키는 대로 아무 네나 펼쳐 읽다가 '이것이 날개다'라는 제목의 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시를 읽는데, 기습처럼 눈물이 고여들어, 그 눈물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도사려야 했다.'고 하고 있으니, 나의 눈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요즘 나는 제대로 '비틀리고 구겨지고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몸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르려는 몸부림 따위는 헛되이 느껴지던 터였다.
'파시즘의 시대에 자연을 노래하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를 내 삶에 대입시켜 보자면, '희망'이나 '행복'따위를 얘기하는 게 가혹한 형벌 같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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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 '이것이 날개다' 중에서
첫째 연이다.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을 제외한다면 (이 구절, 참 야속하고 절묘하다) 죄다 덤덤한 진술로만 돼 있다. 시인이 이런 식으로 시치미 떼면 읽는 쪽이 외려 조마조마해진다.(121쪽)
(...중략...)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 나왔다, 다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 '이것이 날개다' 중에서
마지막 연이다. 이제야 시인이 끼어든다. 정식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겨우 말했다. 몸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르려 몸부림쳤던 일생이었는가. 그리되어서 라정식 씨의 얼굴은 이제 이토록 고요한가......시인은 이렇게 이해해버렸고, 읽는 나도 수긍해버렸다. 그래야 망자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으니까.(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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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골랐다면 이런 류의 시는 안 읽었을 것이다.
읽다보면 눈물을 뚝뚝 떨구게 마련인데...
(나는) 너무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일상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를 부러 재현하고 동정의 눈물을 흘리듯 여겨져서이다.
나는 '부러' 재현하는 그것을 막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인은 "좋겠다. 죽어서......"라는 아픈 말을 모질게 옮겨놓는 것으로 진심을 얘기했고,
이 사람은 말을 안해도 알아듣는 묘한 재주를 발휘하여,
시인이 끝내 절제한 그 문장을 경박한 내가 대신 써야겠다. "세상의 모든 정은씨, 살아서, 꼭 살아서 행복하십시오."
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시 쓰는 마음이 나온다.
당연히 시를 읽는 마음도 나온다.
시를 쓰는 마음에 시를 읽는 마음이 널을 뛰듯 화답을 하고 있는데,
나는 시 대신 사람 또는 사랑을 대입시켜 보기도 했다.
김경주의 몽상가를 얘기하며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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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너를 사랑해서 내 뒤편엔 무시무시한 침묵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
- '몽상가' 중에서
그의 첫 시집에서 이보다 더 잘 만들어진 시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런 문장들 앞에서 유독 서성거리게 된다.
...우리를 사로잡아 사유를 강제하는 것은 절차탁마된 노회한 시들이 아니라 온몸이 악기인 자가 연주하는 이와 같은 혼신의 노래들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때로 난해하지만 그 난해함은 읽는 이를 소외시키지 않고 외려 빨아들이는 이상한 난해함이다. 이모든 것이 다 '사유하는 감각'의 권능일 것이다.(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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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마음 하나를 배웠다, 읽는 이를 소외시키지 않는 마음.
문태준을 두곤 이렇게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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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 자신의 마음을 '뒤란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에게 몽땅 주는 방심(放心)이 먼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그런 것들의 존재를 혼신으로 호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떤 것들이 단지 '있다'는 사실만을 지극하게 기록한다. 깨달음의 발설을 자제하고, 감탄문이나 느낌표를 아낀다. 혹은 그럴 때 아름다워진다.출석을 부르는 시간만큼은 모든 학생들이 평등해지듯, 그가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고 그 존재를 호명해줄 때 만물은 서정적 사해동포주의로 느릿느릿 물든다.(3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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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마음 또 하나, 그런 것들의 존재는 혼신으로 호명하되 깨달음의 발설을 자제한다.
이 사람의 문태준을 향한 마음을 옮겨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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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인정의 시대에 그의 시는 갸륵하다. 그의 다정(多情) 때문이다. 이조년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라 했다. 병 맞다. 이를 다정증이라 부르려 한다. 문태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다정증 환자다. 이 환자가 우리 딱한 '정상인'들의 가슴을 찌른다. 저 환자의 눈에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휑하고 뻔한 인생일까 싶어진다. 그래서 돌연 아연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란 그런 것이다. 언제 그 맥이 끊어질지 모를 이 소중한 환후(患候)를 우리는 아껴 기린다. 그는 낫지 마라. 그래야 우리가 산다.(3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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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를 향해선 이렇게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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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문을 다 열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마음을 놓아 버리고 드러누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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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이 아니라 '방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편히 내려놓아야 그 틈으로 시도 찭아들어오곤 하는 거이다.
그 방심은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열린 마음속으로 타인들의 곡절이 흘러들어온다. 그의 시들은 사연을 품고 있을 때 특히 아름다워진다.(4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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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마음 또 하나, 마음을 편히 내려놓기.
이 사람의 사랑법, 연애하는 방식은 덤으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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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좀 들어야 한다. 네 말이 내 모서리를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너의 사연을 먼저 수락하지 않고서는 내가 네게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서정시가 세상과 연애하는 방식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너의 사연을 받아 안지 않으면 내 말이 둥글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손택수는 문태준과 더불어 1970년대산 서정시의 본령이다. 방심한 자가 뜨는 사랑의 눈 덕분에 얻은 성취라고 믿는다.(4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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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인적으로 깨달음을 얻었던 구절이 있는데,
지금 내가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상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에 충분히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47쪽)
나는 충분히 지극했고... 고로, 나는 지금 떠나야 한다.
<읽어야 할 것 투성이>는 내 직업과 관련하여 몰입하여 읽었으며,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기로 마음을 굳힌 건 <여인숙으로 오라>이다.
제대로 남자이다.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옮기기에 길기도 하지만, 너무 좋아서 나눠 갖기 아깝다.
시에 노이즈를 도입하는법(136쪽)도 나오고,
시인을 향하여 '낫지 마라'라고 모질게 말해 놓고, 시인의 직업은 문병(137쪽)이라고 얘기한다.
또 어디서는 시인의 직업은 발굴(154쪽)이라고 얘기한다.
존 버거를 인용하지 않아도 될 뻔했다.
시의 일은 부상당한 이를 돌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위에 시 쓰는마음, 시 읽는 마음을 살짝 바꾸기만 하면...시란 마음의 빨간 약임을 알겠다.
좋은 시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할 때, 그것은 지금 이 세계가 충분히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들이 이 세계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뜻(196쪽) 이란다.
그를 사랑하기 위해선 그가 들려주는 사랑론을 귀담아 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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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 한 쪽이다.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다. 나는 계속 질 것이다.(1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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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자신에게 백전백패할 것이다.
no woman, no love
제목을 신형철 식으로 옮겨보자면 이렇다.
마오, 여인아, 사랑하지를 마오......땡!
여자가 없으면 사랑도 없다......땡!
여자가 없으니 사랑도 못하겠네......땡!
그대, 사랑할 일만 남았다......딩동댕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