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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목공소 - 상상력과 창의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김진송 지음 / 톨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너무 똑똑한 책.
뭐라고 다른 수식어를 붙여줘야 할지 모르겠다.
김진송님을 표현하라면, '게으름뱅이를 위한 테레비 시청용 두개골 받침대' 하나면 되지 않을까?
책 겉표지와 띠지에 수많은 말들이 나오는데, 그 말들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그 말들이 틀린 말이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몸통을, 또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다리를, 또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꼬리를 가지고 달리 표현하듯...
커다란 코끼리의 일부분만을 표현하는 말이어서 추상성이 구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긴 돌도 있고, 저렇게 생긴 돌도 있다지만...
그걸 그냥 나열하였을때는, 다시말해 장황하게 늘어놓았을때 우리는 그걸 자갈밭이라고 부른다.
돌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우리는 그걸 꽃밭이나 보석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런 나무 저런 나무가 있어도 밑둥이나 가지가 댕강 잘리워진 나무일때 우리는 그걸 폐목이나 장작이라고 부른다.
폐목이나 장작이 누군가의 상상력에 의해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는 걸 보는 일은 기쁘고 설레인다.
이 책을 만나기 전 상상력이라고 하면 이른바 '환타지', 생각이 이리저리 널을 뛰는 걸 생각했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여, 머리를 옵션으로 들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지만...쓸모있거나 건설적인 생각이었던 적은 없다.
그냥 많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다듬이지 못했을때는 잡념에 불과하다.
이 책은 상상력을 어떻게 단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상상력을 단계적으로 발전시키는 궁긍적인 목적은 소통이라는 것을 조곤조곤 예를 든다.
물질의 화학적인, 또는 물리적인 변화처럼...
상상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상호 유기적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준다.
백조가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몸통을 최대한 넓혀 부력을 이용하는것도 중요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필사의 발길질을 해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흡사 톱니바퀴가 맞물려야 돌아가는 이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보면 그런 톱니바퀴의 이치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이런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이치가...변화이기도 하지만,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면 봄이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위해선 꽃이 져야하는...순리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벌레구멍(worm hole)이 사과의 반대편으로 가기 위한 최단거리인지는 모르지만,
그 최단거리를 위해서 벌레는 사과를 조금씩 갉아 구멍을 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상상과 현실은 구분되어 있거나 단절된, 서로 다른 공간이 아니라 뒤섞여 있는 동일한 공간이다.(124쪽)
를 이해하는데, 사차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듯도 하다.
그는 불안을 상상력의 원동력으로 보았던 것 같은데, 그걸 '벌레'라고도 칭한다.
개미들의 전쟁을 살펴보고 실감나게 기록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흑산도의 물고기를 기록한 정약전, 앤토니오 수전 바이어트의 '천사와 벌레' 등을 언급하며...할일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자연을 성찰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특유의 반어법을 구사한다.
종국에는 카프카의 변신도 등장한다.
사실, 이 책에는 글을 쓰고 목물을 만드는 그의 이중적인 특성 상 이미지와 텍스트 등 어려운 용어를 규정하고 들어간다.
'상상력은 창조성이다'라는 얘기를 하기 위하여 '인식된 모든 것은 상투적이다.'라는 대조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가 진짜 얘기하려는 것을 나는 이 책의 끝부분에 가서야 짐작할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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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리란 나무의 품성이다. 나무는 단단하고 무른 정도, 거칠고 부드러운 정도, 결의 방향과 치밀함의 정도 등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 나무의 목리를 파악하고 나면 비로소 구조와 형태가 결정된다. 물질의 기능 형태 색채 구조 등등은 심미적 기능에 우선한다. 작가의 기분 태도 감정 정서 등등은 창작활동에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목수에게 그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개인적 성향이나 취향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심미적인 요소조차 목수에게는 기능과 구조의 문제로 귀결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바우하우스의 이념도 따지고 보면 목수가 추구하는 생각과 다를 바가 없다. 기능에 충실한 기하하적 구조는 인위적인 미학을 중시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오직 기능에 충실한 자연이 자연스럽듯이 기능에 충실한 물건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미학을 가져다 준다.(24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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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을 준비하는 젊은 친구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는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 착실하게 여러 목공학교를 돌며 목공수업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나의 조언을 구하려 했다.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가지였다."그냥 하세요." 더 이상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없었다. 도대체 나무를 깎는 데 무슨 절차가 필요한가? 나무를 구하고 연장을 사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 깎기 시작하면 될 것 아닌가? 오히려 너무 많이 배워 알고 있는 것이 그에게 방해가 되는 듯 싶었다. 그는 어떤 나무를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고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를 결정하고 여기에 맞는 가장 적절한 연장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여...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자기에게 부족한 내용을 늘어놓았다. 그가 말한 내용은 부족하거나 필요한 내용이 아니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할 대 끌 한 자루와 망치와 톱 그리고 대패 하나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라는 조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목수일이 그렇듯이 일일이 누구에게 배우는 것보다 혼자서 그냥 하는 게 백번 더 나은 일이 세상엔 많다. 나무가 쪼개지거나 구멍을 잘못 뚫으면 나무를 하나 버리고 다시 작업해야겠지만, 그로써 얻어지는 목리와 방법에 대한 지식은 갑자기 엄청나게 증폭한다.(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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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본능과 경험과 지식이 분리되어 나타나는 법이 없다.
참 좋은 책이지만,
자아를 통해 타자를 인식한다는 말을,
인간만이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너무 많이 에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