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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보고 싶은데 못보고 찜해 놓은 영화가 여러 편이었는데, 그 중 이 영화를 택한 건 영화 OST때문이었다.
오랫만에 베토벤을 들을 욕심에 영화를 보기 전부터 설레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난 '버, 버, 버, 버디' 조지 6세가 아니라, 그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렸고...
급기야 New Trolls의 'adagio'를 그의 배경음악으로 깔아주고 싶은 마음에 시달렸다.
이 노래를 떠올린 건 to die, to sleep may be to dream이라는 구절 때문이었는데,
영화에서는 to be or not to be...라고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가 연극 오디션에서 읊어댄다.

만약 내가 언어치료사라면 하고 봤을때...라이오넬 로그의 치료법은 아주 훌륭하지만,
그리고 훌륭한 결과를 끌어냈지만,
사실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는 무면허에, 무학위에, 호주 이민자 출신의 하층민이다.
처음부터 버디와 마음이 잘 맞은 것도 아니다.
버디는 말을 더듬게 된 원인은 숨기고, 말을 더듬는 현상만을 고치고 싶어한다.
반면 로그는 원인을 알려고 버디의 과거, 마음 속 트라우마를 끄집어 내려한다.
상대가 마음 속에 감추고 있는 것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필수이다.
로그는 치료를 받는 사람이 왕이든 왕비이든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자고 한다.
로그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적용한다.
그 적절한 치료법이란 무한 격려로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과 프랜드쉽이다.
사실 어떤 질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진단명이나 치료법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얘기하지 못해 생긴 속병을 예로 들자면,
'대나무 숲에 가서 소리쳐라'는 대증처방이 아니라,
대나무 숲을 물색해주고, 그냥 소리치는 게 아니라 목이 쉬도록 소리쳐야 뭉친 응어리를 다 쏟아낼 수 있다는 경험처방처럼 말이다.
이렇게 볼때,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만든건 아내와 아들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얘기에 지루해하는 아들들과 끝까지 경청하는 아내가 혼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버디의 아내도 그렇고, 이래서 내조란 것이 필요하구나, 가화만사성,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구나 싶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버, 버, 버, 버디를 연기한 콜린 퍼스에 관해서이다.
그의 연기는 아주 훌륭했지만(급한 성격과 그에 따른 분노의 표현, 말을 더듬는 사람의 답답함을 표현해 내는 것까지),
그 같은 체형을 가진 사람은 말을 더듬을 수 없다.
말을 더듬는 사람의 체형은 급한 성격을 대변하듯 더 날렵해야 하고,
그의 걸음걸이도 날라야 하는데 풋 플레이트까지 지키는 것이 너무 안정적이다.
아니나 다들까...남겨져 있는 실제 조지 6세의 사진을 보니,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버디의 아내 경우, 국민을 대면하는 검소한 캐릭터로 알려졌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었는지...모피와 털코트로 휘어감은 사진이 여기저기서 포착되어 아쉬웠다.

마지막 연설을 앞두고 '세이 투미 프렌드'라고 다독이는 로그가 매력만발이었다면,
버디는 '왕은 국민을 선동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발상 하나만 멋졌다.
그리고 영화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다.
Lionel and Bertie remained friends for the rest of their lives.
화엄사 편지
- 박세현 -
내친 김에 구례 화엄사까지 내려왔습니다
섬진강을 좇아오면서 내내 물살을 적시던
어린 겨울빛에 마음 뺏겼습니다
지리산 지락에서 일박하던 날
머리맡에서 글썽대던 저녁별들의
수화를 보았습니다
조금 건방지게 말하고 싶더군요
어떤 언어도 인생을 대신하지 않겠지요
인생이 언어를 대신하지 않듯이요
저녁예불 끝난 화엄사 입구에서
마른 잎 하나 주워 들었습니다
내일은 더 밑으로 내려가 보렵니다
나보다 먼저 내려가 겨울빛 안고
기다리고 있을 길들을 생각하며
오늘은 화엄사에서 저물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