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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ㅣ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평점 :
'신기생전'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황당해서, 흡~숨이 멎는 줄 알았다.
부용각이라는 기생집이 현존한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드라마라고 하는데,
부용각을 게이샤에 비견하며 외교의 최일선쯤으로 표현한다.
그래, 내가 기생이나 게아샤, 오이란 등에 대한 개념이 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과연 기생이 게이샤에 비견되도 좋은 건지,
또 부용각의 그녀들을 조선시대 기생에 견주어도 좋은건지는 모르겠다.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作, 1872년 메이지 유신 시기의 유명 기생 오이란 (花魁)을 그린 초상화>
그런 경우가 있다.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한데 나한테는 별로인 경우. 주로 일본 장르소설에서 만난다.
이 작품이 내게 그랬다.
추리소설 이론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잘 짜여진, 하나 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추리소설의 이론들을 잘 담고 있는 작품이지만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등장인물 한사람이 끝부분에 가서 우리나라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사회물 미스터리를 만들기 위한 억지쯤으로 보여진다.
어떻습니까?
그동안 이 책을 읽으신 분들...별 다섯개를 꽉꽉 채워줄 정도로 재밌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정녕 일본 추리소설의 묘미를 모르는 것이로군요~ㅠ.ㅠ
암튼 경찰물 답게...
상사의 말을 안듣고 제멋대로 구는 청개구리가 꼭 있게 마련인데...
이 책에선 요시키 형사가 그런 인물이다.
책이니까 제멋대로를 자기 소신대로 라고 미화시킬 수도 있고 그래서 쫌 멋지다고 할 수 있지만,
상명하복 체계가 확실한 일본에서, 그것도 경찰이란 직업의 입장에선 완전 삐딱선이다.
"...주임님은 범인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죄상이 변할지도 모릅니다. 주임님의 사고방식은 사람을 죽인 녀석은 전부 극악인이고 다 참수해야 한다는 거로군요. 그러나 실제로 살인에도 랭크가 있습니다. 상품의 요금을 내라고 해서 주인을 죽였다는 해석으로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전혀 없지만 진상은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거나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죄상이 변하는 겁니다."(205쪽)
"취미활동이 끝났으면 이제 제대로 일해."
그렇게 말하고 그는 등을 휙 돌려 팔자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세상은 너 따위가 머릿속에서 짜 맞추는 스토리대로는 돌아가지 않아. 바보는 바보, 범죄자는 범죄자다. 쓰레기는 쓰레기라고. 이번 일로 잘 알았지."
(여기서 가만히 있지 않고~^^)요시키는 주임을 쫒아가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는 어깨를 잡아 자신 쪽으로 돌려 멱살을 잡고 주임의 등을 시멘트벽에 확 밀쳤다. 계단 전체가 쿵 하고 진동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으스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떤 깡패 자식에게 평생 존댓말을 해도 상관없고 권력지향 따위 요만큼도 없는 평화주의자다. 하지만 이렇게 온순한 나를 때때로 당신 같은 남자가 광포하게 만들어. 당신은 이 사건이 뭔지 알고 있나? 이 사건이 일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나 있느냔 말이다! 아직도 치매 걸린 노인이 소비세의 의미를 몰라서 발작적으로 여주인을 죽인 사건이라 생각하겠지."
"공부하지 않고, 일하려 하지 않고, 추적하랴고 하지 않는 그런 놈들이 꼭 우쭐거리며 타인을 경멸하려 들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서. 하고 싶으면 해라, 나는 상관없으니까. 그러나 그 처사만은 참을 수 없어! 나를 바보라 부르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그 노인을 쓰레기라 부르며 이 이상 힘들게 하는 건 참을 수 없어. 가만히 놔둘 수 없단 말이다!"
"당신에게 알아달라고는 안 해. 그러나 그냥 놔둬. 내 바람은 단 하나, 내 보잘 것 없는 인생에서 만나는 일에 대해 백은 백이고 흑은 흑이라고 말하며 죽어가고 싶어. 다만 그뿐이다. 방해하지 마."(510쪽)
암튼 내용 상으론, 요시키형사 제대로 멋있다.
마지막 구절 같은 경우, 고독의 냄새까지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살면서 그럴 수 있을까?
만나는 일에 대해 백은 백이고 흑은 흑이라고 말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또는 만나는 일들이 어디 '백이면 백, 흑이면 흑' 경계를 명확히 할 수 있는 일뿐이던가?
때로는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어물쩡거리다가 다른 경계로 슬쩍 넘어가야하지 않았던가?
난 오늘도 경계의 가장자리에 서서 경계에 속하는 대신 신발로 뭉개 경계를 흐리게 지운다.
이렇게 쓰고 끝내려고 하니, 아쉽다.
기발한 발상이 하늘을 움직이는 건 못 믿지만, 그렇다고 간절한 마음이 하늘을 움직이는 거,,,그걸 못 믿겠다는 건 아니다.
간절히 바라면 하늘을 움직이기도 하는 거, 그건 믿는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쓰고 무한 뻘짓이라고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