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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평점 :
그런 점에서, 나는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아무리 작은 이야기라도 겹겹을 풀어헤쳐 놓고 보면 그 속에 우주가 담겨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이라 해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 안에 무수한 직선과 곡선이 있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호흡을 발견하는 일, 사람들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펼친 다양한 삶의 전략을 찾아내 꼼꼼히 기술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서사의 부활이다.
-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머리말 중에서 -
'마이 프린세스'라는 드라마를 보면 갑작스럽게 자신이 공주라는 걸 알게 된 김태희가 공주의 자질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고분분투하는게 나온다.
우리나라의 왕들을 보면,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왕이 되기 위해 살아온 자들이란 생각이 든다.
왕이 된 후에도 그들이 하는 일은 왕권강화와, 왕의 세력에 대항하는 이들을 견제하는 게 전부인것처럼 보인다.
난 국사에 좀 약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가 국사를 가지고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안 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 드러나는 역사라는 건 빙산의 일각이고 나머지 부분들을 향하여 상상력을 발휘하려하면, 역사적 ‘사실’들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라며 여기저기서 브레이크를 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음껏 상상할 수 있어서 웬만한 장르소설 한권을 읽는 것보다 더 흥미로웠다. 난 저자의 상상력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었고, 저자의 이런 시도가 기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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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천’이라는 연구 주제에 매달려 있을 때 나는 역사란 무엇일까를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전통 속에서 역사는 에피소드로 둔갑될 때가 많았다. 서사가 결핍되었다. 그래서 나는 중층적인 서사를 써 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사람의 냄새가 풍겨나는 서사, 역사 속 인물들의 망설임과 혼란과 고독함이 가슴으로 전달되는 역사, 역사적 주인공들이 추구한 삶의 전략이 파헤쳐지는 역사를 쓰자는 것이다.(1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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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명탐정이란 영화를 보고 난후 정조가 너무 멋져 ‘정조’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되었다.
그래서 제목을 보고, 우리가 성군으로 알고 있는 정조와 맞짱을 뜨는 인물로 지명도가 좀 약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다 읽고 난 지금도 좀 약하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정조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었고,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고, 거기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투쟁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사실 강이천은 정치력이 출중하지도 못했고, 조직력과 지도력도 평범했지만, 그의 이런 문화투쟁을 정조는 어떻게든 억누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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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몽상에 파괴적인 힘이 있었다. 당시 몽상의 힘을 바로 인식한 이는 아마 국왕 정조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강이천의 제어되지 않은 상상력이 현실과 단단히 결합될 경우 그것은 국가를 전복시키고 성리학 중심의 조선 문화를 여지없이 파괴시켜버릴 수 있다는 걱정, 왕은 바로 그런 염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24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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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강이천이 만만하기만 한 인물은 아니다.
강세황의 손자답게, 열두 살때부터 정조의 인정을 받았다.
열일곱 살에 진사 시험에 합격한 뒤로도 왕의 특별 배려를 받은 촉망받는 선비였다.
김려, 이옥 등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조선 역사의 틀을 김탁환으로 잡은 나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 정조는 선비들에게 소품문을 금지해왔는데, 어떤 선비가 소품문에 물들어 있는지를 알아내고자 ‘박접회’라는 경솔하고 농염한 문제를 출제했다고 하는데 의도를 알아챚 못한 이옥은 그만 걸려들고 강이천은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났다(69쪽)는 구절은 흥미로웠다.
강이천의 불리한 신체조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그는 태독으로 좌시였고, 다리도 불편했다.
강이천과 함께 한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강이천은 장애가 있었고 나머지는 출신이 서자였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현실을 타개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느라 예언과 천주교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체반정과 관련한 이 책의 해석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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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중요한 사실은 위배자의 대부분이 아직은 정권의 실세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젊은층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체반정은 특정한 정파를 억누르려는 정책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집권층인 젊은 세대를 상대로 한 정조의 문화투쟁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14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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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반정이 이 책의 해석 같아야, 나의 그간의 궁금증이 풀리는 부분도 있었는데...
교과서에서 영정조를 ‘문예부흥기’라고 배운 것과 관련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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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문체의 자유까지 억누를 정도였다면, 그가 과연 "문예부흥"을 일으킬 수는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정조 대에 부흥된 문예가 과연 무엇인지 그 성격도 불분명하다. 문예부흥의 범주와 내용을 규정하는 학문적 작업은 앞으로 더욱 조밀할 필요가 있다.(1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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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정조를 참 멋진 왕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이 책에 묘사된 정조가 참 아팠다. 그 중 정조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완고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그러했다. 하지만 역사상 뛰어난 인물들은 진보 성향을 띠기 마련이라는 일종의 선입관이야말로 환상이라고 얘기한다. 지배층의 지나친 보수성은 때로 국가의 근본을 밑바닥부터 흔들어버린다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어쩜 정조는 그렇게 멋지기만 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어쩜 소심했고, 어떤 강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연과학의 토대 위에 선 ‘합리주의자’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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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성리학은 다분히 종교적인 기능을 가진 것이다. 성리학은 정조에게 하나의 완고한 신앙이었다.(1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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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조가 성리학을 고수한 그 이유 때문에, 강이천은 성리학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강이천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고작 서른 세살에 죽었다.
이 책에서 박지원 식의 ‘참세상’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박지원이 죽을때까지 그러한 정신적 지향을 고수했는지 확언하기 어렵다고 얘기함으로서, 연륜이 있는 박지원과 혈기 왕성한 강이천의 대비를 드러낸다.
바다 건너온 해적 조문모 신부가 정감록에 나오는 해도진인이라는 유언비어를 날조 및 유포하고 이 유언비어로 타인의 재산을 갈취하려고 한 사건으로 제주도 유배형을 받았으나 순조때 신유박해때 강이천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고문을 받던 중 죽는다고 전해지는데...
어쩜 그는 타인의 재산을 갈취하려 했던게 아니라, 공평하게 나눠 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꿨던 건 아닐까?
이쯤 되면 이 책에서 우리에게 얘기하려는 바도 명확해진다.
우리는 또 한번 문화적 암흑기 속을 걷고 있는건 아닐까?
봄이다, 마침 꿈을 꾸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한곳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중국이 어떻게 서쪽인지에 관해서이다.
정조는 가뭄이 “사악한 기운”의 결과라며, 그 기운이 “서쪽”에서 몰려온다고 단정했다. 서쪽은 중국이다. 그러나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조선의 왕인 그가 중국을 노골적으로 원망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서쪽”은 중국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곳을 통해 유입된 천주교(“서학”)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1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