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세계문화유산 등재
-
-
까칠한 김작가의 시시콜콜 사진이야기
김한준 지음 / 엘컴퍼니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중전님의 서재야 항상 좋은 사진들로 넘쳐나지만,
언젠가 '양동마을..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이 페이퍼의 사진을 보고 이런 댓글을 남겼었다.
나의 댓글;
우와~~~~
사진을 보고보고 또 보고,
나갔다 들어와서 또 보고...그랬어요~
(저는 사진을 찍을줄도 볼줄도 모르는데...)
유명한 사진가들의 작품보다 중전님의 사진이 더 좋아요~
왜냐하면 시선도 크게 넘나들며 욕심 부리지 않으시고,
정겨운 것이...중전님도 저러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다,다아,좋은데...전,나무가 만들어낸 둥근 프레임에 자주 멈춥니다.
중전님의 덧글;
으흠...욕심이 없는 게 사진이 늘지 않는 저의 한계이지요.
말씀하신 사진은 정말 겸손한 자세로 찍었어요.
카톨릭 사제가 서품 받는 자세로요.
바닥에 납작 엎드렸지요.
둥근 프레임과 그 위의 사진은 '심수정'이라는 누각의 난간이에요.
그때 난 '카톨릭 사제가 서품받는 자세'라는 덧글을 보고,이런 분을 안다는 사실이 참 행복했었다.
이 책은 서재 질을 하면서 인증샷이라는 걸 올릴 일이 많아지다보니,
사진을 좀 낫게 찍어볼 수 없을까 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훌륭한 사진사이고,그의 사진들도 다 훌륭하지만,
읽기 시작하자마자 사진에 대한 책으로'만' 축소시키는 게 몹시 아쉬워졌다.
액자가 있는 풍경을 담아내는 방법,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담아내는 방법 등을 어찌 사진에 관한 얘기로만 국한시킬 수 있겠는가 말이다.
창조적 발상에 관한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동안 봐왔던 여느 글쓰기에 관한 책보다 내게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이쯤되니 내 마음은 분주해졌다.
느낌이 너무 많아,
하지만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일일히 코멘트를 붙이고 느낌을 남겨두고 싶었다.
'책을 시작하며'라는 머릿글부터 눈을 뗄 수도 손을 놓을 수도 없었다.
사진을 10년 간 정석으로 배워 두툼한 갑옷을 입었던 그가,
그 무거운 갑옷을 다시 벗는데 10년이 걸렸고,
옷을 벗어버린 지금에서야 사진을 진심으로 즐기기 시작했다는 구절이 나를 잡아 끌었다.
그러면서 활짝 열린 가슴을 소유한,창작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 될 가능성으로 '우뇌'를 꼽았고,
그의 그리 거창하지 않은 우뇌훈련법은 이렇다.
슬픈영화를 보며 엉엉 울어도 보고,
야한 영화를 보며 음흉한 미소도 지어 보고,
머릿속 필름이 뚝 끊기게 술도 마셔 보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슬픈 이별도 해 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랑의 감정도 느껴 보고,
하루종일 하품만 하는 한량 백수로도 살아 보고,
고래고래 유치하게 큰소리로 버스기사와 싸워도 보고,
무책임하게 잠수를 타버린 채 휴대폰을 꺼버리기도 하고,
햇살 좋은 오후 내내 윈도쇼핑을 하며 백화점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충동구매로 55만 원짜리 청바지를 사놓곤 내내 목을 맬 듯 후회도 해 보자.
갑자기 꽂혀버린 음악을 수십 번 반복해서 듣기도 해 보고,
장르 불문의 전시회에 가서 작픔을 살 것 같은 진진한 표정으로 쿠레이터에게 난해한 질문을 던져 보자.
문득 터미널로 달려가 어딘지 모를 땅끝마을을 향해 떠나도 보고,
클럽 스피커 위에 올라가서 일행들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신나게 춤을 춰 보자.
이건 우뇌훈련법이라기 보다는 '일탈의 비법'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열네 개의 방법 중 고작 네개만 해본적이 있는 나로서는 우뇌인은 고사하고,일탈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는 왕평범한 인간인 것 같아 씁쓸하다.
자신의 고양이 목에 싸구려 카메라를 매어 주고 모양이의 하루 일과가 끝나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추려 내다 파는 한 '고양이 사진가'에 관한 얘기도 생경했다.
거기서 까칠한 김작가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가치있는 사진,주목 받는 사진,팔리는 사진은 단순히 멋진 피사체를 잘 찍은 사진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쿠퍼는 우리가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린 소재들을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구도와 앵글로 멋지고 용기 있게 찍어버렸다.네살짜리 고양이에게 한 수 제대로 배웠다.(90쪽)
노숙자의 공허한 눈동자와 꾸질꼬질 때가 낀 손,사진학과 졸업전시의 단골 소재인 양로원에 버려진 팔순 노인의 주름살에서 우리는 인생의 굴곡을 느낄 수 있다.하지만 당신이 발표한 그 사진으로 노숙자의 자식과 팔순 노인의 자식은 가슴이 아프고 세상 앞에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당신이 당신의 피사체를 책임질 수 없다면 그들의 아픔을 이용해 대중들에게 감동을 파는 행위는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93쪽)
프로페셔널 사진가들과 당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프로작가들은 당신보다 많이 찍는다.
그것이 당신과 그들의 차이점일 뿐이다.(111쪽)
이런 부분도 참 마음에 들었다.
이건 내가 인터넷 시대 글쓰기에서 내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인물을 관찰하라.그 인물의 장점과 단점을 재빠르게 파악한 후 장점은 부각시키고,단점은 쓰다듬어 주듯이 덮어 주어라.그 사람이 가진 개성을 과장되게 드러낼 것인가 부드럽게 묻어 줄 것인가에 대해 판단하라.(126쪽)
종종 작업자의 고집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고유의 스타일에 대한 줏대를 가지고 창작하는 사람들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술에 술탄 듯,물에 물탄 듯 사람 좋은 작업자는 작업과정을 편안하게 해 주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기 힘들기 때문이다.(140쪽)
그의 이런 시선도 배우고 싶다.
가끔 이유없이 우울할 때가 있다.우울함은 식욕과 같다.배가 고프면 밥이 먹고 싶듯,가끔 찾아오는 우울함은 사진을 찍거나 피아노를 치게 만든다.우울함과 사이좋게 노는 방법들을 알고 있는 게 다행이다.(170쪽)
사진을 창작하기 위한 가장 순도 높은 재료는 당신의 소중한 기억과 추억이다.
...
금요일 밤에는 좀 놀아.술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여행도 좀 가고 적당히 사고도 치고 좀 그럴래?(172쪽)
흑백사진은 말수가 적은 철학자가 가끔 한마디 툭하고 던지는 말에 감동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색에 대한 정보의 포기,그것은 추상적이고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툭 던져 준다.왠지 멋지지 않은가?
"사진 좋아 보여요.완성도도 뛰어나네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화학조미료는 음식을 맛있게 하지만 음식을 다 먹고 나면 갈증이 나며 뒷맛이 좋지 않고 장기적으론 몸에도 좋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나도 한때 내 사진에 온갖 조미료를 잔뜩 넣었던 적이 있어요.그때는 사람들을 자극시켜 '와~'라는 탄성을 들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사진들을 다시 보지 않아요.다시 보게 되는 일이 있어도 정확히 눈을 맞추지는 않게 되네요."(234쪽)
그는 김중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한구석이 조금 외로워 보이는 그는 사진과 평생 지치지 않는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부러웠고,종종 사진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내가 부끄러웠다.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고,그리하여 나의 사진은 계속 이 모양일 것이다.
다만 창조적 발상은 진일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