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초복이란다.
오늘을 시작으로 보양음식의 재료가 되는 동물들이 한동안 수난을 겪을것이다. 

음식솜씨 좋은 개성 할머니 밑에서 자란 덕에,음식에 있어서는 호사를 누리고 살았었다. 
정월이면 조랭이 떡국에,손수 빚은 만두국,보쌈김치,동치미를 얹은 상차림을 시작으로 하여...
봄이면 진달래 꽃잎을 뜯어 곱게 화전을 부쳐 주셨고,
쑥이 지천으로 깔리면 쑥개떡도 납작납작하게 빚어 주셨고, 
여름이면 초계탕으로 몸보신을 했고,
가을 이면 늙은호박 속을 '북북~'긁어내고 호박죽을 쑤어주시고,저며 볕에 말렸다가 호박고지를 해주기도 하셨다.
동지날에는 팥죽과 가자미 식혜를 챙겼었고, 
울거나 떼쓰면 내어주시던 얼음박힌 수정과와 조청엿의 맛도 잊을 수 없다.

이런 내가 지방이 고향인 남자를 만나,지지고 볶고 하면서 살고 있는 과정을 쓰면...
마리여사의<미식견문록>보다 더 걸쭉하고 맛깔스런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111쪽의,

'사람을 고향과 이어주는 끈에는 참으로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위대한 문화,웅대한 국민,명예로운 역사.그러나 고향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은 영혼에 닿아 있다.아니,위에 닿아 있다.이렇게 되면 끈이 아니라 밧줄이요,억센 동아줄이다.'

이 구절이 유독 와 닿았다.  

우선 시댁의 음식은 비린내로 기선을 제압하고 들어간다.
상차림의 정성은 생선의 가지 수로 표현한다.
음식의 모양에 신경 쓸 시간이 없고,손이 적게 가는  조리법을 선호한다.
때문에 각종 젓갈과 짱아찌 류의 천국이기도 하다. 
이쯤되면 음식은 일단 모양이 되어주어야 하는 마리 여사님은 뒤로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191쪽의, 

음식은 자기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처음 보는 음식을 먹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나온다.그 사람의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의 균형감각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미지의 것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처럼,처음에는 시댁의 모든 음식이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동안의 내 미식기준이랑은 정반대되는 상황이었다.

남편에게 콩꺼풀이 씌웠는지,
아이를 낳고 그 집 귀신이 되기로 마음 먹은 후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않지만,
어느 순간 음식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자,
시댁음식에 호기심이 생기고 맛에 눈뜨자 엄청 밝히게 되어 이제는 내밥그릇의 밥을 조금 적게 푼 것 같아도 서운하다.

'이는 시간을 조금만 길게 보면 어느 민족이나 미각이 상당히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놀랍지 않은가.'(64쪽)

 이 부분처럼 말이다. 

아직도 농촌인 시댁에 가면 오늘 같은 날이면 마을회관 앞에 커다란 가마솥이 걸린다.
그리고 도시 촌 것에게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고기가 푹푹 고아진다.
여름 내내 땀흘린 사람들에게는 좋은 보양식이 되는 고기이지만,
땀흘리지 않는 도시 촌것들에게는 권장되지 않는 그런 음식이란다.

그 가마솥의 고기를 집집마다 나누어 냉장고에 넣어놓고,
땀흘리는 여름내내 야채만 더 넣고 푹푹 끓여 먹는다. 

도시촌것인 나는 아직 그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지만, 
여름날 평상에 앉아 먹는,물 말은 잡곡밥과 된장에 찍어먹는 고추는 침튀기며 예찬을 할 수 있다.
음식은 점점 더 소박해지고,소박하지 않더라도 원 재료의 맛에 가까운 상태를 선호하게 된다.
이쯤되면 마리 여사의,

'먹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이는 어찌 그리도 잔혹하고 죄 많은 일인가.살생의 죄책감과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 이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

라는 말을 이해하겠는 순간이다.
 
얼마전에 지인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지만,인생의 반환점 부근일거야.
 이젠 안해 본일도 해보고,안 먹어 본것도 먹어보고...그러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음식에 빗대서 한 이 얘기를 너그럽게,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라는 말로 해석하고 싶다. 

미식의 기준을 이렇게 정하고 싶다.
신선한 재료에,최소한의 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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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7-19 23:14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 점심은 냉면을 저녁엔 삼계탕을 먹었어요~.
미식견문록은 제가 참 좋아하는 책 중 하나고요~.
양철나무꾼님의 리뷰는 변함없이 맛깔스럽네요~.^^

sslmo 2010-07-20 09:58   좋아요 0 | URL
저도 미식견문록,애정하게 될 것 같아요~^^

맛깔스럽게 쓰고픈 게 희망사항입니다~^^
하고싶은 얘기를 다 풀어내지 못한 것 같아 좀 가지고 있다보면 잡맛이 끼고,
극도로 절제하고 응축시켜야지 하다보면 맛이 비는 것 같고,
참 어렵지만,해 봐야죠~

꿈꾸는섬 2010-07-19 23:39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시댁 이야기와 책 이야기가 잘 어우러졌네요. 별미에요.^^

sslmo 2010-07-20 10:03   좋아요 0 | URL
별미는 계속 먹으면 질리는데,새로운 소재 찾기에 힘써야 겠네요~
친정과 시댁 나름 음식 솜씨는 자부하는 고장이 만난지라,
전,음식 얘기는 석달 열흘도 할 수 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7-20 10:14   좋아요 0 | URL
미식 견문록 정말 잼나게 읽었는데, 나무꾼 님도 즐거우셨어여?
난 아침부터 베란다의 화초를 손보는데, 허브가 아주 잡초로 자라더군요.
이리저리 잘라주고 나니, 온몸에서 허브향이 듬뿍~~~

2010-07-20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0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07-20 10:47   좋아요 0 | URL
아~~~~~
서재 복귀 하신거에욥?
반갑고 좋아라~^^

옛날에 '라벤더'라는 영화가 있었는데...왜 그 생각이 나죠?

잉크냄새 2010-07-20 17:29   좋아요 0 | URL
전 생긴것과 다르게 시각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그래서 중국 음식에 손이 잘 안가네요. 무채색 빛깔에 기름기 좔좔....일단 위를 반 정도 접고 들어갑니다.
근데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보면 한국 음식의 색감이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 알게 됩니다. 음식이 하나의 예술작품입니다. 전 여행을 통해서 한국 음식 예찬론자가 되었습니다.

sslmo 2010-07-20 20:48   좋아요 0 | URL
생기신 건 실물(또는 사진이라도)을 보지 않아 모르겠고,
음~블로그를 가보거나 글들을 보면 되게 공감각적 또는 감각적이실 것 같아요~

저도 중국음식은 좀 그래요~
전에 직장에서 중국사람이랑 잠깐 같이 있었던 적이 있는데,
우리음식이 입에 안맞는다며 탕비실에서 직접 해먹었어요.
비등점 낮은 샐러드유를 가져다가 튀김을 해먹는 게 젤 느끼했어요.

이 사람이 문화적 편견이란 말을 사용해서,좀 뻘쭘했지만~ㅠ.ㅠ

같은하늘 2010-07-20 17:38   좋아요 0 | URL
재미난 책에 시댁얘기가 섞이니 더욱 맛깔스럽습니다.
저도 이 책 참 재미나게 보았어요.^^

sslmo 2010-07-20 20:50   좋아요 0 | URL
미식견문록 잼나게 읽으신 분이 참 많군요~^^
같은하늘님표 리뷰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순오기 2010-07-20 17:58   좋아요 0 | URL
시댁얘기도 저한테도 해당되는데 3년 지나니 친정엄마 음식이 입에 안 맞더라고요.ㅋㅋ
즐찾을 안했다는 걸 오늘 발견하고 즐찾도 했어요.^^

sslmo 2010-07-20 20:51   좋아요 0 | URL
커밍 아웃하자면요,전 5월10일 날 서재개설하면서 즐찾 했는데...^^

저절로 2010-07-20 18:48   좋아요 0 | URL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의 저자 곽아람씨가 말했었죠.
'마리'같이 되고 싶다고.
박식하다는 말에 '백과사전'형이 생각나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sslmo 2010-07-20 20:5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도 좋았어요~

전 근데 마리여사처럼 되고 싶진 않아요.
마리여사가 박식하고 똑똑한 건 사실인데...
왠지 교과서적,이론적이란 느낌이 들어요.

뭐라고 해야할까?
현실에서 어울려 지지고 볶는 맛이 없다고 해야할까?

따라쟁이 2010-07-21 12:3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대채, 이런리뷰는 어떻게 나오는거냐고요 ㅠ-ㅠ

sslmo 2010-07-21 20:48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이 말은 제가 따라쟁이님께 묻고 싶은 말이라니까요~^^

비가 온다더니 후덥지근 하기만 하고,바람조차 안 불어요~
전 따라쟁이님의 시원,청량한 글 한편 읽으러 가요~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