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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 - 삶의 모든 마디에 자리했던 음식에 관하여
정동현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7월
평점 :
밥상에 대하여 / 이상국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어느날 다리 하나가 마비되더니
걸핏하면 넘어지는 그를 내다버리며
누군가 고쳐 쓰겠지 하면서도 자꾸 뒤가 켕긴다
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숙제를 하고
좋은 날이나 언잖은 날이나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남들은 어떻게 살던지,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밥상머리에서 내가 지르는 호통소리에
아이들은 눈물 때문에 숟가락을 들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공연히 밥알을 줍거나
물을 뜨러 일어서고는 했지
나는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나의 가족들에게, 실은 나 자신을 향하여
어떤 때는 밥상을 두드리고 숟가락을 팽개치기도 했지
여기저기 상처난 몸으로 그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끼 밥을 위하여 종일 걸었거나
배를 있는 대로 내밀고 다니다가
또 어떤 날은 속옷 바람에 식구들과 둘러앉아
별일도 아닌 일에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웃던 일들을
그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그러나 그가 어디 가든 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언젠가 이 시를 읽다가 울컥하였다.
울컥한 이유는 식탁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은 모를, 밥상에 대한 정서와 상념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였다.
이 책을 읽는데 저 시가 생각났다.
생각을 많이 하는게 싫어,
감상에 빠지고 상념에 젓는게 두려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을 골라 읽는다.
그런 내게 음식에 관한 얘기만한 것이 없고,
이 책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암튼 재밌게 잘 읽었으나, 나의 의도와는 상반된 책이었다.
박찬일을 닮았으나 박찬일과는 다른 글맛,
정갈하고 깔끔하나 왠지 슬픔이 밀려와서 눈물을 눌러 삼키듯 그리 읽게 되는 글맛을 지녔다.
다 읽고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 보니 '셰프의 빨간 노트'라는 책은 내가 가지고 있다.
프롤로그를 어린시절 살았던(?) 당구장 얘기로 시작해서 혹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당구장과 짝을 이루는 음식, 짜장면에 대해서 내밀하게 털어놓는다.
급기야 명동 일품향의 유니짜장을 얘기하며 이렇게 표현한다.
단맛이 얌전한 고양이처럼 조용히 밑에 깔리고 짠맛은 그 위로 슬며시 발길을 올렸다. 고소한 맛이 진득한 질감을 타고 뭉텅이로 전해지면 남는 것은 입기에 까만 흔적뿐이다. 재료를 다듬는 정성이 탄탄한 기술을 만나고 생계라는 추진력에 올라탔을 때, 음식은 세금처럼 늦지않게 또박또박 나요며 종업원들은 경주마처럼 홀을 가로지른다.(79쪽)
난 유니짜장을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성격이 워낙 급한 그는 짜장면을 씹지않고 후루룩 집어 삼켜서 잘 체하곤 했었는데,
재료를 곱게 다진 유니짜장을 먹으면 그나마 덜 체했다.
너무 잘게 좃아놓은 그 느낌을 나는 애정할 수 없었는데, 저자의 글을 보니 저런 철학이 숨어있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프로필도 그렇고,
대기업 유통회사를 다녔었고,
오랜 유학 후 다시 다니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글이 계산에 의해 짜 맞춘 것처럼 단정하다.
글에 등장하는 음식이나 재료들은 추억을 먹는 것이고 취향이니까 차치하고라도,
그가 그렇게 해외를 떠돌며 사서 고생을 했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편견처럼 여겨지겠지만,
그동안 내가 만나온 서울대 출신들은 남달랐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게 느껴졌고,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할때에는,
머리가 나빠서 몸이 고생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의 거대한 꿈의 청사진에서 비롯된, 미리 계획된 것일데,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힘들게 산듯 여겨져서 하는 말이다.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슬픔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 완벽했고,
마음가는대로 쓴 수필 같은 것이라면 그것도 그런대로 좋았다.
"주방에서 일하는 것 말고 바깥에서는 어떻게 지내?"
대답할 걸가 별로 없었다. 영어 수업을 듣고 밥을 먹는다고 말했다. "최근에 가본 레스토랑은 어디야?" 라고 다시 묻기에 몇 군데 이야기를 했다. 주방 밖 생활을 묻는 질문을 받았을때 이제껏 느꼈던 공허함과 황량함은 잠시, 예상치 못한 낯선 이의 관심에 마음 위로 가랑비가 내리는 듯했다. 오래 배를 곯다 하얀 밥 한 그릇을 마주한 것차람, 지친 나를 이끄는 두터운 손을 잡은 것처럼, 몸에 따뜻한 피가 돌았다.(223쪽)
그의 글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레시피에 관한 이런 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쓴 연애편지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레시피의 형태를 취할 것 같다.
프로가 일하는 주방의 레시피는 요소 하나하나를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검증하여 만들어진다. 추론적인 연역법과 경험적인 귀납법의 세계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요리를 넘어 현대 요리의 근간을 만든 요리사 에스코피에가 이룩한 철저한 통제와 체계라는 틀이 이룩한 접근법이다. 덕분에 요리는 손맛이라는 개인의 감을 넘어 학습될 수 있는 기술이 되고 손님은 늘 동일한 질의 '상품'을 맛벌 수 있다. 나는 그 체계 속, 싸구려가 아니라 인치별로, 용도별로 나눈 주물 후라이팬과 300도 이상 되는 열을 뿜는 가스오븐, 1도 단위로 조절할 수 있는 전기오븐 틈에 있었다. '본토' 김치 부침개 권위자의 의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아시아계 마란 요리사에게 필요한 것은 말귀를 잘 알아먹는 머리와 하루 열다섯 시간이 넘는 노동에도 끄떡없는 신체, 싼 임금을 불평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전부였다.(263~264쪽)
내가 애정해마지않는 박찬일 님은 그를 만나면,
"뭐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 대포 한잔해."
라고 한다는데,
웬걸,
내 생각엔 대포가 아니라 작은잔에 담긴 술을 마실 것 같고,
안주도 없이 대충 마시는 대포 한잔이 아니라,
안주와 술의 조합을 과학적(?)으로 따져 마시자고 할 것 같다.
그의 글들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먹어본 적 없는 그의 음식에는 한없이 못미칠 것 같다.
글맛에 빠져 읽는 내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