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산도르 마라이는 헝가리 작가이다.

부다페스트밖에는 모르는 헝가리인지라

산도르 마라이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도

당연히 모를 수밖에.

274쪽. 얇은 책 부류에 속하는 이 책은,

그러나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재미없는 편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만, 역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이야기 속에 작가가

담은 게 워낙 많다보니 음미를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야기는 사십 일 년 전 홀연히 곁을 떠났던 친구가 방문하면서부터 활발하게 전개된다.

소년 시절 사관학교에서 만나 평생을 함께 보냈던 친구인

콘라드와 헨리.

부유한 헨리와 가난한 콘라드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선천적으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헨리에 비해 늘 경직되어 있는 콘라드,

음악을 느낄 줄 아는 콘라드와 음악이란 그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배경으로 쓰일 뿐이라고 믿는 헨리..

인간을 분류하는 잣대가 되는 두 사람.


헨리의 아내인 크리스티나를 사랑했고,

헨리를 살해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열대지방으로 떠났던 콘라드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하룻밤 동안

사십 일년간 마음 속에 담아온 대화를 나눈다.

대화라기보다 헨리의 독백에 가깝지만..

이걸 연극으로 만든다면, 주인공이 대사 외우기에 진땀을 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랑했느냐고, 언제부터였냐고,

왜 죽이려고 했는지도 묻지 않는다. 헨리가 궁금한 건

오직 두 가지..

떠나기 전날 사냥터에서 헨리를 죽이려고 한 것을 크리스티나가

알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 물음에는 나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나였어도 굉장히 궁금했을 터)


두 번째 물음은 조금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정열은 그렇게 심오하고 잔인하고 웅장하고 비인간적인가?

그것은 사람이 아닌 그리움을 향해서만도 불타오를 수 있을까?

아니면, 선하든 악하든 신비스러운 어느 한 사람만을 향해서,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정열적일 수 있을까?

우리를 상대방에 결합시키는 정열의 강도는 그 사람의 특성이나 행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나는 뭐라 대답을 할 것인가?

정열을 경험한 적이 있노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사랑=영원한 정열이라도 되는 건가?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는 나는 정열을 절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건가?

크리스티나라는 그리움의 대상.

배반당해 증오하면서도 사랑을 결코 놓지 못했던 헨리는 평생

정열 속에 산 것이 되는 건가?

이야기는 질문을 쏟아내서 아주 편안해진 헨리의 표정으로

끝이 난다.


결국 사십 일 년 동안 자신이 정리해 놓은 것을 알려주기 위해

고집스럽게 삶을 이어온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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