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의사 삭스
마르탱 뱅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의사가 마음에 든 적은 없다.

게다가 아름다운 의사라니..

내 아름다운 친구가 선물한 책만 아니라면 뚜껑도 열지 않았을

책이다. 

제목을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 말은

'양말?' '사스?' 였다.


630페이지. 

들고 다니기엔 좀 버거운 무게이지만

편안하게 자리잡고 앉아 읽을 시간이 부족하기에

가벼운 척 들고다니며 읽었다.

책 날개에 작가 사진이 있는데

살짝 앞머리가 벗겨지고 커다란 안경을 낀 채 웃고 있다.

흠,,그래 사람은 좋아보이누만..


'나는' 이라고 시작을 하기에

'아하, 이 책도 주인공 시점이구나' 했는데

웬걸..나오는 등장 인물들이 모두 '나는'이라고 얘기를 한다.

진료를 받는 중이거나, 옆집에 사는 사람이거나,

친구이거나,엄마이거나 간에

모두 브뤼노 삭스라는 의사를 지켜보고 쓴 얘기다.

처음에는 각자 얘기하는 걸 기억하느라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진행이 될수록 모두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재미있다. 

밤중에도 호출이 와도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왕진을 가주고

아무리 까탈스러운 환자라도 몇 시간씩 얘기를 들어주고

세심하게 관찰해주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의사. 삭스


..마침내 나는 한숨을 쉬고 애써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히지 않겠어요. 돌아가야 해요.

아들이 이웃집에 있거든요.

그 집 아들과 제 아이는 같은 반이에요..

제 얘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조금 거북하네요..'

'거북하다고요? 왜죠?'

'제가...선생님 시간을 빼앗았잖아요...환자도 아니면서...'

'그렇지 않습니다.부인은 고통받고 있으니까요.'


삭스라는 의사를 몽땅 보여주는 부분이다.

난 여기 읽으면서 감동해서 탄성을 질렀다.


작가인 마르탱 뱅클레르는 실제로 이야기의 배경이 된

플레이에서 일반의로 진료소를 개원한 적이 있어서인지

겪어보지 않고 자료에 의존한 책과는 다르게 생활의 맛이 묻어난다.

제임스 헤리엇이 지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을 때도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예쁜 글을 쓸 수도 있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감탄을 했다.

그리고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다는 걸 내가 또 잊고 있었구나

반성했다. 


의료체계가 조금 달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길어야 5분인 진료시간은 너무하지 싶다.

들어가서 이런 얘길 해야지 하고 증상을 정리하고 있어도

막상 이름이 불리고 의사 앞에 앉으면 그 권위적인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하고 싶은 얘기를 몽땅 까먹고 집에 돌아와

후회를 한 일이 허다한 나는

이런 의사를 좀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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