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 - 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 섹스
앤드류 니키포룩 지음, 이희수 옮김 / 알마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평소에 텔레비전을 즐겨 보지는 않지만 가끔씩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시청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만화 '호빵맨'도 그중 하나인데,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을 때 할머니 집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조카들이 만화 채널을 틀어놓고 쪼르르 앉아 낄낄대는 것을 시작으로 하도 떠들어대는 통에 군기반장을 하러 들어갔다가 함께 본 경우다. 볼이 둥글둥글하고 빨간 게 천상 호빵처럼 생긴 '호빵맨'이 나쁜 짓만 일삼는 '세균맨'을 혼내준다는 단순한 스토리였지만 지금도 혼쭐이 나서 도망가는 '세균맨'과 듬직한 '호빵맨' 이미지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 섹스'라는 다분히 선정적인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대혼란》이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세균맨'과 '호빵맨'을 기억나게 했다. 나쁜 세균맨들이 나타났을 때 '도와줘요, 호빵맨!'하고 외치면 어디선가 쓩~하고 날아와  시원스럽게 뻥뻥 차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만화와 같지 않으니 스스로 호빵맨이 되어 싸울 수밖에 없음이 애석할 따름이다.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처럼 보고서 형식을 띠고 있음에도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그건 작가의 입심이 장난 아니게 훌륭한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닭장, 악의 소굴로 전락하다', '종의 저글링, 글로벌 서커스' 같은 소제목에서부터 '태초에 신은 바이러스의 번식과 운반을 위해 오리를 창조했음이 틀림없다' 라든가, '지구상에서 할리우드의 <위기의 주부들> 다음으로 약물을 가장 많이 복용하는 것이 바로 브로일러일 것이다' 나, '세계화의 물결 속에 넉넉한 호박바지 같았던 세상이 티팬티처럼 쪼그라들었고, 1930년대 대공황을 비롯해 정신이 번쩍 드는 무역 불황을 몇 차례 겪으면서도 교역과 교통의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져만 갔다' 같은 표현들은 너무 기발해서 읽는 맛을 더해준다. 전철 안에서 이 책을 읽다가 몇 번을 웃었는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선정적인 제목 탓에 음란소설을 읽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싶다. 그들 눈에는 '스와핑'이나 '섹스'라는 글자들만 확대되어 보였을 것 같다.

 

 하루나 이틀, 길어야 일주일 안에 지구에 있는 모든 나라를 갈 수 있는 지금 같은 때 대혼란이 일어난다는 건 어찌 보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혼란스러운 시기가 지나가면 또다른 혼란이 대기하고 있다가 들이닥칠 테지만 이런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적어도 우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친절한 작가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부가 제대로 일하기만 학수고대하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자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따라서 시민인 우리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먹는 방법, 물건을 구매하는 방법, 살아가는 방법을 바꿈으로써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