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의 <성학집요>는 진차(進箚), 곧 임금에게 이 책을 올리는 뜻을 담은 글로 시작된다. 말하자면 헌사인데, 그런 유의 글에 흔한 아부와 찬양이 아니라 직설적인 비판과 충고다.

“임금님의 문제점을 말씀드리자면, 영특한 기질을 너무 드러내려고 하여 선한 것을 받아들이는 도량이 넓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내어 남을 이기기 좋아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온순한 말과 겸손한 말을 하는 사람은 많이 채용하여 받아들이고, 바른말을 하고 면전에서 허물을 지적하는 사람은 반드시 임금을 거스르게 됩니다.”

“(누군가를) 편파적으로 두둔한다고 지적하면 문득 언성을 높여 도리어 편파적으로 두둔하려는 뜻을 보이십니다.”

요즘 말로 하면 독단과 독선, 코드 인사, 비판에 귀 닫는 모습 등이다. 율곡은 이는 “제왕의 도”가 아니며, 그 폐단은 “전하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홍문관 부제학이던 마흔 살 때 쓴 글이다.

역사엔 직언하는 위인만 있는 게 아니다. 한나라 원제가 즉위 직후 저명한 학자 우공을 불러 나랏일을 물었다. 당시 현안은 외척과 환관의 전횡이었지만, 우공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검소하게 생활하라는 말만 했다. 본디 검소했던 원제에겐 필요 없는 충고였으니, 나름대로 능란한 처세술이다.

간의대부는 황제에게 의견을 내는 자리다. 당 고조 때 간의대부 소세장은 적군에서 투항한 사람이라 입지가 불안했다. 그는 가벼운 문제만 골라, 그것도 한참 뒤에야 ‘뒷북 치는’ 말만 했다. 웃음거리가 되긴 했어도, 나름의 생존전략이었다.

미국에서도 관리자의 70%는 회사 현안에 대해 상급자와 솔직히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한다는 설문조사가 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당의 국정쇄신안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딱한 일이다. 하긴, 그저 처세에 밝은 관리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한겨레 5월 21일 여현호 논설위원의 글.

***

사실 지금 꼭 필요한 건 처세술에 능한 정치인이 아니라

임금님이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직언을 해줄 정치인 한 명인데..

율곡 이이 같은 이가 한 명이라도 MB 곁에 있어야 할 긴데,

하긴 뭐 보는 눈이 없으니 그런 인재를 어디서 뽑을 줄도 모르겠지.

아니, 뽑기도 싫겠지. 눈 닫고 귀 막고 지내기 싫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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