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형제의 숲
알렉스 슐만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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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세 형제의 숲

◎ 지은이 : 알렉스 슐만

◎ 옮긴이 : 송섬별

◎ 펴낸곳 : 다산책방

◎ 내 맘대로 별점 : ★★★☆

"우리는 여기 있다고요!" 그는 고함을 질렀다.

"저, 닐스 형, 그리고 피에르, 우리가 여기 있잖아요." (262쪽)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언제나 부모의 사랑이다. 이젠 어른이 된 이들의 절규는 끔찍했던 사건을 겪고 안 그래도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부모들이 완전히 등을 돌린 후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서글픔이다.

'그들은 서로를 도울 수 없었다. 기억하는 한, 어른이 된 이후로 단 한번도 그럴 수 없었다. 셋 중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며, 심지어 서로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도 못했다. (273쪽)' 남과도 같았던 형제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였다. 대체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어머니의 죽음 후후 베냐민은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었고 그 순간에 어릴 때 셋이서 의지하며 헤엄쳤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형과 피에르를 보며 따뜻하게 웃는다. 그리고 심장이 멎었다. 이렇게 죽음 직전까지 갔던 베냐민은 의사의 권고에 따라 심리치료사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러니까 세 형제 중 둘째인 베냐민이 화자인 셈인데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은 현재와 과거가 마구 뒤섞인 채 널브러져 있어 처음에는 읽기가 꽤나 혼란스럽다.

-이 풍경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되고, 또 끝났다. 그가 두 사람의 싸움에 끼어들 수 없는 것은, 그는 아주 오래전 이곳에 갇혀 버렸고 그 뒤로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아홉 살이다. 반면 저곳에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은 줄기차게 살아낸 어른들이다. (31쪽)

미드소마 (스웨덴에서 매년 6월 중순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하지 기념 축제)전날 외식하러 나간 가족들. 부모는 술에 취해 낮잠을 자러가면서 강아지 몰리를 돌봐달라고 한다. 숲으로 도망친 개를 찾아간 세 형제는 변전소에 다다랐고 형의 만류에도 블구하고 베냐민은 몰리를 안은 채 눈앞에 튀는 불꽃을 보며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감전되고 쓰러진 베냐민. 그리고 죽은 강아지 몰리. 형을 도우려 달려갔던 피에르도 감전되어 팔에 화상을 입고 큰 형 닐스는 베냐민을 도우러 다시 돌아가자는 피에르의 청을 거절한다.

그러나 아홉살이었던 베냐민뿐이 아니었다. 닐스와 피에르도 깊이는 다르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건 분명해보인다.

-피에르가 늘 놀라웠다. 동생은 그저, 그때 일어난 일을 전부 훌훌 털어버린 것처럼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그 일 때문에 더 강해졌으려나? 그러나 동생이 감자튀김 끄트머리를 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베냐민은 어쩌면 피에르에게도 그 사건이 남긴 흔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자기 손이 닿은 것을 입에 넣지 않으려 하는 성인 남자는 아마 자기 자신과 관련되 모든 게 싫은 것이리라.(175쪽)

-베냐민은 예전부터 닐스가 별다른 문제없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건 그가 늘 마음을 닫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닐스가 행복했던 적이 있긴 있을까 궁금할 때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날 때면 드물게 행복해 보이던 적도 있다. 하지만 조리대 앞에 서서 커피를 새로 따르고 있을 때라거나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볼 때처럼 무방비한 순간이면 베냐민은 형의 눈 속에서 아주 작은 불꽃처럼 슬픔이 빛나는 것을 본다.(293쪽)

'심리치료사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자, 그녀는 두뇌란 놀라운 기관이라고 했다. 때로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정신이 기억을 바꿔버린다고 했다.(265쪽)' 그 결과 베냐민이 그동안 죽었다고 생각한 몰리가 개가 아닌 그의 여동생이었음을 떠올린다. 그제야 형제들을 차갑게 대했던 어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죽은 몰리는 안타깝지만 남아있는 세 아이를 제대로 돌봐줬어야지. 특히 베냐민을.

처음부터 언급되었지만 마지막에야 공개되는 어머니가 남긴 편지. 몰리의 죽음이 베냐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남몰래 몰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몰리의 엄마로 살아왔음을, 아들들과 대화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 미안하다는 편지다.

-애도라는 건 단계가 아니라 상태란다. 결코 변치 않고 바위처럼 그 자리에 우뚝 버티고 있지. 그리고 애도는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319쪽)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구나. 나를 다시 그 별장으로 데려가주렴. 그리고 내 유해를 호수에 뿌려다오. 하지만 나를 위해 그렇게 해달라는 건 아니야. 너희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달라고 부탁할 자격이 어디 있겠니. 난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주었으면 한다. 함께 차에 올라 먼 길을 가거라. 내가 상상하고 싶은 너희 셋의 모습이니까. 차 안에서, 외딴 호숫가에서, 또 저녁나절 사우나 안에서 다른 누구도 없이 오로지 너희 셋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모습 말이다. 우리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 서로 대화를 나누는 그 일을 너희들이 해주었으면 한다. (320쪽)

어머니의 유언장 때문이었을까. 형제들은 외딴 호숫가에, 사우나 안에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심하게 싸우기도 하지만 셋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한다. 이런 편지를 봤다면 나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범죄를 다룬 드라마에서서 피해자들에게 상담사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 말을 그때 엄마나 아버지가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른이 될 때까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을 베냐민과 피에르와 닐스가 너무 가엾다.

-다시 한번 살아남기 위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되짚어가며 그들을 충돌지점까지 데려다줄 여정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 여정은 이미 일어난 일인 것처럼 그들 안에 자리하고 있다. (321쪽)

-돌계단 위에서 그들은 서로 다친 곳을 살핀다. 사과는 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배운 적 없어 사과하는 법을 모르기에. 그들은 조심스레 서로의 몸을 만지고, 상처의 피를 닦아내고, 이마를 마주 댄다. 그렇게 세 형제는 서로 끌어안는다. (33쪽)

드디어 어릴 때 서로 의지했던 물 속의 그날처럼 셋은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디디며 뒤뚱거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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