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사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자, 그녀는 두뇌란 놀라운 기관이라고 했다. 때로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정신이 기억을 바꿔버린다고 했다.(265쪽)' 그 결과 베냐민이 그동안 죽었다고 생각한 몰리가 개가 아닌 그의 여동생이었음을 떠올린다. 그제야 형제들을 차갑게 대했던 어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죽은 몰리는 안타깝지만 남아있는 세 아이를 제대로 돌봐줬어야지. 특히 베냐민을.
처음부터 언급되었지만 마지막에야 공개되는 어머니가 남긴 편지. 몰리의 죽음이 베냐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남몰래 몰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몰리의 엄마로 살아왔음을, 아들들과 대화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 미안하다는 편지다.
-애도라는 건 단계가 아니라 상태란다. 결코 변치 않고 바위처럼 그 자리에 우뚝 버티고 있지. 그리고 애도는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319쪽)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구나. 나를 다시 그 별장으로 데려가주렴. 그리고 내 유해를 호수에 뿌려다오. 하지만 나를 위해 그렇게 해달라는 건 아니야. 너희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달라고 부탁할 자격이 어디 있겠니. 난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주었으면 한다. 함께 차에 올라 먼 길을 가거라. 내가 상상하고 싶은 너희 셋의 모습이니까. 차 안에서, 외딴 호숫가에서, 또 저녁나절 사우나 안에서 다른 누구도 없이 오로지 너희 셋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모습 말이다. 우리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 서로 대화를 나누는 그 일을 너희들이 해주었으면 한다. (320쪽)
어머니의 유언장 때문이었을까. 형제들은 외딴 호숫가에, 사우나 안에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심하게 싸우기도 하지만 셋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한다. 이런 편지를 봤다면 나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범죄를 다룬 드라마에서서 피해자들에게 상담사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 말을 그때 엄마나 아버지가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른이 될 때까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을 베냐민과 피에르와 닐스가 너무 가엾다.
-다시 한번 살아남기 위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되짚어가며 그들을 충돌지점까지 데려다줄 여정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 여정은 이미 일어난 일인 것처럼 그들 안에 자리하고 있다. (321쪽)
-돌계단 위에서 그들은 서로 다친 곳을 살핀다. 사과는 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배운 적 없어 사과하는 법을 모르기에. 그들은 조심스레 서로의 몸을 만지고, 상처의 피를 닦아내고, 이마를 마주 댄다. 그렇게 세 형제는 서로 끌어안는다. (33쪽)
드디어 어릴 때 서로 의지했던 물 속의 그날처럼 셋은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디디며 뒤뚱거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