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
루 버니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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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잊고 싶다고해서 잊어지는 건 아니죠, 하지만 잊은 척은 하고 살 수는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그때 그 일은 기억나질 않아.. 그렇게 스스로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망각을 택하게 되는게 인간입니다.. 특히나 공존과 공동의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본성이라는 근원적인 성향으로서 누군가와의 이별이나 헤어짐과 관련된 아픔은 특히나 지옥같은 고통과도 같죠,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의 기억을 인간은 세월과 시간과 주변의 삶이라는 현실을 통해 망각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지않고서는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요, 이미 지나버린 해결할 수 없는 과거의 기억과 아픔을 되새기고 머리속에서 끄집어내어봐야 현실이나 미래의 삶이 달라질 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스스로가 제일 잘 아니까 말이죠, 그래서 잊기로 합니다.. 잊어지지 않지만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차곡차곡 쌓인 망각의 덮개는 어느순간 그 당시의 고통과 아픔의 지옥같은 감정으로 꽉찬 풍선의 바람마냥 터져버리기 전까지 꾹꾹 눌러서 기억의 방중 하나에 망각의 가스를 아슬아슬하게 불어넣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 열쇠를 던져버리고 찾을 이유를 만들 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열쇠는 생각지도 않던 어느 순간 찾아지고 도저히 감내하지 못할 것 같은 기억의 망각풍선의 두려움은 비대해질때로 비대해진 체 끝없이 커져만 가는게 두려워 빨리 터트려버리고 그 방을 비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2. 그때 왜 그렇게 되었어야만 하는것이었을까요, 왜 내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만 했던 것이었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왜 그런 아픔이 생겨야만 하는 지, 되살아난 그때의 아픔의 기억은 도저히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그렇지요, 과거에 어느날 어떻게 잊고 있었던 그 기억의 순간에 벌어졌던 하나의 사건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내가 그렇게만 하지 않았다면, 내가 조금 일찍, 조금 늦게 아니면 아예 그런 일이 생기기전으로 조금만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면,,,, 하지만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고 그런 순간의 과거는 나만이 기억하고 나 혼자만 그 아픔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깨닫더라도 그 과거의 기억이 내 탓, 내 잘못이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입니다.. 그래서 우린,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질 못하고 자꾸 가둬두려고만 하는 것이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나만의 기억속의 고통과 아픔을 스스로의 망각속으로 묻어두고 그 풍선이 터질때까지 그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방의 열쇠를 찾은 순간 비대해진 풍선을 터트리고 싶은 것 또한 우리의, 나의 마음이고 어쩔 수 없이 살고 살아가야할 이 세상의 삶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이기도 한 것이죠, 이왕 이렇게 된거 터트려버리고 그 방을 좀 비웁시다... 뭔 말인 지, 여하튼 좋은 작품을 읽고나면 뭔가 느껴지는 감흥이란게 조금 감성적으로다가 다르게 와닿는 부분이 있긴하죠, 그런 작품을 만났습니다.. 루 버드의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이라는 다소 애매한 제목의 잔잔한 미스터리스릴러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 숨겨진 인물들의 심리적 감정은 한순간도 잔잔하지 않죠, 터져버리기 일보 직전의 망각의 풍선마냥 커질때로 켜져있습니다..


    3.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중심부쯤 어디에 위치해있는 오클라호마시티는 건조한 곳이고 화려한 도심과는 다른 삶이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듭디다.. 동과 서를 구분하는 대도시와는 다른 미국 특유의 건조하고 메마른 느낌이 가득한 뭐 그런 느낌 이짜나요, 아님 말고, 여하튼 그런 곳의 80년대 중반의 기억으로 거슬러올라가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먼저 도시의 한 상가몰의 영화관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죠, 주말의 늦은 저녁 마지막 영화를 상영하고 정리를 하는 와중에 강도가 침입해서 엄청난 일을 저지릅니다.. 총 6명의 직원중 한명만 남겨놓고 죽여버리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성이 실종되는 사건도 발생합니다.. 줄리애나와 제네비에브는 지역 축제에 놀러가서 늦은 저녁에 언니인 제네비에브는 사랑하는 줄리애나만 남겨둔 체 돌아오질 않습니다.. 줄리애나는 15분안에 돌아오겠다던 세상에서 유일한 자신의 언니를 다시 만나질 못하죠, 그리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라스베가스의 와이엇은 사립탐정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스카웃한 인물의 뒷조사를 하고 있죠, 그리고 그에게 이런저런 의뢰를 하는 개빈이 그에게 새로운 사건을 맡깁니다.. 그에게 캔디스라는 인물의 이야기와 함께 그녀가 있는 오클라호마시티로 가서 사건을 알아봐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와이엇은 자신의 잊혀진 고향을 다시금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과거 아픔을 겪은 줄리애나는 현재 간호사로 일하면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언니 제네비에브의 실종사건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와이엇과 줄리애나는 그렇게 오클라호마시티라는 방속에 갇힌 자신들만의 비대해진 풍선의 끝을 거머쥔체 계속 부풀어만가는 비대함에 힘겨워하고 있죠, 과연 이들은 그들의 풍선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4. 두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와이엇이라는 인물과 줄리애나라는 인물의 각각의 이야기로 번갈아가면 흘러갑니다.. 애초에 구성적으로 예상을 하길 이 두 인물이 어떻게든 상황적으로 함께 엮이질 않겠는가 싶은데 말이죠, 여하튼 이들은 애초에 줄거리에서 나온 과거의 각각의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방식과 이야기는 각각 다르게 진행이 되죠, 어떻게보면 이 소설의 중심적 역할을 와이엇이라는 인물이 구도를 잡고 간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비슷한 분량의 흐름으로 줄리애나의 이야기도 이어지지만 줄리의 과거는 있는 그대로의 현재와 과거가 단절되지 않은 하나의 흐름속에서 그녀가 찾고자하는 진실의 연결이 이어지지만 와이엇은 조금 다릅니다.. 과거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난 그는 라스베가스라는 곳에서 오클라호마시티의 기억을 망각한 체 살아왔지만 다시금 돌아온 이곳에서 그는 그동안 잊혀지길 원했고 사라지길 원해던 기억속 근원의 고통을 다시금 떠올리고 자신의 현재가 어떻게 과거의 기억에 매몰된 체 살아가고 있는 지 깨닫는 것을 보여주니 말이죠, 그리고 와이엇은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리길' 원했던 기억과 함께 이 소설의 또다른 사건의 스토리에 사립탐정의 직업적 방향성을 잃지않고 있죠, 캔디스라는 여성에게서 벌어지는 사건의 내막을 밝히는 것이 일단 주목적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주는 장르적 재미는 만만찮게 흘러갑니다.. 아마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만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상당히 지루했을 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와이엇을 통한 스토리의 흐름의 구심점을 흔들지 않은 체 과거를 소환하는 문장력을 보여주는 서사를 펼쳐보이죠, 좋습니다.. 무겁지도 않고 말이죠,


    5. 남겨진 자들이 감내해야할 고통에 대해서 우린 늘 접합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 사회적 이슈속에서, 무엇보다 국가적 재난속에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죠, 잊고 싶고 잊어야하고 잊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잊어지는 것 또한 아닌게 우리 인간입니다.. 누군가는 왜 또다시 끄집어내어 분란을 일으키냐고 떠들어대고 누군가는 아무렇게나 지껄여대는 트라우마라는 말로 단정지어 버리고 어쩔 수 없이 벌어졌던 사건이니 쉽진 않지만 그냥 잊어버리는게 좋은거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누구나 과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체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그런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잊고자했고 잊어야했고 잊혀지길 원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기억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찾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게 단순히 소설속 인물이 아니라 크든 작든 우리들, 또는 바로 나의 인생과 삶과 과거의 기억의 아픔을 마주보고 뒤늦게나마 떠나보내며 눈물속 조금은 편안한 미소정도는 지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작가는 아주 매력적인 설정과 구성으로 독자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그당시 그때, 왜, 워째서, 뭐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나에게 지랄같은 사건이 발생했던 지, 그래서 그 이유는 무엇인 지, 마냥 덮고싶고, 있는 그대로 감춰지고 사라지길 원했던 그 일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또는 그 과거속에서 현재까지 벗어나질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의 이유를 찾고자 하는 것이지요,


    6. 인간은 언제나 힘을 얻길 원합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무엇인가를 해내기위한 스스로의 힘을 원합니다.. 어벤져스가 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름 자신의 삶과 미래를 만들어나갈 조금의 자신감만이라도 얻길 원하죠, 하지만 그러한 최소한의 힘조차 얻지 못한 체 과거에 갇혀있는 사람에게는 현실의 삶과 미래는 견뎌내기 어려운 장애물처럼 느껴질겝니다.. 단순한 책 한권으로도 자신의 과거와 현실속에서 살아갈 힘과 능력을 깨우칠 수 있을겝니다.. 물론 영화라고 다르지는 않겠지요, 이 작품이 그러합니다.. 장르적 재미와 가독성과 자극적 매력은 일반적인 스릴러소설이 주는 구성적인 즐거움은 조금 덜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작가가 그걸 몰랐겠습니까, 아마 충분히 알면서도 작가가 원하고 독자들이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인지해주길 원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과거에 대한 아픔과 또다른 삶에 대한 미련적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었겠죠, 그 와중에 작품적 재미마저 조금 가미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것일테구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독자들이 감성적인 영역에서 와닿는 매력이 가득차 있습니다.. 또한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그 답을 찾고 끝을 내고자했던 구성적 측면의 단조로움이 오히려 작품이 가져다주는 그 단순한 감성적 느낌을 배가시킨게 아닌가 싶습니다.. 딱히 뭔가를 드라마틱하게나 소설적 허구적 방향성에 얽매이는 대중소설의 유혹에 갇히지않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 현실적 결과물로서의 모양새로서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마무리와 그 방법론은 오히려 저로서는 더 큰 감흥이 남게 되더군요, 모르겠어요, 저는 딱히 그런 과거의 엄청난 아픔을 떠올릴만큼의 망각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작고 사소하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어떻게해서든 잊지 못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견뎌내어야할 분들도 계실거고, 또는 크든 작든 잊고 싶지만 자꾸만 나 자신을 탓하게 되는 패배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살아가시는 대다수의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이 작품이 주는 조금 다독거려주는 위안적 의도는 나름 그 역할을 충분히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렇네요, 좋은 작품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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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1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니 어쩐지 맘이 따뜻해지는 리뷰였어요. 다정한 말씨 덕분일까요?
그리움마다 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그리움마다 2019-05-13 13:09   좋아요 0 | URL
아, 감사드립니다.
어설픈 독후감이라 항상 민망한데 좋으신 말씀 고맙게 받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coolcat329 2019-05-1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도서관에 신청한 책인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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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직하게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누군가가, 아니 제 스스로라도 뭔가 재능이 있어 부자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 잘살고 부자인 가족이나 친지가 있어 인생 걱정없이 여유롭게 쓸거 쓰고 살꺼 사고 놀꺼 놀고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구요, 무엇보다 운동경기를 할 줄은 모르지만 그 경기에 나서는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그들이 받은 연봉이나 주급등을 생각하면 쟤들은 저 많은 돈을 받아서 뭐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이 오십에 나에게 저런 재능 하나 정도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도 해보죠, 어제는 류현진이 나오더군요, 주말 아이를 데리고 치과를 다녀오느라 마침 중계방송을 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차량 DMB로 류뚱의 호투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구의 중심인 미국의 그것도 최고의 야구팀중 하나인 LA 다저스라는 팀에서 우뚝 선 류뚱의 투구동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은 장난이 아니죠, 그 옛날 차노팍이 강속구로 걔네들의 삼진을 속아내던 시절 환호하며 아침나절 회사일은 둘째치고 TV를 틀어 응원하던 시절도 있었구요,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던져놓는 류뚱의 상쾌한 투구법이 어찌 그리 매력이 있는 지, 하지만 수많은 노하우와 그들만의 전통을 가진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한 선발투수의 모습으로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한 30대 초반의 선수가 가지는 마음속의 온갖 감정은 어떨까요, 그가 그 자리에서 쉽게 또는 아주 어렵게 한 구 한 구 공을 미트에 던져 넣은 행위를 하기 위해 그가 흘린 땀과 고통과 노력의 가중치는 과연 얼마로 치환할 수 있을까요, 제가 쉽게 나도 저런 재능이 있으면 돈 많이 벌 수 있을텐데로 대치할 수 있는 그런 흔한 댓가일까요, 뭐 그런 생각이 듭디다..


    2. 우린 쉽게 그들은 바라보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겠죠, 하지만 그들이 그렇든 아니든 상관없이 우린 누군가의 삶과 인생과 그 결과적 댓가에 대한 부러움을 가지곤 합니다.. 운동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저로서 축구의 종가인 잉글랜드의 축구경기에 나서는 손흥민을 보면서 저런 순발력과 골 결정력과 공간창출능력에 대해서 그의 몸으로 들어가 그처럼 골을 맛보고 세레머니를 펼쳐보고싶은 마음이 없진 않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자 부러움이죠, 하지만 만약 그런 것을 가질 수 있다면요, 돈으로 이러한 젊음과 가장 두드러진 인생의 정점으로 향하는 젊음의 경험치를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진 것이 돈 밖에 없는데, 이제는 더이상 삶의 낙이 없이 허무한 인생의 끝자락에서 남은 것은 단지 그동안 악착같이 모아온 돈밖에 없다면요, 그 돈으로 과거 내가 가지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상상적 꿈의 현실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현실화되는 꿈이 단지 나에게는 정신적이고 심리적 만족에 불과하지만 그 꿈을 이루는 당사자인 누군가 젊은 나의 대체자는 그걸 인지하지 못한 체 그 꿈을 일궈내는 상황에 대해 자기 만족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요, 물론 그 꿈을 만들고 이뤄주는 대상이 자신을 조종하고 자신은 그 꼭두각시밖에 되지 않은다는 것을 모르면 좋을텐데, 내가 만들고 이루어낸 세상의 꿈이 누군가가 만들어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래도 마냥 좋을까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김호연 작가의 상상적 세계관을 토대로 모든 것을 가진 기득권인 노인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젊음과 열망만 가진 젊은이들을 조종하고 그들을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이끌어가려는 이야기, "파우스터"입니다..


    3. 여기서 제목에서 유추되는 의도는 공부하고 담쌓고 살아온 저로서도 대강 감이 옵디다..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 욕망을 얻은 파우스트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그 힌트를 끄집어낸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도 그렇게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목은 "파우스터"이지요, 파우스트에게 조종을 당하는 존재들인 '파우스터', 이 작품은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메피스토 시스템에 수백원을 투자하고 자신만의 파우스터를 찾는 노인들, 세상의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그들은 보잘 것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단지 열망과 희망과 그 재능만 보유한 젊은이들을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삼아 그들의 꿈을 이루어주려고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국내 프로야수선수 박준석이라는 뛰어난 좌완투수입니다.. 그리고 그를 조종하는 파우스트는 이태근이라는 은퇴한 정치인입죠, 준석은 올해를 끝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됩니다.. 뺴어난 투구솜씨로 팀성적이 저조한 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쉽게 말해 과거 한화에서의 류현진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현실과 능력에 있어서는 다른 영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준석은 자신에게 교통사고를 낸 최경이라는 여인에게서 전해듣게 되죠,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 진실을 접한 준석은 자신의 머리속에 숨겨진 조종의 실체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사랑했던 윤지수라는 여성 역시 자신과 동일한 존재였으나 자신의 파우스트인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지수의 파우스트는 최경이라는 여인의 아버지인 재벌 최회장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최경은 아버지의 죽음이 메피스토 시스템으로 인한 진실을 알고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지다가 박준석에게까지 다가오게 된 것이죠, 최경이 준 침을 머리에 꽂은 준석은 파우스트인 자신의 조종자가 자신에게 들어올때마다 열기로 그를 인지하고 어떻게해서든 그의 조종과 꼭두각시에서 벗어날 계획을 짜기 시작하죠, 그리고 또다른 기득권의 중심적 욕망덩어리중 한명인 남선이라는 노인이 그동안 자신이 사채를 통해 벌어온 돈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파우스터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에 차은민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 눈에 들어오죠, 과연 준석과 은민의 앞날은,


    4. 괴테고 파우스트고 뭐 이런 고전적 문학이나 철학적 소재에 대해서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또 알려고 한다고해서 알아지는 것도 아닐꺼구요, 전 그정도의 머리가 안되니 말입니다.. 단지 영화 고스트라이더처럼 악마에게서 자신의 삶과 이루고 싶은 욕망을 얻기 위해 영혼을 파는 이야기는 굳이 그런 책을 읽지 않아도 한번씩 접해보셨을테니 이 작품의 이야기는 전혀 생소하거나 어색하지 않고 즐길 꺼리가 많은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게다가 영화 겟아웃이나 스텝포드 와이프같은 영화나 우리나라 영화인 신하균이 나왔던 더 게임같은 영화에서도 이러한 소재를 통한 스릴러적 방식은 어느정도 독자들에게 익숙한 것이죠, 다만 이 작품은 그런 설정임에도 대단히 현실적인 상황을 이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비현실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기도 하구요, 누군가가 누군가를 조종하고 그를 이끄는 방식이 솔직하게 그렇게 나빠 보이질 않습니다.. 그 자체만 놓고보면 말이죠,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나의 대체자를 이롭게 만들기 위한 방법론으로 보여진다면 오히려 나를 조종하는 누군가가 말 그대로 내삶의 후원자로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문제는 기득권들의 욕망들입죠, 이들은 절대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오질 않았습니다..물론 소설속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보니 자신에게 해가 되는 제거대상이 끊임없이 생기기 마련입죠, 이 소설은 그런 자신의 대체자의 삶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암투와 세상의 양극화적 대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존재적 가치의 영향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자의적 자유와 감금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야되겠죠, 원하느냐, 또는 원하지 않지만 그냥 주느냐의 차이같은거 말이죠, 좀 어렵나, 하여튼 어떤 상황이든 그 끝이 좋은 것인 지 아닌지는 조종당하는 자가 선택할 몫은 아니라는게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인거죠,


    5. 자신의 삶을 자신이 만들어내지 못하고 누군가가 하나에서 열까지 받쳐준 조종된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린 어떻게 반응할까요, 여기까지 일궈온 내 인생의 정점이 단지 나의 노력과 힘과 열정이 아니라 누군가가 계획하고 받아먹게 준비해준 밥상이라면 말이죠, 모르겠어요, 솔직히 저 같으면 그렇더라도 좋을 것 같긴 한데, 자신의 존재적 가치나 주체적 의도가 상실되어버린 꼭두각시와 같은 삶이라면,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 누군가로 인해 컨트롤되고 나의 모든 것이 그에게 감시되고 있다면 좋진 않겠죠, 감금되고 자유를 억압당한 인간은 늘 근원적인 해방의 욕망을 가질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이 작품은 그런 대치적 반감들이 작용하는 매력적이기고 기득권을 가진 권력과 소외층의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의도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드라마틱하진 않습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태근과 준석의 관계를 보나 또다른 중심인 남선과 은민의 이야기속에서도 뭔가 농밀하게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줄만큼의 상황적 쫄깃함은 좀 드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주변 인물들의 동선이나 상황들로 인해 발생하는 연결고리들도 딱히 작품의 스릴러감을 이끌어내질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단지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상황적 반전의 매력은 과장된 부분이 없진 않으나 아주 매력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깜짝 놀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해결적 방법론과 상황적 매듭의 끝을 찾는 부분은 좀 허전했죠, 난 그랬다고,


    6. 뭐 흔한 설정같이 보이지만 그 속에 드러낸 상황이 주는 매력은 여느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상당히 즐겁고 이런 작품의 상상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게다가 조금은 흔한 소재를 통해 인물들을 통해 드러내는 드라마틱한 심리적 변형과 그들의 대치적 감정들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문장력은 솔직히 집중이 되는 즐거움이 많습니다.. 솔직히 조금 더 짧고 타이트한 상황들로 쫄깃한 느낌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였다면 이야, 최곤데라고 엄지척했을텐데 이런저런 상황적 연결과 함께 인물들이 주는 심리적 의도에 조금 더 집중하는 작가님의 친절함(?!)때문에 중간중간 조금 뻣뻣한 독서를 하게 된 점은 아쉽지만 국내소설로서 이런 즐거움이 많은 상상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서 독자들에게 선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디다.. 허구적 소설을 통해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굳이 끄집어내 생각치 않아도 작가가 의도한 사회적 기득권층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의 고뇌와 그 변별적 경험에 대한 문제의식은 충분히 읽는 동안 와닿습니다.. 참 세상은 바뀌지 않죠, 물론 다 자기 잘 살라고 하는 삶이긴 하지만 류현진이 야구를 잘하든, 손흥민이 축구를 잘하든, 또는 이 시대의 청년이 자신의 삶에서 성공을 하든 이런 삶은 극소수죠, 대다수의 청년과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삶은 우리 기득권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다리를 건너 자신의 삶을 이끌어내야함에도 우린 여전히 국회의원을 감금하고 줄을 연결하여 문을 닫아걸고 자신의 밥그릇을 안잃을려고 미친듯이 타도를 외치고 수호를 외치는 이율배반적인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불법과 합법과 정당성과 부당성의 의도는 그들과는 무관합니다.. 그들은 전혀 뉘우치지 못하고 잘못이 무엇인 지 모릅니다.. 단지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을 알아주는 이 사회의 기득권자들과 그 부역자들을 비롯한 맹목적인 국수주의자들의 판단이 진짜인냥 그들 뒤에 숨을 뿐이죠, 저들은 저런 행우지가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외칩니다.. 정녕 그럴까요,아닐텐데 얍실한 족속들, 짱나...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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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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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빠, 저기 누가 있어... 순간 소름이 쫘악 돋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험이야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터이지만 그날 그 순간 그토록 강렬하게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경험은 저로서는 아주 섬뜩한 공포감이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때 수련회라는 걸 했습니다.. 아빠와 함께하는 캠핑이었죠, 신나게 놀고 늦고 늦은 시간 가까스로 잠이 든 저에게 아이는 칭얼댑니다.. 쉬가 하고 싶은 거였죠, 혼자 보내지 못하니 텐트를 열고 아이랑 함께 이제는 폐교된 교실의 복도안으로 들어섭니다.. 물론 운동장 근방의 나무옆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몇몇 관리하시는 분들의 눈도 있었는 지라 조금 힘들어도 교실 복도를 들어섭니다.. 운동장의 불빛으로 그렇게 어둡진 않았지만 느낌이 아주 쏴아하더라구요, 아니나다를까 아이가 복도를 들어서자마자 아빠, 저기 누가 있어라고 합니다.. 어디, 하면서 복도 반대쪽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없더군요, 불빛이라고 토닥거리며 입구 옆 화장실로 들어서서 아이와 함께 쉬를 하는 순간 목덜미에 소름이 쫘악, 눈을 옆으로만 돌리면 그 상황의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도저히 돌리지를 못하겠더군요, 순간 아이가 먼저 쉬를 누고 입구로 나서는데 또다시 아이는 아빠, 저기 누가 있다니까....라고 합니다.. 아직 마무리를 못한 저는 아이를 향해 밖에 정리하시던 선생님이시라고 대충 둘러대고는 서둘러 화장실을 나와서 건물을 벗어났습니다.. 물론 운동장에는 몇군데 불을 밝혀 정리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조금전 느꼈던 그 섬뜩함을 사라졌지만, 텐트를 들어서기전 왜 전 그 곳을 바라보았을까요, 아이가 누군가가 있다고 했던 그 공간을 왜 전 보고야말았을까요, 아이의 말처럼 화장실이 있었던 공간의 맞은편 복도끝 건물의 외부에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또렷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죠, 으아아, 근데 왜 제가 화장실에 있을때 느꼈던 옆에서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던 그 섬뜩함은, 화장실과 복도 끝의 거리는 그렇게 순간적으로 다가오기 가깝질 않은데, 왜에....


    2.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재미지게 놉니다.. 간밤에 쉬를 하러간 것도 전혀 기억을 못하더군요, 간밤에 보았던 그 복도끝의 건물의 외부엔 벌써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물총을 쏴대며 놀고 있더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장소를 어슬렁거리며 가보니 그곳에도 외부 화장실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아, 누군가 화장실에 갔다가 눈이 마주쳤구나라고 넘겨버리고 말았어야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쉬를 하는동안 옆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만 같은 그 섬뜩한 공포감과 함께 또렷이 절 바라보던 간밤의 누군지도 불분명한 존재의 그 눈빛은 도저히 잊혀지질 않더라구요, 또다시 그 소름돋은 경험이 몸을 쏴악 훑고 지나가더군요, 물론 누구나 한번쯤은 다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상상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공포와 섬뜩한 경험은 그렇게 머리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작품을 읽으면 괜히 그런 과거의 경험이 실재한냥 느껴지는 것이겠죠,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를 오래간만에 만났습니다.. 아니지, 이 작품이 출시된 시점으로보면 제가 늦게 읽은 것이군요,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가이신 유키토 작가의 초자연적 호러 미스터리소설 "어나더"입니다.. 일본의 지방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지는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현상에 대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아야츠지 유키토의 신본격적 성향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호러물이라고 보시면 될 듯,


    3. 도쿄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을 하던 사카키바라 코이치는 과거 엄마가 살던 요미야마시의 요미키타 중학교로 전학을 오게 됩니다.. 다름아닌 아버지가 인도로 1년간 가계시기 때문이죠, 사카키바라의 엄마는 사카키가 태어난 그해에 이곳 요미야마의 할머니댁에서 병으로 돌아가시고 여태껏 아버지와 단둘이 살다가 홀로 도쿄에서 지내지 못해 외가의 할머니댁으로 오게 된 것이죠, 중3인 사카키는 요미키타 중학교의 3학년 3반으로 배정받아 5월부터 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폐에서 기흉증상이 생겨 다시금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첫 등교가 늦어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작품의 프롤로그에 요미키타중학교의 3학년 3반에서 과거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가 보여지죠, 과거 26년전 이 반에는 미사키라는 아이가 있었죠, 미사키인지 마사키인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이 아이는 모든 것이 뛰어나 반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선생님들도 칭찬하는 아주 매력적인 아이였으나 불행한 사고로 가족이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되죠, 그렇게 사랑을 받던 미사키를 잊을 수 없었던 친구들은 미사키의 자리를 그대로 둔 체 그가 있는 것 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죽음으로 친구를 잃은 아이들의 최소한의 사랑법이었겠죠, 그런데 그렇게 한해를 보내고 찍은 졸업사진에, 있어서는 안되는 미사키가 버젓이 찍혀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학교괴담의 이야기가 사카키바라가 전학을 온 시점에 3학년 3반에서 벌어지는 모냥입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기흉 치료를 받고 있던 어느날 사카키는 한 왼쪽 눈에 안대를 한 한 여자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미사키 메이라 불리는 여학생은 병원의 지하2층의 영안실로 향하면서 사카키와 마주친거죠, 그리고 등교 첫날 그 아이를 사카키는 교실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3학년 3반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 사카키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는데,


    4. 거의 처음 일본소설이라는 것을 접하는 시점에 만난 작품이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뭐랄까요, 일본 추리소설을 읽기 위해서 가장 먼저 접하는 신본격추리소설의 추천작중 하나였다는 것이죠, 일반적이고 대중적이면서 가장 추리적 입맛에 적합한 작품이어서 충분히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 몇몇의 관의 시리즈가 이어졌구요, 아시다시피 유키토 작가는 신본격미스터리의 대표자로서 사회파가 주류를 이루던 시점에 새로운 추리적 기법으로 매력적인 신세대격 미스터리의 유행을 이끌어낸 작가로도 유명하죠, 이 점은 유키토 작가께서 대중적 취향이나 장르적 공감과 상황적 묘미를 아주 적절하게 이끌어내시는 장점이 뛰어난 작가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뭐랄까요, 이번에 읽은 "어나더"라는 작품은 흔한 대중적 소재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봄직한 학교괴담의 실체와 관련된 사춘기시절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겪는 청소년적 심리와 결부된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미스터리로서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 애둘러 공포적 상황들이 일종의 호기심으로 우선작용하는 듯한 미묘한 심리적 공포감을 적절하게 살려낸 대중호러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과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가볍지도 않은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구체적 연개성을 중심으로 스토리속에 반전의 트릭을 상황적 궁금증으로 이끌어내는 매력이 아주 많은 작품이라고해도 될 듯 싶구요, 그 시절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그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현실적으로 잘 접목시키고 공포적 메타포로 청소년들의 '실재'적 두려움과 아픔들을 적절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5. 이야기는 두명의 캐릭터가 중점적으로 이끌어가는 구조이죠, 사카키바라 코이치라는 남학생과 미사키 메이라는 여학생이죠, 이 두명의 학생이 요미키타 중학교 3학년 3반이라는 특수한 공간적 배경을 통해 수십년동안 이어져오던 학교괴담의 중심이 됩니다.. 사실 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과 과거의 이야기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만 뭐랄까요, 조금은 밋밋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작품이 출시된 당시가 아닌 십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설정 자체가 상당히 흔한 구성적 측면이라는 점을 무시하지 못하겠고 또한 중심 인물인 미사키 메이에 대한 캐릭터의 구성이 나쁘진 않지만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오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카키바라라는 인물을 통해 그 시절의 중3의 생각과 미묘한 혼란적 감정선은 아주 현실적이면서 공감적인 매력이 큰 것은 또다른 매력이지만 그로 인해 실체가 밝혀지는 이런저런 반전과 그 깨다~름의 끝은 딱히 웃따스럽진 않았던 것 같아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수십년을 이어져온 학교괴담의 실체와 관련된 수많은 죽음과 상황들의 개연성은 조금 과장된 느낌도 지울 수 없었고 말이죠, 아무리 그러려니하고 읽을려고 해도 좀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막 소름이 끼칠 정도의 현실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잠든 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만 바라본 그 실체가 없는 존재의 공포스러운 두 눈이 아니라, 어, 저 사람 뭐지, 하면서 몇명이 지나가다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누군가를 같이 바라본 느낌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괴담인거는 알겠는데 소름은 전혀 닭살스럽지 않은 뭐 그런,


    6. 대중적인 소재이고 흔한 전형적 공포를 이끌어내는 설정이라서 재미는 있습니다.. 있어서는 안될 아이가 사진이 찍힌 심령사진이나 영화속의 이미지속에 언듯 지나가는 듯한 유령의 실체와 같은 이야기는 늘 궁금하고 미스터리한 재미를 주죠, 그런 상황을 청소년의 학교를 배경으로 하면 더욱 실감나는 매력이 다분합니다.. 잘 읽히고 편안한 호러적 재미가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죠, 게다가 캐릭터가 주는 입체적 매력도 무시못할 즐거움입니다.. 애니메이션적 이미지나 스토리적 대중성도 충분히 가미된 작품이니만큼 이 작품의 대상은 성인층이 아닌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그 또래의 연령층이 가장 즐거워할 소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진 못했지만 얼마전 헐리우드의 한 감독이 만든 '어스'라는 영화도 이러한 소재를 중심으로 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아시다시피 과거 니콜 키드만이 나왔던 디 아더스나 브루스 윌리스의 식스 센스도 이러한 설정의 매력적인 심리공포스릴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이러한 대중적 호러소설의 매력은 영상화되어 보여지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설로서도 나쁘진 않지만 대중적 선호도나 이미지적 매력에 있어서는 이 작품은 영상적 기법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진다면 더 즐거울 것 같아서 말이죠, 아무래도 미사키 메이의 이미지는 문장보다는 입체감이 있는 영상이 더 그 구체적 매력이 더해질 듯 싶어서 그렇습니다.. 왼쪽 눈의 안대를 푸는 순간 공허한 죽음의 진실은,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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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1.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큰 나라에서 살고 있었던(우리를 제외한 세계 많은 나라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때) 우리는 사실 뭐가 위험하고 뭐가 우릴 두렵게 하는 지를 잘 모르고 살았죠, 전 그랬습니다.. 90년대 전방부대의 군생활을 햐였음에도 극도의 긴장감을 느껴보질 못했습니다.. 북한의 땡끄가 휴전선 부근으로 밀집하고 있다는 정보전달로 인해 진돗개가 발령이 되었어도 전쟁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걱정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이러한 극한 대치를 이루고 살아가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들어 있는 우리의 삶이었음에도 생활과 관련된 공간속에서 테러라는 극단적인 파괴적 행위를 겪어보질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세계적 문제가 되는 종교적 분쟁도 없었고 인종과 관련된 내부적 혼란도 없는 단순한 정치적 행위에 따른 강대국의 이념의 희생양으로서의 동족의 비극외에는 제가 살아온 시대의 우리의 삶은 그렇게 불행하거나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인 테레의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다만 정치라는 이 요사스러운 권력의 욕망덩어리에 집착한 더러운 적폐적 인간들의 나라를 좀먹는 행우지만 우리를 아프게 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의 공간을 넘어선 세계의 전쟁으로 눈을 돌리고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의 비극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려니했고 뉴스에서 보도되는 이야기조차 영화적 상상으로 치부하고 넘겨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영원한 우방(진짜?!)이었던 미국의 트레이드마크인 쌍둥이 빌딩이 어느날 내려앉아버렸죠, 그순간을 저 역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기자의 말 한미디가 여전히 귀속에서 맴도는군요,


    2. 중동지역의 분쟁은 세계 근대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역의 종교적, 인종적 혼란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아픔이 내부적인 것이고 악한 사회적 갈등으로 야기된 전쟁이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들의 전쟁의 이면에는 석유와 관련된 강대국들의 농간이 주요했음을 우린 압니다.. 물론 종교적 이유로 그들 내부의 심각한 극단적 폭력행위가 자행되고 사회적 테러가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것 또한 우린 압니다..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이슬람교의 근원적인 코란의 교리에 어긋나는 자살테러를 종교적 희생인냥 스스로를 세뇌시켜 전세계의 위험적 테러행위를 자행하는 것 또한 우린 압니다.. 국지적이고 영역적인 전쟁의 테두리가 전세계적 위험의 폭력행위로 돌변한 사실 또한 우리는 강대국의 이익과 결부된 이면의 진실이 있다는 사실도 우린 압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누구의 삶과 현실적 생활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생명을 파괴해버리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는 것이지요, 극악한 방법으로 세상에 자신들의 주장과 종교적 신념인냥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절대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이지요, 9.11이 그러했습니다.. 이후의 그들의 테러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의 테러의 주동자와 그 중심을 해체하지 않으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그런 일이 여전히 중동에서 지금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9.11테러를 저지른 오사마 빈 라덴이 사라진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악행의 방법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우리의 첩보 스릴러의 아부지와도 같은 프레드릭 포사이드 할배가 다시금 보여주십니다.. "아프간"입니다.. 70년 이후 가장 중요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황폐해져버린 아프가니스탄의 삶과 그 이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3. 알카에다라는 테러조직의 파괴적 행위로 인해 전세계는 여전히 긴장감속에서 그들의 일거투일투족을 알아내기위해 모든 첩보적 방법론을 동원하여 그들을 색출하는게 가장 중요한 국제테러대응책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도청부터 모든 정보관련 시스템의 연결망을 구축하고 관계자 하나에서 그 대상의 연결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죠, 그러던 어느날 테러조직의 하위 관계자에게서 확인된 휴대폰의 정보가 누군가의 실수로 파키스탄의 한 지역에서 신호음을 울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알카에다의 가장 중요한 자금책중 고위층인 튜픽 알키르가 그 정체를 드러내게 되죠, 그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보를 숨기려고 했지만 그가 남긴 노트북 한대로 인해 그들이 이루고자하는 또다른 테러의 정보를 발견하게 됩니다.. 코란에 등장하는 위대한 계시중 하나인 '알 이스라'라는 문장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이 계시가 지칭하는 테러가 무엇인 지, 알아내야만 그들의 테러를 막을 수 있지만 영국과 미국의 정보국은 그 말의 진정한 의미조차 파악하질 못하죠, 그리고 이 계시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이슬람교의 전문 연구자들을 모셔서 의미를 알아내려합니다.. 그리고 거창하게 명명한 이 '알 이스라'가 또다른 엄청난 테러 계획의 일환이라는 정보를 확인하죠,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내거나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 알카에다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밝혀낼 길이 없죠, 하지만 영국의 퇴직중령 마이크 마틴은 어린시절 중동지역에서의 삶으로 인해 알카에다로 신분을 위장하고 아프간의 한 인물인 탈레반으로 소용돌이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그가 위장해야될 신분의 탈레반은 과거 그가 아프간에서 함께 한 전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5년동안 관타나모에서 구속된 체 탈레반과 관련한 아무런 정보도 내놓지 않고 있는 이즈마트 칸이라는 인물이죠, 과연 그를 대신해 알카에다로 들어갈 마이크 마틴의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요,


    4. 우선 작품을 논하기 이전에 작가인 프레드릭 포사이드라는 양반을 알아봐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할배는 전쟁첩보스릴러소설에 있어서는 톰 클랜시보다 더 인정을 받으시는 분이시라고 말씀드려야될 듯 싶긴 합니다.. 물론 저의 입장이지마는, 여하튼 연세가 이제 80세 정도 되셨습니다.. 이 분은 '자칼의 날'이라는 아주 대단하고 위대한 첩보스파이스릴러소설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속에서 묘사되는 모든 상황과 이야기와 계획과 개연성을 이루는 스토리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현장감이 넘치기 때문에 기자로서 활약하던 그에게 최고의 찬사와 함께 가장 뛰어난 데뷔작으로서의 영광을 안겨주게 되죠, 이후 그가 선보이는 대다수의 작품들의 작품적 성향도 이 작품의 결과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다듬고 확인하고 조사해서 이게 허구인 지 현실인 지 구분조차 불가능하게 작품을 이끌어내고 있는 분이시죠,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 "아프간"에서의 그가 드러내는 이야기의 구성도 대단히 현실적인 국제정세의 영역속에서 몇몇의 허구적 인물을 통해 진실적 이야기를 음모라는 역사적 이면에 빗대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알카에다와 아프간의 탈레반을 그들의 혼란속에서 현재도 유효한 폭력과 파괴의 행위를 지속하고 있지만 이 작품이 집필된 당시의 2007년의 시점엔 여전히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의 생명을 지킨 체 사회적 테러와 폭력을 자행하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9.11테러 이후 그들의 빌어먹을 사명을 위해 더 크고 위험한 테러를 준비중이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로 세계적 위협으로 한순간도 긴장감을 멈출 수 없었다는 사실은 테러에서 벗어난 곳이라는 우리나라에까지 이어졌죠,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의 국민이 무장단체들에게 잡혀 죽음을 당하고 이후에는 단체가 납치되어 아픔을 겪은 것도 이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빌어먹을 것들,


    5. 첩보스파이스소설의 교과서와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시작단계부터 벌어지는 모든 정황과 상황들을 하나에서부터 꼼꼼하게 다루고 그 연결고리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않고 스토리의 틀을 견고하게 이끌어나갑니다.. 하나의 상황적 스파이전을 이해하기 위해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정황들이 진실의 상황처럼 연결되는 것이죠, 대단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치밀함이라고 보여집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작가님이 기자로서의 사실적 근거에 바탕을 둔 작품의 고려라고 생각되는 점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치밀함과 꼼꼼함과 구체적 정황들로 인해 요즘의 속도감이 넘치는 가독성과 대중성에 적응이 된 흥미위주의 스릴러의 방식에는 더딘 진행의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찬찬히 그것도 아주 명확한 인식적 이해력으로 문장을 더듬어 나가지 않으면 금새 잊어버리게 되는 앞장의 내용들입죠, 그러다보면 급한 마음으로 훑어버린 이야기가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이 갈수록 스토리에 재미를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마음은 바쁜데 작가는 그런 독자의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상황을 이해하고 전진해나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존 르 카레도 그러했죠, 포사이드도 그러합니다.. 영국의 스파이소설의 대가들은 이러한 첩보전과 관련된 현실적 스토리에 아주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죠, 재미와 감성의 불은 쉽게 일어납니다.. 독자들은 아주 단순합니다.. 드라마틱하고 감정적 역류를 잘 표현하면 그만큼 독자들은 집중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스릴러와 스파이소설의 대가인 포사이드 할배는 그렇게하질 않습니다.. 진중하고 현실적이고 무엇보다 사실적인 시대적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적확한 정황과 상황을 빗대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소설이되 진실과 현실임을 잊지말라는 것으로 보입디다.. 전 그렇게 봤습니다..


    6. 우리의 현실이었던 한 순간에 벌어졌던 9.11의 아픔 이후에 벌어지는 테러단체를 와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스파이소설이라는 점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그들의 극악적인 테러행위를 경험했던 저로서는 대단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지금껏 우리들은 그 아픔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20년이 채 지나지않은 아주 슬픈 역사적 아픔입죠, 세상은 그들의 아픔과 경험을 잊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기억하고 끊임없이 되새기고 끊임없이 떠올리죠, 잠시 엇나가는 이야기지만 우린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수많은 눈물과 아픔과 이별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그 아픔을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색이 이 나라의 어른이자 사회를 이끄는 자들의 일부는 이제는 그만 들먹이라고 외칩니다.. 언제까지 우려먹을거냐고 떠듭니다.. 자식새끼 죽은걸로 언제까지 나라를 욕할꺼냐고 씨부립니다.. 그런 인간들이 대외적으로는 반공을 떠들고 천안함을 기억하자고 외치고 북한의 만행을 잊지말자고 씨부립니다.. 기억해야죠, 하지만 우리의 내면과 우리들의 아픔 먼저 보듬고 다스리고 껴안지 않고 무슨 일이 이루어질 수 있나요, 잠시 이야기가 샜습니다.. 여하튼 이 작품 "아프간"은 어떻게보면 르포기사처럼 다루어진 한 시대의 세계가 겪은 아픔과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정의에 대한 이야기입죠, 물론 서방의 시선으로 바라본 중동의 모습과 그들의 극악한 행위에 대한 스파이소설이라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작가인 프레드릭 포사이드 할배는 그런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어느정도 객관성을 유지하면 독자들로 하여금 그속을 드려다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왜 이 할배가 대가라고 칭하고 존경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할배가 보여주는 아프간과 중동과 전쟁과 스파이와 관련된 온갖 지식과 자료와 역사적 사실과 상황들의 현실적 이야기는 그만이 이끌어낼 수있는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탄탄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 지 이 작품의 스토리를 통해 저는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뭐든 탄탄해야되,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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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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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헐리우드의 영화들중에 MCU라고 있죠,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라 일컫더군요, 마블이라는 만화에서 비롯된 상상력을 영화적 이미지로 탈바꿈한 체 그 세계관을 하나로 뭉쳐버린 아주 거대한 자본력으로 전세계의 영화 시장을 거의 평정하다시하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죠, 조만간 그들의 어벤져스들이 모인 끝장을 볼 시리즈 한편이 극장에서 준비를 하고 있습디다.. 작년에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이어서 '엔드게임'이라는 부제로 살아남은 어벤져스들이 다시 뭉쳐서 지구를 구하는 영화입니다.. 타노스라는 전우주적 빌런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우주에 존재하는 스톤을 모두 모으는 일이 영화에서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우주의 생명체의 반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타노스가 가진 건트렛이라는 장갑에 모인 위대한 파워로 인해 타노스의 핑거스냅 하나로 우주 생명의 반이 한순간에 재로 변해버렸습니다.. 타노스딴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그런 짓을 저질렀겠죠, 하지만 이러한 일이 생기기 이전부터 이 마블의 영화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제노사이드적 발상으로 인류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내는 설정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인류에게 닥친 위기에 대한 만화적 상상력으로 영화화한 모양새이긴 하지만 그들이 들어내는 영화속 이야기는 인류가 만들어가는 지구라는 이 세계속에서 닥쳐올 위기감에 대한 경각심의 발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죠, 한정된 공간속에서 끊임없이 증가해가는 세상의 포식자들에 대한 경각심, 우린 12세 관람가의 영화속에서 생명체에 대한 존엄성과 더불어 이로 인해 벌어지는 제노사이드와 관련된 두려움을 배워나갑니다..


    2. 인류는 산업혁명을 겪고 새로운 과학적 습득과 지식의 학습으로 인해 더욱더 스스로에 대해 관대해지기 시작합니다.. 인류는 그렇게 지구라는 공간속에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가죠, 자연의 모든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포식자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스스로 깨우칩니다.. 굳이 하나하나 드러낼 필요도 없이 우리가 사는 세상속에서 자연이라는 공간이 주는 헤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갓 입학한 초등학생도 학교에서 배우고 깨우칩니다.. 하지만 우린 인간입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적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뭔가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죠, 단지 그 노력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서도, 우리나라는 저출산을 겪고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이 과거에 비해 꾸준히 감소하고 있죠, 사회적 문제입니다.. 나라와 국가의 경쟁력은 그 나라에 살아가는 국민의 역량과 그 숫자가 있다는 점 역시 우린 무시못하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참 불합리하죠, 세상은 인류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자연이 황폐해지고 있음에 인간이 잘살기위해 환경과 지구의 생명을 지켜내기위해 그렇게 난리를 치고 있음에도 나라가 살고 국가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또 인구가 늘어나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죠, 이율배반적입니다.. 인간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이 자신이 살아가는 터전을 갉아먹고 있는 와중에 또 인간들은 각자의 삶을 위해 자연에 주어진 생존의 법칙을 인간만의 방식으로 대체할 방법을 끝없이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저의 몫이 아닙니다.. 단순히 지구를 위협하고 우주의 생명을 반으로 줄여버린 악의 축인 타노스가 자신만의 권력과 힘을 과시할 목적으로 그랬는 지, 아님 하나하나의 생명의 소중함을 지켜내기 위해 지구의 수명이 줄어들더라도 세상을 구원할 어벤져스가 타노스에게서 우리의 생명을 되돌리고 지켜내는 것이 가능한 지, 답은 명확합니다.. 누구나 그렇겠죠, 사라진 생명이 나와 내 가족이 된다면, 그렇게 되지 않길 누구나 바랄테니까요


    3. 영화 이야기로 조금 샛지만 설정이나 주제나 이야기의 구성은 딱히 다르지않기에 좋은 비유였다고 으하하, 자화자찬하면서 다시금 저에게 다가온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스릴러소설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우리의 삶과 관련된 디스토피아적 음모론을 담은 멋진 스릴러소설 "노아"입니다.. 한 남자가 독일의 베를린에서 노숙자로 거리를 떠돌고 있습니다.. 노아라 불리우는 이 남자는 얼마전 총격을 당한 체 죽을 위기에 놓였다고 거리의 노숙자인 오스카의 도움으로 인해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렸죠, 오스카를 만나기 전 총격을 입은 사실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노아에게 지금 자신은 추위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게 급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새로운 독감이라 불리우는 마닐라독감이 유행하여 다시금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그가 오늘 하루를 나기위해 거리의 골목에서 밤을 지새는 동안 신문에 등장한 한 그림을 보게 됩니다.. 누군가가 그린듯한 그림의 주인을 찾기위한 광고였죠, 그는 즉각 과거의 기억이 사라져버린 자신과 연관된 그림임을 인식하고 신문에 나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뉴욕의 기자 셀린이 그 담당으로 전화를 받게 되죠, 셀린은 이제 임신 3개월에 접어든 상황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유전병적 질환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은 터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노아는 전화를 걸었고 그 전화에 셀린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신문사에 보고를 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호텔을 잡아주죠, 그리고 노아는 그녀의 통화를 통해 그녀가 예약한 호텔에 도착하고 셀린은 신문사로 들어갑니다.. 호텔에서 도착한 노아를 알아본 사람과 그로 인해 그가 머물렀다는 스위트룸으로 안내를 다시 받은 노아는 과거의 기억편린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뉴욕뉴스의 기자 셀린은 이로인해 자신의 신문사의 감금실에 붙잡히게 되죠, 베를린의 노아는 자신이 머물렀다는 방에서 자신의 가방으로 보이는 내용물을 습득하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고, 영문도 모르는 체 감금된 셀린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적 두려움에 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다가오는 암살자의 이야기가 펼쳐지죠,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피체크가 펼쳐놓는 스릴러의 스펙타클한 향연의 급행열차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안전벨트 꼭 하시구요,


    4. 좀 유치한 멘튼가요, 여하튼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아주 매력적으로 흘러갑니다.. 상당히 복잡하면서도 여러공간의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등장시키면서 이야기는 확장되어 흘러가기 시작하죠, 세계의 전염병의 우려와 함께 세계적 제약회사의 주인이 재파이어라는 인물은 낙후된 지역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참상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인권운동가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세상의 기득권자들에게 피력하고 그들의 혐오스러운 욕망과 인간적 이기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곤 합니다.. 이 소설은 음모론에 관련된 이야기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상상력에 기반한 스릴러소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영화의 제노사이드적 음모론이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여전히 세상은 두렵죠, 남의 일이 아니라 메르스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는 지, 사스로 인해 줄을 서가며 예방 접종을 하려 했고, 여전히 독감으로 인한 두려움을 변함없이 우리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전염의 공포는 여전히 이 사회의 심각한 두려움입죠, 이 작품은 이러한 인간에게 벌어지는 심각한 질병적 이야기속에서 그들이 보여주고자하는 인간으로 인해 펼쳐지는 세상의 폐해를 담고자 합니다.. 피체크는 어떻게 보면 명확한 지구의 종말론적 예견을 우리의 이율배반적 사회시스템을 중심으로 다시한번 경고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새로운 상상력도 아닌 여전히 현실적인 위협을 드러낸 사회파적 미래소설이라고 보셔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5. 노아라는 한 인물에게 주어진 이야기의 흐름은 그로 인해 진실을 찾아나가게 됩니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과거에 자신이 한 행동의 단서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의 궁금증은 아주 즐겁습니다.. 또한 자신이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온갖 위험과 협박속에서 자신과 연결된 세상의 음모론적 단서를 찾아나가는 설정도 무척이나 흥미롭죠, 스토리가 대단히 스펙타클합니다.. 노아라는 인물에 집중된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디스토피아적 음모론은 아주 거대합니다.. 그리고 나라와 나라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도 아주 박진감 넘치죠,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추격전은 아주 일미라고 생각합니다.. 피체크 특유의 긴장감과 박진감이 한데 어울어져 있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그렇습니다.. 하지만 스토리가 좀 복잡합니다.. 전지구적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옮겨가는 과정에 있어서 노아로 하여금 짊어지게 한 무게감이 아주 묵직하기 때문에 좀 과한 측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노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한 설정적 흐름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더 애매해지기 시작하죠, 이런 노아에게 집중된 스토리의 흐름상 그외 주변의 인물이나 공간적 설정상의 배경들은 아주 중요한 상황적 팁이 되어야함에도 후반부로 갈수록 그 빛을 잃어가죠, 단순한 사회문제를 넘어선 글로벌한 이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표출하고자한 작가의 의도는 충분한 즐거움과 현실적 매력을 다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확장되고 과한 스토리의 전개상 후반부에서 반전의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그 맥을  끊어나가는 단서적 결과물은 제법 아쉬움을 자아내더라구요, 전 그랬습니다.. 초중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너무 박진감이 넘치고 궁금증이 컸던지라 후반부의 마무리로 가는 과정의 내용은 재미는 있으되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거지요,


    6. 흔한 주제이고 설정이긴 합니다.. 지구라는 아직까지는 인간에게 유일한 생명의 공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가는 인간의 생명력의 과다로 인해 피폐해져가는 모습은 하루이틀사이에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그 흔한 아이들도 즐기는 헐리우드 영화에서조차 인류의 말살과 관련된 비유적 상상은 포장되고 인식되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글로벌한 이슈입죠, 인간이 살기위해 인간의 삶에 대한 경각심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주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의 뉴스속에서 무한하게 반복될 것입니다.. 심각한 강원도 산불이 발생하고 그 지역의 사시는 수많은 분들이 재해로 고통을 받고 계시죠, 자연은 그렇게 한순간에 인간의 삶을 위협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두렵습니다.. 단순한 자연적 재해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놓은 문명의 이기로 인해 자연은 고통당하고 그 고통당하는 자연의 아픔이 다시금 인간에게 재해로 다가오는 모습속에서 우린 끊임없이 인간이 만들어내고 만들어나가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의 산물에 대한 뿌듯함과 두려움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작품 "노아"는 전형적이지만 아주 진실된 현실적 문제를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알되 숨기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기적 삶이 만들어놓은 벼랑끝의 세상들이 인간들이 모여들어 그 이기적 삶의 지지대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피체크는 대중소설의 매력으로 다시한번 그려낸 것이지요, 조금은 아쉽지만 무척이나 즐겁고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점은 그동안의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소설에서 우린 꾸준히 느끼고 있습니다.. 스릴러에 있어서 피체크는 일종의 울 모친이 느끼는 일일 아침드라마와 다르지 않습니다.. 늘 보면서도 늘 즐거운 그런 이야깁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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