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평점 :
1. 막 대학을 들어가고 용돈벌이로 시작했던 커피숖 알바, 그당시만해도 커피 전문점은 고딩과 대딩들의 전유물처럼 수많은 전문점이 한집걸러 한집씩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웬만한 젊은이들은 커피전문점의 알바를 뛰었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리고 상가 1층에 지금은 사라진 파칭코게임장이 들어섰더랬습니다.. 그당시 상가의 주인이 지하 커피숖 사장님이다보니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게 되더라구요, 1층 파칭코를 관리하는 삼촌도 알게 되고 밤 늦은 시간 알바를 마치면 현란한 게임의 세상에서 구슬 청소도 하고 그렇게 군대가기 전 90년의 여름은 뜨거웠습니다.. 자주 삼촌이랑 새벽까지 노니느라 항상 카페 사장님 모텔에서 숙식을 하면서 지냈던 그런 시절이었죠, 밤새 삼촌이 해주는 어둠의 세계의 막장 인생에 대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 조폭이 어떠한 지, 그들의 삶이 어떠한 지, 그리고 그 인생의 현재와 미래가 어떠한 지 구구절절 술 한잔을 나누며 새겨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칭 칠성파의 중간보스라고 지칭하던 삼촌은 일종의 파견근무의 형태로 지원나온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뭐 제가 알겠습니까, 그 삼촌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싶었던거죠,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조폭으로서의 삶을 너무나도 재미지게 털어놓으며 항상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시더라구요, 그런 어느날 늦은 새벽 큰 싸움이 났어요, 가게 종업원이 삼촌을 데리러 온거죠, 대뜸 삼촌이 느그도 따라갈래라고 묻더군요,
2. 참 철부지스럽지만 세상에 불구경, 싸움구경만큼 궁금한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따라나섰죠, 도로변에서 싸움이 벌어졌더군요, 삼촌이 도착함과 동시에 한 열명정도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제가 삼촌에게서 듣기만했던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는 현장을 목격한겁니다.. 깍듯이 인사하고 홍해의 물결처럼 쫘악 갈라지는 행동과 싸움이 순식간에 멈춰지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지금도 머리속에 떠오릅니다.. 심지어 부지갱이같은 것을 들고 있던 가해자(내가 볼때는)가 다소곳이 내려놓는 것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삼촌의 한마디, 머꼬, 그리고 들려오는 대답, 아입니더, 그리고 마지막 삼촌의 한마디, 정리해라, 그들의 우렁찬 대답 예, 행님.... 그냥 흔한 영화나 소설속의 이야기같죠, 근데 삼촌이 돌아서나 나올때 모였던 인원은 최소 40명 정도였습니다.. 같잖은 모습이지만 그 당시에는 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술자리로 돌아온 삼촌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별거엄쩨, 내가 좀 있어보이더나, 하지만 내도 옛날에는 저랬다.. 맨날 몰리 댕기면서 젊은 혈기로 싸움질이나 하고 칼이나 맞고 병신처럼 형님이라는 사람들한테 하루에도 수백번씩 고개나 숙이고, 근데 이짜나... 지금도 그렇다.. 이렇게 양복입고 넥타이 매고 젠체하며 느그들한테 조폭 잘난척하고 살지만 내 나이 37살에 여전히 미래도 없고 같잖은 도박 오락실에서 기도나 보고 형님들 오면 맨발로 튀어나가서 인사하고 하루하루 번 돈 술먹고 계집질하는데 다 뿌리고 다니고, 그리고 내가 그동안 깡패로 살면서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 지, 항상 두렵다.. 누군가가 어디선가 내한테 해꼬지하고 그길로 인생 종칠까봐.....그런데도 바꾸질 못한다.. 바꿀 수가 없다.. 내가 내한테 적응되뿌고 내가 내한테 져뿌다... 느그는 이런 내가 되지마라, 그래서 느그한테 막장의 인생들이 우찌 사능가 보이줄라꼬 델꼬가따.."
3. 지금은 워낙 흔한 이야기지만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는 세상물정 모르는 저로서는 그 당시 삼촌의 말을 수많은 영화나 소설이나 이야기들 속에서 확인한 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그러니까 이번에 읽은 국내 조폭소설의 느와르적 기념작같은 김언수 작가의 "뜨거운 피"를 읽으면서 다시한번 그 당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소설은 제가 삼촌을 만났던 90년도 지난 93년 봄과 여름의 부산의 구암이라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구암이라는 바닷가는 허구적 지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송도 앞바다를 떠올렸습니다.. 30여년전의 자갈치 시장과 충무동의 적나라한 삶의 모습을 소설속에서는 대단히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희수는 부산의 수많은 조직들중에서 구암을 나와바리(?!)로 하는 지역을 관리하는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입니다.. 이 지역의 보스인 손영감의 오른팔이죠, 구임에서 평생을 살아온 희수로서는 이 곳이 세상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곳이지만 여전히 떠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40줄에 들어선 희수는 변함없이 구암바다를 지키고 있죠, 손영감은 여느 폭력조직의 보스와는 다른 그만의 방식으로 지역을 관리하고 깡패의 삶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그 생명력을 지켜낸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닙니다.. 큰 범죄보다는 자잘한 밀수나 지역관리로 큰 범죄를 일으키기 않는 방법으로 지역을 관리하다보니 희수로서는 지겨울만도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 역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걸 알기에 삶의 목적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희수의 삶의 외면이 주변 깡패들에게는 나름의 아우라가 보여지나 봅니다.. 줄것도 받을것도 없는 홀홀단신의 인생이 주는 위압감 같는 것들 말이죠, 그런 희수에게도 아들이 있습니다.. 친아들은 아니지만 어린시절부터 그토록 사랑했던 인숙이가 낳은 아들 아미가 출소를 합니다.. 이 순간 자신을 아무렇게 내려놔도 전혀 아쉬울게 없는 희수에게도 아미만큼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로 인해 깡패가 되었고 옥살이를 하고 또 출소후에 또다른 자신의 길을 걸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희수의 세상은 또다른 세상의 즐거움을 단 하루조차도 이뤄주지 않습니다.. 언제나 구암의 세상은 피와 배신과 음모와 폭력과 욕설과 배설이 난무하는 세상이니까요, 그리고 그에겐 여전히 손영감이 있습니다..
4. 그동안 왜 안읽었을까요, 주변에서 그렇게나 멋진 조폭스릴러라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시큰둥했던 저를 욕했습니다.. 대단하더군요, 한문장 한문장속에서 희수가 드러내는 감정선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않고 누른 듯한 대화와 행동의 표현과 그 심리를 다룬 폭발력 넘치는 감성은 정말 뛰어나더라구요, 꾹꾹 누른체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변두리의 아제는 내리막길에 들어선 중년의 깡패의 삶을 이토록 절절하게 그려낼 수있다니요, 소설은 상황이 주는 재미와 스토리가 주는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조폭소설이고 느와르라고 하지만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93년의 세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폭력적으로 그려낼 수있는 이야기의 구성도 조곤조곤 그 시절 그 때의 가진 것 없는 무심한 한 중년의 후줄근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 그 내면과 세상을 대비적으로 그려냅니다.. 소설은 막 흥분하지 않습니다.. 전혀 감정적 폭발이나 상황적 드라마성을 주입하지 않습니다.. 그냥 비리비리한 깡패들의 세상과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할 뿐이죠, 이들은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손영감이라는 캐릭터는 그런 세상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미래를 걱정하는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서죠, 하지만 결국 손영감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절박감과 좌절된 세상의 단면도 관조하듯이 작가는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문장의 간결함과 대화의 단조로움과 상황의 무정함속에 담긴 폭발하는 감정의 폭력과 파괴의 결은 대단히 흡임력이 뛰어납니다.. 전 그렇게 읽었습니다..
5. 모든 시선은 희수를 따라갑니다.. 그의 눈길에 머문 세상과 주변의 이야기로 서사는 이어지죠, 어떨때는 관조하 듯 무심하게 어떨때는 스스로의 일임에도 무정하게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과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연결되는 상황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도 하죠, 그에게 있어서 세상은 대단히 냉정하고 무심하고 받을 것이 별로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희수에게는 그동안 그가 살아온 삶에서 조금의 희망을 얻고자하죠, 가족, 그 단순한 바람이 그에게는 얼마나 큰 욕심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작가는 작품속의 허구의 세상속 현실의 삶속에서 그려내죠, 한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선을 작가는 조폭이라는 느와르적 감성을 통해 아주 현실적이고 섬세하고 리얼하게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전 작품의 제목만으로 판단하길 이 작품속의 느와르적 감성은 대단히 뜨겁고 활활 타오르는 과격함과 거침이 공존하는 그런 흔한 조폭의 세상과 그동안 여러 미디어를 통해 그려왔던 어두운 폭력의 모습을 예상했지만 정반대였습니다.. 이렇게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문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지 말이죠, 그리고 그 담담함속에 담긴 뜨거운 인간의 욕망과 감정과 피의 끓어오름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의 삶을 지리멸렬하는 깜빡거리는 네온사인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 내면에서 견뎌내고 생존하는 삶의 근원에는 '뜨거운 피'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어쩔 수 없이 생존하기 위해 그 피를 감출 수 밖에 없지만 밖으로 흘러내온 그 내면의 피는 뜨겁다못해 그들의 감정을 불사릅니다.. 전 그렇게 읽었습니다..
6. 사실 영화가 만들어졌다고해서 급한 마음에 늦었지만 읽어봤습니다.. 천만영화네, 획기적인 흥행이네하는 영화조차도 전 이상하게 소문을 듣고 이야기로 칭찬이 자자하면 그때에는 별 마음이 동하지 않습디다.. 소설도 그래요, 수없이 많은 출간작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몇몇 작품들이 그렇게나 대단하다고 칭찬하면 그때 읽어봐야될텐데도 묵혔다가 읽는게 소심한 제 성향인가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들 다 지나간 자리에 서서 고함을 질러댑니다.. 우와, 이 작품을 이제서야... 바보같죠, 하지만 이런게 또 다른 제 즐거움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남들 다 좋다할때 외면했다가 남들 지나간 자리에서 다시 떠들어대며 읽은 척, 본 척 하는 가식적인 모습,,,, 정말 좋은 작품이고 멋진 작품이고 뛰어난 감정선을 갖춘, 저에게는 즐거움을 안겨준 작품이네요, 영화로는 어떠한 느낌으로 보여질 지 모르지만 소설속의 문장들이 주는 감흥적 문체의 매력을 얼마나 구현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영화가 그 문장의 결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한 인물의 내면과 그 시선속에서 보여주는 비루한 깡패의 삶과 그 배설적 세상을 담담하게 표현하면서 그 이면에 담긴 감정의 뜨거움이 느껴지니까 말이죠, 직관적인 영화적 이미지속에 그 감정의 선을 얼매나 담아낼 수있을지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여하튼 국내 스릴러소설로서 이 작품이 주는 개인적 반향은 제법 큽니다.. 제대로 알 지 못했던 김언수라는 작가의 타이틀을 머리속에 새기는 계기도 되었구요, 마지막 돌아서는 희수의 뒷모습에 담긴 세상의 온갖 감정의 파편들을 지금도 떠올립니다.. 기회되면 한번 읽어보세요, 무척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