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선생님의 <다시 자본을 읽자> 서두에 적힌 독서론이 새삼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를 변화시키는 주체적·변혁적 독서. 약간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어요. 잘 알고 있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실상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얼어붙은 영혼을 일깨우는 도끼가 되었던 책이, 굳어버린 생각과 감수성을 살아 있게 하는 망치가 되었던 책이 예전에 분명 있었는데 말이죠. 앞으로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로 했습니다. 현재 내가 어떤 앎을 욕망하고 있는지, 그런 욕망의 발로로 집어든 책이 남긴 질문이 무엇인지 말이죠.


 1980년대 출판과 독서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움을 느꼈습니다. 이 시기 출판과 독서운동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 중이어서요. 그래서 이번 북클럽자본 소식지 2호에서 1980년대 출판, 독서, 그리고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북클럽자본 독서모임 자체가 ‘1980년대 독서적인 것을 지속·반복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일신의 안위나 세속적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남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생각해서요.


 흔히 1980년대의 책 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운동권, 이념서적, 사회과학, 세미나 같은 키워드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혁적 사회운동의 이론적 자원을 얻고자,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의 해답을 얻고자 치열하게 읽고 토론하고 투쟁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들의 독서에 대한 독서를 제 나름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1980년대는 사회과학 출판의 전성기로 불리곤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기에 출판계의 여러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혹시 일본에서 출간된 책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세로쓰기로 인쇄돼 있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읽어야 합니다. 한국도 세로쓰기를 사용해왔는데 가로쓰기로 변경된 시기가 바로 1980년대입니다. 여기에 한자어 대신 한글 전용을 채택하면서 가독성이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기존의 납 활자 식자에서 사진식자기와 컴퓨터 조판이 도입돼 제작 기간이 단축되고, 책값이 저렴해지게 됩니다. 이렇게 출판산업적 차원에서 일어난 질적 변화 속에서 대학진학율이 30%를 상회할 정도로 고등교육을 받은 식자층이 증가함에 따라 책의 초판 평균부수는 3,000~3,300부 수준까지 상향됩니다(현재 인문/사회 분야 신간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1,000부를 넘기는 책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ㅠㅠ ).


 이런 출판산업적 배경도 배경이지만 뭣보다 출판문화적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화과학 출판의 시대를 이끈 출판인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지요. 이미 1970년대부터 (동아일보) 해직언론인들을 중심으로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등장했고, 학생운동권들이 졸업 이후 부끄럽지 않게생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출판업 종사를 선택했다고 합니다(민주화운동 중에 수배나 전과기록이 남아 일반회사에 취업할 수 없는 조건도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출판 행위 자체가 정치적·문화적 운동이었던 셈이죠. 한편 이때까지 한국 출판계가 저작권법에 가입하지 않아 해적출판이 난무했다고 합니다. , 복사기가 도입돼 대량복사가 가능해지면서 대학가의 서점과 인쇄가게들에서 전공서적의 복사본을 팔아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혹자는 이 시기 출판업을 적은 자본을 가지고 뛰어들 수 있었던 일종의 벤처사업적 성격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고요. 사회과학 서적을 출판하면 사회과학 서점 및 운동권 네트워크를 통해 일정 부수 이상 판매고가 보장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성과 시장, 지적 시장이 역동적으로 움직인 결과인 것 같습니다.


 외국에는 100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출판사와 서점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의 경우, 근대출판의 역사가 여타 유럽국가에 비해 짧은 편이지만 출판부수와 종수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속한다고 합니다. 1970-80년대 사회과학 출판을 이끈 주역들의 이름을 살펴볼까 합니다. 1970년대 대표적인 사회과학 출판사로 전예원, 두레, 청람문화사, 정우사, 아침, 한길사 등이 있었고, 1980년은 오늘, 풀빛, 공동체, 한울, 백산, 거름, 녹두, 미래, 학민사, 세계, 석탑, 사계절, 온누리, 실천문학, 청사, 중원문화, 지양사, 한마당, 산하 같은 출판사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양서들을 많이 출간하고 있는 까치, 돌베개 같은 출판사도 중요한 이름인 만큼 적어둬야겠습니다.


 이런 사회과학 출판사가 출간한 책들은 검열 등의 출판탄압으로 인해 대형서점에 진열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사회과학 책은 오늘날 사회과학코너에 분류되고 진열되는 책과 좀 달랐다고 합니다. ‘이념서적이라 불리는 책들이 사회과학 책으로 불리기도 했던 것이지요. 이런 책들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사회과학 서점들에서 구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과학 서점들은 출판사와 학생들을 연결해주는 고리, 자율적인 문화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많은 사회과학 서점들이 대부분 폐업해서 현재 남아 있는 서점은 서울대 근처 <그날이 오면>과 성균관대 근처 <풀무질>이 유이하다고 합니다. 이런 서점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공간이 보존하고 있는 기억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확인할 길이 없어져서요


 당시에 존재했던 사회과학 서점으로 광장’ ‘열린 책방’ ‘그날의 오면’ ‘집현서점’ ‘장백’ ‘논장’ ‘민중서점’ ‘오늘의 책’ ‘ᄋᆞᆯ’ ‘다락방’ ‘인 서점’ ‘나눔터’ ‘전야’ ‘풀무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이오면> 서점이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으로 전통을 연속적으로 계승하는 측면이 강하다면, <풀무질>은 청년들이 인수해 경영인이 바뀜에 따라 동물권, 비거니즘, 페미니즘 등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의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1980년대는 출판-서점-독자의 네트워크가 역동적이고 끈끈하게 존재했기 때문에 그 시대 특유의 출판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독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서점을 찾아 책을 짚어들었던 걸까요. 사회변혁을 위한 이론적 무장과 이념의 학습 같은 목적지향적 언어로 포괄되지 않는 미세한 마음의 결들을 상상해봅니다. 영화 <1987>에서 호감 가는 선배의 권유를 따라 만화동아리에 갔다가 광주비디오를 보게 되었던 연희’(김태리 분)처럼 당대 청춘들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그렇게 누군가가 건넨 한 권의 책을 읽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는 일화를 듣다 보면 책과 더불어 사람과 사회를 한꺼번에 만나는 독서를 했을 때 가공할 만한 힘을 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책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사회를 잇는 서점이란 공간은 소중한 것 같습니다. 서점뿐 아니라 자취방에서, 공장에서, 재수학원 등지에서 함께 읽기를 수행했던 1980년대의 독자들을 떠올리며 어떤 책을 누구와 어떻게 함께 읽어내야 할지 고민해봅니다.

 

참고문헌

 

류동민, <기억의 몽타주>, 한겨레출판

양평·이두영·이중한·양문길, <우리 출판 100>, 현암사

정종현·천정환, <대한민국 독서사>

조상호,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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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1호 : 기후와 마음 - 2021.여름호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편집부 지음 / 여해와함께(잡지)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잡지 [바람과 물]을 펀딩했다. 창간호가 나와 잡지를 읽었고, 창간호에 참여한 편집위원과 필진들이 대거 출연한 특강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어쩌다 이 잡지의 후원자가 되었을까 하고. 직접적 계기는 김희진 편집자의 인스타 홍보글이었으나 좀 더 거슬러올라가 내 나름의 작은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작년 여름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주최한 편집자 특강을 수강했다. 문학동네 비문학팀의 이연실 편집자, 은행나무 해외문학팀의 심하은 편집자, 사계절 출판사의 김태희 편집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 여기에 더해 유유 출판사에서 간행한 '~~책 만드는 법' 시리즈를 접하면서 '편집자의 일'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알게 되었다. 이때 사회과학 출판을 담당해주신 편집자가 전前 반비 출판사 편집장 김희진 편집자를 알게 되었다.

내게 반비 출판사는 건축, 환경, 페미니즘을 주제로 좋은 책을 내는 '작지만 튼실한 중소출판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반비가 업계 최고라 할 수 있는 민음사의 임프린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출판사'라는 인식이 틀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 모 출판사와 임프린트의 관계를 알지 못해서 - 여튼.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나름의 출판사 분류법이 하나 있는데 가격과 관련된 것이다. 12000/15000/16000/18000/20000 이런 식으로 백 원 단위 이하가 0으로 채워진 가격과 그렇지 않은 가격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책마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잘 보면 출판사의 가격정책에 따라 백 원 단위 숫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체계와 통일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확인을 위해 알라딘에서 반비 출판사의 도서목록을 확인해본 결과, 내 예상에 비해 500원으로 끝나는 책이 많지 않았지만 후자로 분류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완독한 책으로 <후쿠시마 이후의 삶>, <논객 시대>,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냉면의 품격>이 있고, <나의 조선미술 순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이토록 두려운 사랑>, <나의 영국 인문 기행>을 팟캐스트, 잡지 릿터, 저자 강연 등으로 접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목록을 열거해놓고 보니 <후쿠시마 이후의 삶>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전까지 환경 이슈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를 개안하게 만든 이슈가 '탈핵''탈원전'이었고, 2016년 정외과 수업에서 페미니즘과 환경 같은 비주류(아직도 유효한 명명이려나?) 정치학을 배우면서 경주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해에 포항에서 지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전의 기숙사에서 책상이 흔들리고, 일렬로 세워놓은 책들이 쓰러지는 정도로 맞닥뜨렸던 지진의 체험. 그런 환경에서 <후쿠시마 이후의 삶>, <한국 탈핵>을 읽고 좀더 심화학습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환경이슈를 어젠다로 삼는 단체에 가입해 밀양에도 다녀왔었다. 하지만 아직 내 안의 녹색정치에 대한 비전과 가치관이 확립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보니 몇 번 기웃거리다가 흐지부지 되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녹색평론선집이나 환경운동, 생태정치의 고전격에 해당하는 책들을 읽어봤지만 깊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의 어조에서 선각자의 메시자주의적 비장함이 풍기거나 시민사회와 동떨어진 것 같은 도덕주의적 언사가 심리적 거리감을 형성시켰다. 근대성이나 물질문명의 반생태성, 폭력성을 지적하며 자연을 회복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가 어딘가 허공에 떠 있는, 무엇보다 지적으로 불성실한 원론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자연과 문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나 자연에 선험적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상상적 자연'을 발명하고 있다는 혐의를 짙게 풍겼다.


당시 교수님이 이성과 합리의 언어로 생태정치적 의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뭣보다 '감수성'의 차원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주셨는데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 당시의 나는 고도로 세련된 이성과 합리의 이성체계를 확립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던 터라 시기상조였던 것 같다. 이를 테면 어깨 대신 머리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상태였달까.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뭣보다 생태적 이슈를 내 현실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미흡했던 것 같다. 지역적, 국가적,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태위기의 현황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북극에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위기에 처해 있고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구호에 익숙해져 시큰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 이전에 생태 이슈에 대한 학습과 경험은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성격이 강했다. 비건 페미니즘, 비거니즘, 제로 플라스틱 활동가, 해양생물 플라스틱 이슈, 공장식 사육, 치킨 관련 행사장에서 활동가들의 퍼포먼스 등등 뉴스를 꾸준히 접했지만 진지하게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단계로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 같은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심각한 사안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이브한 수준에 도덕적 감각이 생겼고, 주말에 플라스틱 재활용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지 잠시 반성하고, 정육코너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단백질 보충을 위한 거니까' 자기정당화를 하고 닭가슴살을 구매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외식할 땐 이마저도 작동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팬데믹' 상황이 이어지는 와중에 '인류세'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내 생활세계와 생태이슈가 다른 시공간에 분리되어 있는, 텍스트로 존재하나 실감하기 어려운 조합이 아니었다. 이제 시민으로서, 또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동물권/비거니즘/인류세/기후위기 같은 주제에 대해 내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정치적 포지셔닝을 가져갈 필요성을 느꼈다. 그야말로 '보편적'이고도, 현재적이고, '인문적'인 문제였기에 사유의 권리와 의무를 방기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지적,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고자 (라고 하면 좀 거창하고 비장해보일지 모르겠지만) <바람과 물>을 펀딩했고, 창간호 '기후와 마음'을 전달받았다.

가장 놀랐던 점은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발행했다는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2015년에 한국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여해와함께로 단체명을 변경했기에 발행 주체는 재단법인 여해와함께이다. 3년 전에 열심히 공부했던 '1970년대 여성 노동자 글쓰기'는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발행한 잡지 '대화'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1978년으로 기억하는데 월간 <대화>에 석정남의 수기가 실리면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후 <공장의 불빛>이란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된다. <공장의 불빛>의 석정남, <서울로 가는 길>의 송효순, <빼앗긴 일터>의 장남수 를 비롯해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야학에서 글쓰기 수업의 결과물을 엮어 펴낸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같은 책들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활발히 나오게 된다. 이런 새로운 문화, 정치운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리스천아카데미 같은 종교단체의 사회참여(+노동운동, 노동조합), 의식 있는 대학생들의 야학 활동, 노동자들의 앎에 대한 의지 등이 복합적으로 유기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다. 고된 노동 끝에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휴식으로 시간을 채우지 않고 '다른 시간'을 살기 위해 자취방에 모여 읽고 쓰고 토론했던 노동자들. '(자기)해방'을 위한 공부이자 글쓰기의 역사적 사례로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쟁점과 영감을 제공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인간소외를 사회적으로 극복하고자 노동자운동, 빈민운동 등을 이끌며 사회의 '인간화'를 추구했던 크리스찬아카데미는 각 종교들 간 공존과 조화를 표방하는 '대화문화아카데미'로, 또 인간과 자연이 공존공생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배곳 바람과 물'로 확장되었다. 개인적으로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주관한 포럼에서 민중신학 연구자 김진호 선생님과 불교철학자 조성택 교수님을 뵌 적이 있어 신기했다. 인연, 연기설 그런 재질...

먼저 잡지에 대한 내 주관적인 인상은 다음과 같다. 만듦새는 굉장히 괜찮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분량은 조금 아쉽다(요즘 잡지들이 경량화되고, 글의 부피도 짧아지고 얇아지는 추세라지만 그래도... ㅠㅠ).

아마 가격적인 측면도 환경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다 보니 기존 제작비용 자체가 늘어났을 지도 모르겠다. 강연에서 디자이너 분이 설명해주신 내용을 상기해보면 파란색 컬러인쇄를 따로 해야 하는 공정이 있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컬러토너의 낭비/폐기를 발생시키지 않고자). 이렇듯 미래에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환경비용을 포함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형성된 기존의 가격대에 비해 환경친화적 선택과 소비가 좀 더 경제적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이런 맥락에서 '착한 가격'이란 표현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와 비인간존재'에 마음을 쓰는 사람의 세력이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로다가 접근성이 좋아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실제로 비거니즘이 확산되는 국면에서 대기업 차원에서 '경제적 합리성'의 작동결과로 두부면, 두부패티, 채식 버거 같은 신제품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일상에서 보다 쉽고 친숙하게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될 것 같다.

주제와 필진이 다양해서 좋았다. 길다면 길다고 볼 수 있고 짧다면 짧다고 볼 수 있는 '3년'이란 기간 동안 '프로젝트'로서 <바람과 물>의 포지션을 생각해봤을 때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아 '한상 차림'을 내놓고, 여기서 각 독자들이 자신에게 좀 더 와닿는 주제를 다루는 '전문점'을 찾아나가는 방향을 생각해보게 된다. 혹은 독자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접하는 과정에서 '생태적 관점'을 획득하게 된다면, 그런 관점을 잡지가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매우매우 유의미할 것이다.

특강 자리에서 팟캐스트, 뉴스레터, SNS 등을 통해 접했던 분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일상기술연구소>의 제현주 대표님(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에서 하신 인터뷰도 좋았다!), 뉴스레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밀레니엘 저널리즘의 대표주자 <뉴닉>의 이소연 대표님, <혼밥생활자의 책장>을 운영하시는 전 PD-현 기자의 김다은 님, 동물해방물결의 이지연 대표님 등 코시국에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뵐 수 있어 뜻 깊었다. 특히 이소연 님과 이지연 님은 나와 또래이다 보니 그분들의 성장과정과 현재 활동이 시사하는 바가 좀 더 남달랐다. 리더라 불리는 이들의 시야와 실천성, 비전은 다르구나, 멀리 보고 사유의 높이가 높고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활동하시는구나 느꼈다.

이번 호를 통해 제노사이드에 비견되는 '에코사이드' 개념을 알게 되고 더불어 기후위기를 인권과 민주주의, 정치의 문제로 좀더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제현주 님의 '510억 톤이라는 문제'에서 너무 복잡한 문제인 만큼 단순하게 숫자로 표현된 기후위기의 현주소와 과제를 알게 된 것, 각자 다른 위치에서 비슷한 방향을 보고 협력하고 연대했을 때 어떤 콜라주가 완성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호를 읽는 동안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비건지향인'이 되었다는 사실(그래서 내 광고에 응해 후원자 이름에 함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을 알게 되어 오랜만에 만나 메밀 막국수와 메밀전을 먹었다. 유학 중에 방학을 맞아 귀국한 친구를 새로 사귀게 되었는데 자신이 비건임을 알려줘서 돌아가기 전에 비건식당 맛집을 잘 찾아서 같이 가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보고 바꿔보고 배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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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정, 추모에서 일상의 기억으로 - 김귀정 열사 30주기 추모집
귀정 2021 준비위원회 엮음 / 앨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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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출신은 아니지만' 이런 조건절이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지만 학교와 관련된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든 갖게 된다. 어쩌다 보니 거주지 근접과 조교 근무의 조건 하에서 자연과학캠퍼스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모여서 수학문제를 같이 풀거나 창업 혹은 프로젝트에 관한 회의를 하는 풍경을 종종 접할 수 있었고, 아무래도 대기업 취업과 비트코인, 주식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자주 들리는 환경이지만 '인문적'인 것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학기 초에 게시판에 게시된 '인문적' 동아리의 모집글을 볼 수 있고(최근에 눈에 띠었던 게시글은 '채식 모임'), 학내 혹은 사회적 의제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담은 대자보도 본 기억이 있다.

내게 캠퍼스의 장소성과 관련해 가장 인상적인 흔적/기억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학생식당 쪽에 조성된 열사의 추모공간을 꼽을 것이다(열심히 구글 포토를 뒤져봤더니 황예인 열사의 것은 찾았는데 김귀정 열사의 것은 찾지 못했다 ㅠ 어쩌면 자연과학캠퍼스에서 황예인 열사를, 인문사회캠퍼스에서 김귀정 열사를 각각 도맡아서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활도서관, 열사, 동아리, 기억하고 애도하고 추모하는 사람들 - 학부 시절에 이 성좌들에서 상상적으로 우정의 이상향을 찾았던 것 같다. 때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깊은 외로움이 그런 공동체와의 결합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찌 보면 외국을 동경하듯 마음을 품고 있다가 대학원 재학 시절 한 번 생활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문을 두드려볼까 망설이다 결국 포기했다. 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불안함에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던 시절이라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라 생각되긴 하지만 ...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과거에 지나쳤던 곳에 다시 서게 되니 기분이 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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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트윗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생의 방향성 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은 실은 게으르는 거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하나 진득하니 붙잡고 파고들지 못했다. 지적 호기심이나 문제의식을 포착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지만 구체화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뭘 써야할지 몰라 계속 텍스트를 추가해 읽어냈지만 막상 그 텍스트들에서 논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는 데 그쳤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것'에 대한 의지와 욕망이 모호하거나 미약했던 것 같다. 그리고 20대 초반에 하도 어려운 이론 중심의 비평이나 글을 많이 접하다 보니 그렇게 이론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두려움이 생긴 거였는지도 모르겠다(그렇다고 한 이론을 진득하게 학습한 건 또 아니고..;;). 이는 어떤 주제에 대한 본격적이고 진지한 글을 써봐야겠다는 의지와 욕망이 드는 순간들을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유예시키고 회피해온 습관의 결과였다. 글에 대한 눈높이는 계속 높아져만 가는데 글을 많이 안 쓰다 보니 간극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쓰고, 자기혐오의 시간을 견디고, 고쳐 쓰면서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말곤 글이 나아지는 방법이 없었을 텐데 다른 자료를, 이론을 찾아 읽으면 번쩍이는 구상과 영감이 찾아와 글을 드라마틱하게 개선시켜 줄 거라는 미신적 믿음이 있었다.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차근차근 하나씩 고쳐나갈 힘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요즘엔 그래서 종종 자문하곤 한다. 이 논문, 책을 내가 왜 읽고 있지. 읽으려고 했지. 결국 이 독서를 통해 나는 어떤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인지 묻는다. 그래서 할 말이 생기면 최대한 기록해두기로 했다 이곳에. 그렇게 쪽글이나마 조각보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잘 연결해 모자이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적어도 뭔가 '대단한' 걸 써야지 하는 욕심에 짓눌려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긴 호흡의 길, 논문식 글쓰기는 테크니컬한 측면의 훈련도 필요하긴 할 테지만).

1970년의 전태일도 그렇고, 1980년대의 대학생들도 그렇고 결국 내 관심의 공통분모를 보면 좋은 앎- 좋은 삶을 갈구하며 고민하고 투쟁했던 청년과 그 혹은 그들이 몸 담고 있는 역사에 대한 물음이 아닐까 싶었다.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그/들로 만들었는지, 그/들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그리고 그 역사와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고 싶었다. 30년 이상의 시간적 거리가 확보되었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사실들을 꼼꼼히 관찰하되 내가 그 시대의 동시대인으로서, 또 그/들을 내 시대의 동시대인으로서 대화하게 만들고 거기서 얻은 어떤 앎을 글로 풀어내보고 싶다. 글쓰기와 독서, 문학 텍스트 를 포괄하는 문학의 프리즘을 통해.

3

<귀정, 추모에서 일상의 기억으로> 본문 중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버지에게 한국의 민주화과정에 대한 얘기를 들은 중학생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럼 1987년 6월 이후에 독재 세력이 물러나고 민주주의가 실현된 거냐고. 사실 우리는 여기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려면 1991년, 관점에 따라 1996년까지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1991년 4월부터 6월까지 많은 청춘들이 안타깝고 목숨을 잃고,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적 상흔을 남긴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해야 할지, 사회변혁/공동체주의-집단주의/이념으로 표상되는 1980년대적인 것이 가고, 소비/개인주의/욕망으로 표상되는 1990년대적인 것이 오는 중첩과 교착의 이행기적 시간을 겹눈으로 어떻게 볼지에 대한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 '(5)86'세대의 도덕적 몰락이라 할 만한 상징적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고, 이들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의식을 해부하고 해체하려면 결국 1980년대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요청과 시도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87년 6월항쟁의 승리의 서사 와 86세대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신화가 지속되는 한, 이미 기득권이 돼버린 86세대의 헤게모니를 보위하는 방식으로 민주화가 소비되고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목소리는 묵살되고 묻힐 위험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86세대'의 자성과 갱신을 위해서라도 비판작업이 계속될 필요가 있겠다.


한편으로 나는 당시 대학에 다녔던 이들- 그중에서도 명문대 남성들-이 역사를 과대대표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1980년대적 가치'를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 시켜보고 싶다. 독재정권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희생했던 전사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민중과 여성, 어린이 같은 사회적 소수자를 가시화하고자 했던 시선(<올림픽 이펙트>에서 이렇게 주변화되고 타자화된 존재를 가시화시키는 문화정치적 실천이 '포스트모던'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해석한 바 있다), 이론과 실천을 적극적으로 합치시키는 다양한 운동의 방식으로 평등과 존엄성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노력, 특권층으로서 죄책감을 느끼고 '민중 속으로' 투신했던 하방下放의 한계가 있었지만 계층화된 질서 너머 연대를 광범위하게 시도했던 경험이 무엇을 남겼는지 따져묻고 싶다.

실제로 1980년대에 대한 재해석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당시 군사주의적, 남성주의적 시위방식과 조직문화에 가려 '여성적' 성역할을 강요받고,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조력자로 위치지어졌던 여성들의 실천을 재조명하는 방식으로 페미니즘적 역사 읽기/쓰기를 수행한다든지,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수렴되지 않는, 그래서 당대에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되었던 다양한 문화정치적 시도들을 조명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1980년대적인 것'과 '1990년대적인 것'의 대비 및 도식을 재구성하여 냉전의 종식을 기점으로 패배와 단절로 이해되어 왔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연속적으로 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이념과 이데올로기라는 허상에 목 매달아 개인의 욕망을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억압했던 1980년대를 부정적으로 대상화하고, 이를 청산하는 방식으로 1990년대를 정립하고자 했던 담론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 시대를 통과해온 이들의 마음속에 아직까지 너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기억과 상처를 마주보고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NLPDR론과 CA 제헌의회 그룹,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 종속이론, 사회구성체론 등 당대의 지적 담론에 대한 재해석과 재평가가 필요하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솔직히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 결과적으로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틀린' 현실진단과 미래전망 아래 이뤄진 정치적 선전과 사변적 논쟁으로 치부하기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방대하기 때문에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기억을 결과적으로 민주화를 자신들의 손으로 이뤘다는 자부심으로 향유하거나 젊은 날의 치기와 낭만적인 혁명주의를 좇았던 '한때'로 축소시키고 도망치는 것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 1980년에서 1997년 IMF 금융위기까지, 1987년에서 2017년 촛불혁명까지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시대를 통과해왔는지 묻고 싶고 알고 싶다.

4

1980년대 운동권의 군사주의적 남성성,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구조, 이념적 경직성, 적대를 기반에 둔 조직화와 저항논리(임명묵의 표현을 빌리면 '안티테제'로만 구성된 논리) 등 실로 운동권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적폐를 집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당대 운동했던 혹은 그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결국 '사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이 좋아서 동아리에 가입하고, 그러다 고민 끝에 운동을 하게 되고... 일신의 안위가 아닌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열망, 사회구조적으로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정의감(선험적으로 주어진 상상적 개념으로서 '기층민중'은 문제가 많았지만...), 일련의 투사적이고 지사적인 면모를 제쳐두고서라도 사람냄새가 물씬 풍겼던 좋은 사람들.

<귀정, 추모에서 일상의 기억에서>에 실린 애도와 추모, 기억의 기록물들을 읽고 나서 좀 더 알게 된 김귀정이란 사람은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다짐했던 성찰적이고 실천적이었던 운동가이자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작고 수줍음이 많지만 다정하고 친절하고 강직한 사람,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 소박한 성격 탓에 남 앞에 잘 나서려 하지 않았던 아이, 말이 없었으나 무심하고 무책임하지 않았던 아이, 가난했으나 사랑 하나는 마음껏 베푼 아이, 작은 분노를 미제와 노태우에게 커다란 분노를 돌리려 했던 아이, 어떤 일로 투쟁에 동참하지 못했을 때 겸허하고 솔직하게 반성하는 아이, 밤을 새며 ‘통일 방안’을 토론하는 전투적인 아이(p46)

단아하면서도 야무진 모습입니다. 동아리 홛롱을 하면서 옆에 앉아 있던 귀정이, 일상을 함게 했던 사진 속 귀정이는 살갑습니다. 귀정이는 작은 키에 갸름한 얼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입니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농담을 즐겨하지도 않았고 과격한 표현도 잘 쓰지 않았습니다. 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평범한 단어로 표현하려고 애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동료 선후배와 만나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더불어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귀정, 추모에서 일상의 기억으로. p28

귀정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한국외대를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사무직으로 일하며 학업의 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성균관대 불문과에 입학해 심산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했는데 동급생들에 비해 나이도 많았고, 여성이었다 보니 동아리 및 운동권 활동에 제약이 많았을 거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이론'학습'에 능한 편은 아니었으나 누구보다도 준비를 열심히 해오는 특유의 성실성과 겸손한 태도로 이를 이겨냈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이름을 모르지만 복도에서 마주친 이에게 먼저 목례를 건네고, 동기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승아야, 나도 나지만 수업 좀 들어와라!" 챙겨주고, 선후배 모두와 잘 지내는 싹싹하고 명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선배님, 선배님, 오늘 시간 되시면 술 한 잔 사 주세요”, “오늘은 동아리방에 한번 놀러 오세요”). 이런 성품의 그녀였기에 가깝게 지냈던 동료와 친구들뿐 아니라 일면식 정도밖에 없거나 일면식도 없었던 이들이 추모와 애도,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을 담아 글을 써서 한 권의 문집이 완성될 수 있었다.

귀정이는 학습에 있어서 크게 ‘똑똑한’ 편은 아니었다. 문제 제기에서도, 막힌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역할에서도 뛰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학습 준비에서는 누구보다 전투적이었다. 토론 약속을 어기거나 정리를 해 오지 않는 일은 거의 없었다.

p43

개인적으로 귀정의 일기에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공부와 운동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부분, 공부를 하러 대학에 왔지만 대학에 다니기 위해 알바를 해야만 하는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이 부분만 읽었다면 그렇게 와닿고 인상적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알바를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성실하게 활동에 임했으며, 알바비로 술자리 계산을 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큰 울림이 있었다. 정말 강한 사람이었구나. 비판적인 사회인식을 견지하는 이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 비판의 자리에 자신을 누락시키고 면제하는 성찰성의 부재를 피하기 위해 정말 ‘끊임없는 성찰을 통한 치열한 삶’을 사람이구나 싶었다. 의식적으로 연대의 가치를 추구하고,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자기 주변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부터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이는 훨씬 적은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투쟁을 나거거나 MT를 가거나 어디를 가든 밥을 잘 챙겨와 '식구'들이 배를 굶지 않게 했던 귀정을 보면 민족통일의 이념과 투쟁 못지않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공동체-됨을 수행했던 일상의 실천들이 갖는 의미와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운동은 논리가 아니다. 논리는 변할 수 있는 것, 운동이 논리라면 그 논리가 잘못된 것이다. 언젠가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180도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운동은 변하지 않는 신념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무엇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운동적 삶을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p46-47

이렇게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를 이르게 한 국가의 책임과 가해자 처벌, 1991년에 정말 많은 열사를 낳았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에 당도하게 된다. 박래군과 김윤철이 지적했듯 1987년 6월항쟁을 재현하고자 했던 운동 지도부의 조급증, 대중-시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헤게모니 투쟁의 부재, 1980년대식 전민투쟁의 방법론을 반복했던 부분, 정부의 극단적인 폭력에 맞서 자기 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으로 맞서고자 했던 국면에서 대중이 느꼈던 공포 등 민주화 운동사회 대내외적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할 지점들이 많다.


나는 내가 살아오지 못한 시대를 한 사람의 생애를 빌려 간접적으로나마 겪고 이해하고 있다. 귀정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투쟁하고 술 마시고 했다면 내 삶은 어떤 식으로 흘렀을지, 나는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해보다 1991년 5월 25일 퇴계로의 대한극장 거리 위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시신을 지키고자 했던 백병원에서의 투쟁, 그녀의 시신을 운구해가다 유림들의 반대에 막혀 뒷문으로 학교를 통과해야 했던 날. 그리고 마석 모란공원에서 이천 민주화운동기념으로 묘가 이전되고, 30년 동안 추모를 이어온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다음에 학생회관에 간다면 그녀의 사진 앞에 서서 잠깐이나마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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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생각한다 -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임명묵 지음 / 사이드웨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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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선진국인가 그렇지 않은가. 한국이 세계 10권의 경제대국이며 G7 정상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은 나라임을 강조하며 그렇다고 답변하는 이가 있을 것이고, 자살률·성평등 지수· 평균 노동시간 같은 지표를 바탕으로 그렇지 않다고 답변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임명묵 작가는 이 물음 자체가 지극히 'K-'적이라고 꼬집을지 모르겠다. 

 

 식민지 근대와 전후 폐허를 지나 '한강의 기적'을 찍고 선진국의 반열에 등극한 한국에 대한 자부심 '국뽕'으로 가득 찬 'K-'와 정말 빠르게 발전해오는 동안 살기 싫은 나라 '헬조선'이 되어버린 자조와 분노, 울분으로 가득 찬 'K-'가 있다. 90년대생인 임명묵 작가는 'K-'의 양면성을 제대로 보려면 1990년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에 가장 근본적인 흐름이었던 '세계화'와 '정보화'가 위계화되고 분절화된 형태로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형성된 이중경제체제가 낳은 불평등이 '지역'젠더''세대''계층'민족'에 따라 어떻게 차별적으로 진행되었는지, 또 이 변화를 몸소 통과한 사람들의 경험은 무슨 의미를 갖는지 물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서구의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선망국의 시간'을 살아왔던 한국이었기에 이제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를 직면해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랫 동안 변방으로서 콤플렉스와 민족주의적 나르시시즘('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이 혼종된 분열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한국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나 식민지가 아닌 제국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오늘날 시의적절하게 제기된 성찰의 시도라고 생각한다. 

 

 <K를 생각한다>의 매력은 90년생이 쓴 90년생론과 같이 소재의 시의성과 흥미성도 크지만 근본적으로 임명묵 작가가 스스로와 차별화하고자 하는 대상인 '지식인'과 '식자층'의 시각과 다르게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도식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존 지식인과 식자층이 서구의 이론에 기대 현실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임명묵 작가는 현실을 성실하게 관찰하고 이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객관화하고 상대화하여 의미를 탐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본인의 경험과 현장 종사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현실을 구성한 다음, 한국의 다문화를 'multiculturalism'이 아닌 'Damunhwa'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다든지 계급이나 민중 담론이 아닌 신전통주의란 낯선 담론을 바탕으로 386 세대의 계보를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아닌 조선의 위정척사파임을 주장하는 부분은 저자의 학문적 배경과 탐구 자세의 독특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 할 만하다. 내가 <K를 생각한다>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큰 부분은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 중 하나인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중동 등 그동안 일상적으로 접하기 힘들었던 지역의 역사를 한국사의 타임라인에 올려놓다 보니 시각의 전환, 지평의 확장과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렇듯 <K를 생각한다>는 주로 지식인 사회의 통념과 대비되는 현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노출시키고,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의 승리로 해석되는 'K-방역'의 실체는 권위주의적 국가의 동원 체제와 '프라이버시'를 무시한 정보의 이용에 있었는데 이런 감시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시민들은 자유를 지불하지 않는 걸 선택할 것인가 같은 식이다. 한국의 다문화는 고강도의 집약적 노동으로 운영되는 제조업계 특유의 환경에서 강력한 '한국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한국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이들은 무리 없이 사회에 동화된다는 점에서 한국적 다문화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은 또 어떤가. 다문화주의에서 말하는 다원주의나 다양성의 존중 및 조화를 규범으로 판단하는 게 맞는지, 인종주의와 차별이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으로 한국 다문화의 실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지 묻는다.

 

 책을 읽으면서 같은 90년대생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폭넓은 식견과 자신만의 관점을 명료하게 세우는 주체적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저자의 사회성이 무엇보다 마음에 크게 다가왔다. 감사의 말에 수놓아진 우정과 존경의 별자리들이 연결되고 확장되어 'K-'를 이토록 다각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구나 싶었다.

 

 한편으로 저자가 '능력주의'와 '시장경제'에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K를 생각한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불평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불평등을 완화하고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개입보다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자원의 배치와 제도의 개선을 통해 현재 시스템을 좀 더 잘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한국사회가 더 나아지는 길을 제시한다는 인상을 받아서다. 청년문제의 개선 방안으로 상층부의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는 논의에서 하층부의 노동시장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들을 계속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586 비판 또한 386의 정체성을 NL의 특정한 상에 고정시켜 비판한다는 점에서 주류와 기득권(구체적으로 정부와 여당)과의 대립각에서 논쟁성을 획득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논의의 현학성과 추상성, 이념의 급진성만 제시되는 인문학 내지 비평과 다르게 좋은 의미에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상을 그리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선고된 시대에, 문화적 정체성 영역에서 미시적인 담론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포스트' 시대에 고전적인 태도로 현실을 그려내고자 하는 저자의 다음 저작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그와 같은 세대로서 우리 세대의 몫을 함께 고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쓰고 읽으며 우정을 나눌 날을 고대해본다.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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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다... 언제 입고될런지 ㅜㅜ 크리스마스 즈음 해서 잠깐 물량이 확보되었는지 구매할 타이밍이 있었는데 놓쳤다. 그게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네... 벌써 1월이 중순을 향해 달려가는데 출판사 ㅡ 인쇄소 등등 출판업계여 조금만 더 힘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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