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독서. 잘 생각해 보면 이게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다. 어젯밤 쇼츠 알고리듬 지옥에 빠져 지금 죽을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며 출근하고 있는 이라면 도파민 중독은 곧 현대인의 실존적 소외이자 존재론적 공허에서 비롯된 현상임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건 생존의 문제다. 독서가 도파민 중독에서 탈출하는 디톡스 실천으로만 의미를 갖는다면 구태여 ‘생존’까지 무겁게 입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이런저런 말들의 홍수에 나도 모르게 휩쓸리기 쉬운 세상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갈 수 있으려면”(203) 읽어야 한다. “인권이 어떻게 발명되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확보되어왔는지, 민주주의는 어떻게 발전되어 여기까지 왔는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지 등을 생각하기 위해”(208~209) 읽어야 한다.
읽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뇌지컬’을 키우는 데,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독서보다 더 나은 실천을 인류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줄 안다.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힘이 담긴 사유, 즉 사상은 책이라는 형식과 결합하고 독자는 사상을 자기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으로서 현재를 제대로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현재를 다르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금정연 지부장이 제안하는 일상 단계의 실천은 ‘출퇴근 읽기’이다.
출퇴근 읽기 + 전자책 = 독서 혁명
‘한밤의 읽기’ 프로젝트에 바로 착수하기 부담감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이미 ‘새벽 감성’이란 지배 담론을 고안해서 한밤의 불온성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길들이는 전략이 꽤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보는 일은 ‘현타’ 부작용으로 현실 도피, 회피를 불러올 수 있다(역설적으로 밤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일단 범국민적으로 독서율을 증진시키려면 일상적으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생활 운동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인류세 대응도 ‘아나바다’ 운동부터?). 그러다 심화 과정으로 진입하면 출근길 독서, 점심시간 독서, 퇴근길 독서, 밤의 독서 목록을 각각 구성할 수도 있다. 마치 오전, 점심, 오후, 밤 시간대별로 소설, 산문, 편지 등 다른 장르 글쓰기를 했던 버지니아 울프처럼. 그러면 한 달에, 그리고 일 년에 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 권수가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자투리 시간을 흡수해 버리는 숏폼 콘텐츠의 전횡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언제든지 읽기의 리듬을 되찾아오기 위한 전략을 구비해 둔다는 데 의의가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 탈환 작전. 출퇴근 읽기와 일기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