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와 철학. 이 조합에서 처음 연상되는 건 발터 벤야민/베냐민(베르그손처럼 베냐민으로 표기가 정착될까요?)이었습니다. 김진영 선생님이 이 수업을 듣게 된 동기를 물으셨을 때 저는 발터 베냐민에 관심 있다고 대답했지만 아트앤스터디 팟캐스트를 통해 조금이나마 들어본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강의를 굉장히 좋았고, '풀버전'으로 맛본 이번 강의 역시 기대를 뛰어넘어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어떤 분이 김진영 선생님과 이번 강의 주제가 딱 들어맞는다는 논평을 해주셨는데 수업을 듣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어떤 강의였는지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학기에 진행되는 멜랑콜리와 철학, 다음 학기에 진행될 예정인 멜랑콜리와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스케치를 하셨습니다. 전자는 멜랑콜리란 주제를 철학에서 어떻게 다뤄왔는지 해석사를 살펴 보고, 후자는 뒤러의 그림, 김광석의 목소리, 이은주의 얼굴, 현대클래식 음악 등 예술작품에서 멜랑콜리가 어떻게 표현됐는지 살펴 보는 시간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강의에서 다루고자 하는 멜랑콜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먼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멜랑콜리가 담론화되어 있기 때문에 논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멜랑콜리와 멜랑콜리적인 것의 구분을 강조하셨습니다. 멜랑콜리가 담론화되고 교양화된 (죽어 있는) 개념에 가깝다면, 멜랑콜리적인 것은 실제로 감각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느낌, 상태에 가까운 것입니다.

 

독일어로 우울을 뜻하는 schwermut의 풀이로 멜랑콜리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우울schwermut는 무거운 마음이다(schwer(무거운)와 mut(마음)). 아무리 기뻐도 남아 있는 무거운 마음, 이것이 우울이다. 이 무거운 마음을 벗어날 때 우리는 주이상스(향유)나 황홀경을 경험했다고 하지만 그런 초월적 경험은 일상에서 잘 발생하지 않는다.

 

 1. 왜 멜랑콜리인가

 

오늘날의 사회를 양극화 사회라고 하는데 선생님은 양극화라도 있으면 다행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좋은/나쁜, 부/빈, 이렇게 명확하게 대치하고 있는 안티테제가 있으면 전복의 가능성이 있을 텐데 오늘날은 멜랑콜리 안에서 통합된 것에 가까운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있는 자들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지셨고, 이 질문에 동의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멜랑콜리의 대기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매일매일' 멜랑콜리는 마시고 있다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노력할수록 나아지는 게 아니라 나빠지는가. 이 자기배반의 상황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멜랑콜리의 대기권에 갇혀 있는가. 그러면서 한국문학이나 영화가 상류사회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렇다면 상류사회의 멜랑콜리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어떤 작품을 꼽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최근에 나온 영화로 보면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 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정도? 김진영 선생님이 다른 강의에서 다룬 적 있으신 필립 로스의 텍스트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로사회, 투명사회, 단속사회 등등 ~~사회란 제목으로 사회를 진단하는 책들이 일종의 트렌드를 형성했고, 그 중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가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는데 과연 피로사회가 한국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개념인가 하는 반문을 하시면서 들뢰즈가 말했던 소진사회와 피로사회를 비교하셨습니다. 피로는 힘을 많이 써버린 상태이고, 힘을 회복해 다른 상황을 희구해볼 수 있는 변화의 잠재적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태이지만, 소진은 힘이 '고갈된' 상태라서 잠재적 가능성이 부재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소진된 사회의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로 사무엘 베케트를 꼽았습니다. 베케트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해주시면서 무대장치를 최소화한 무대, 잎이 다 떨어진 나무 한 그루만 있는 배경,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린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고도를 기다린다고(고도가 올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없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육체뿐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피로사회/인간과 소진사회/인간의 구원 양상이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 강의를 통해 묻게 될 질문이 될 거란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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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앤스터디 2015-02-02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윤스리 님! 안녕하세요, 아트앤스터디입니다. :) 소중한 강의 노트 감사합니다. 윤스리님의 글들은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하네요. ㅎㅎ 다음 수업때도 좋은 모습으로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