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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생각한다 -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임명묵 지음 / 사이드웨이 / 2021년 5월
평점 :
한국은 선진국인가 그렇지 않은가. 한국이 세계 10권의 경제대국이며 G7 정상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은 나라임을 강조하며 그렇다고 답변하는 이가 있을 것이고, 자살률·성평등 지수· 평균 노동시간 같은 지표를 바탕으로 그렇지 않다고 답변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임명묵 작가는 이 물음 자체가 지극히 'K-'적이라고 꼬집을지 모르겠다.
식민지 근대와 전후 폐허를 지나 '한강의 기적'을 찍고 선진국의 반열에 등극한 한국에 대한 자부심 '국뽕'으로 가득 찬 'K-'와 정말 빠르게 발전해오는 동안 살기 싫은 나라 '헬조선'이 되어버린 자조와 분노, 울분으로 가득 찬 'K-'가 있다. 90년대생인 임명묵 작가는 'K-'의 양면성을 제대로 보려면 1990년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에 가장 근본적인 흐름이었던 '세계화'와 '정보화'가 위계화되고 분절화된 형태로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형성된 이중경제체제가 낳은 불평등이 '지역'젠더''세대''계층'민족'에 따라 어떻게 차별적으로 진행되었는지, 또 이 변화를 몸소 통과한 사람들의 경험은 무슨 의미를 갖는지 물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서구의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선망국의 시간'을 살아왔던 한국이었기에 이제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를 직면해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랫 동안 변방으로서 콤플렉스와 민족주의적 나르시시즘('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이 혼종된 분열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한국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나 식민지가 아닌 제국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오늘날 시의적절하게 제기된 성찰의 시도라고 생각한다.
<K를 생각한다>의 매력은 90년생이 쓴 90년생론과 같이 소재의 시의성과 흥미성도 크지만 근본적으로 임명묵 작가가 스스로와 차별화하고자 하는 대상인 '지식인'과 '식자층'의 시각과 다르게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도식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존 지식인과 식자층이 서구의 이론에 기대 현실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임명묵 작가는 현실을 성실하게 관찰하고 이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객관화하고 상대화하여 의미를 탐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본인의 경험과 현장 종사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현실을 구성한 다음, 한국의 다문화를 'multiculturalism'이 아닌 'Damunhwa'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다든지 계급이나 민중 담론이 아닌 신전통주의란 낯선 담론을 바탕으로 386 세대의 계보를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아닌 조선의 위정척사파임을 주장하는 부분은 저자의 학문적 배경과 탐구 자세의 독특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 할 만하다. 내가 <K를 생각한다>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큰 부분은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 중 하나인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중동 등 그동안 일상적으로 접하기 힘들었던 지역의 역사를 한국사의 타임라인에 올려놓다 보니 시각의 전환, 지평의 확장과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렇듯 <K를 생각한다>는 주로 지식인 사회의 통념과 대비되는 현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노출시키고,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의 승리로 해석되는 'K-방역'의 실체는 권위주의적 국가의 동원 체제와 '프라이버시'를 무시한 정보의 이용에 있었는데 이런 감시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시민들은 자유를 지불하지 않는 걸 선택할 것인가 같은 식이다. 한국의 다문화는 고강도의 집약적 노동으로 운영되는 제조업계 특유의 환경에서 강력한 '한국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한국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이들은 무리 없이 사회에 동화된다는 점에서 한국적 다문화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은 또 어떤가. 다문화주의에서 말하는 다원주의나 다양성의 존중 및 조화를 규범으로 판단하는 게 맞는지, 인종주의와 차별이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으로 한국 다문화의 실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지 묻는다.
책을 읽으면서 같은 90년대생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폭넓은 식견과 자신만의 관점을 명료하게 세우는 주체적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저자의 사회성이 무엇보다 마음에 크게 다가왔다. 감사의 말에 수놓아진 우정과 존경의 별자리들이 연결되고 확장되어 'K-'를 이토록 다각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구나 싶었다.
한편으로 저자가 '능력주의'와 '시장경제'에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K를 생각한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불평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불평등을 완화하고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개입보다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자원의 배치와 제도의 개선을 통해 현재 시스템을 좀 더 잘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한국사회가 더 나아지는 길을 제시한다는 인상을 받아서다. 청년문제의 개선 방안으로 상층부의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는 논의에서 하층부의 노동시장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들을 계속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586 비판 또한 386의 정체성을 NL의 특정한 상에 고정시켜 비판한다는 점에서 주류와 기득권(구체적으로 정부와 여당)과의 대립각에서 논쟁성을 획득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논의의 현학성과 추상성, 이념의 급진성만 제시되는 인문학 내지 비평과 다르게 좋은 의미에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상을 그리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선고된 시대에, 문화적 정체성 영역에서 미시적인 담론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포스트' 시대에 고전적인 태도로 현실을 그려내고자 하는 저자의 다음 저작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그와 같은 세대로서 우리 세대의 몫을 함께 고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쓰고 읽으며 우정을 나눌 날을 고대해본다.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