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만들다 열린책들을 만들다 열린책들 아카이브 1
홍지웅.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미메시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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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리뷰는 아닙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출판계에 몸 담고 있는 지인을 곁에 두고 있는 건 아니어서 출판물에 활자화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의 <읽는 직업>, 기획회의 편집위원회에서 엮은 <한국의 출판기획자>, 장은수 편집자의 <출판의 미래>, 은유 작가님의 <출판하는 마음>을 재밌게 읽었다. 유유 출판사에서 내고 있는 '~~책 만드는 법'도 서재의 출판/독서 섹션에 구비해뒀다(어느 작가님께서 이런 명언을 남기신 적이 있다. 서재에 꽂아두고 책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시작이 반'이라 했을 때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는 것으로 독서의 절반을 달성한 거라고 우겨본다).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작가, 편집자(교정/교열, 편집/ 재교-삼교-오케이교 ...), 교정교열 전문편집자(일드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의 코노 에츠코가 맡은 역할이 바로 교열편집자이다. 극중에서 교열만 하지 않지만 ㅎㅎ ), 북디자이너, 인쇄소 직원 등 '생산 라인'의 직종만 해도 다양하다. 마케터, 오프라인 대형서점, 동네서점(독립서점), 인터넷서점, 신문사의 출판담당기자, 도서관, 출판잡지, 도서출판 팟캐스트, 유튜브(북튜버) 등 책을 다루고 책과 관련된 분야로 시야를 넓히면 출판산업과 출판문화를 지탱하고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산업의 파이를 놓고 봤을 때 출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은 편이고, 학습지와 수험서를 내는 대기업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출판사들은 중소 기업 규모의 영세적이라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디선가(<한국의 출판기획자>로 기억한다) 장은수 편집인이 대기업 출판사가 나오면 자금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과감하고 선도적인 기획출판을 이끌 수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출판 풍토에서 출판이 불황이다, 이 판은 망해가고 있는 판이다 같이 자조적이고 체념적인 인식과 정서가 출판계 내부에서 꽤 만연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출판업계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세한 출판사의 물적 토대에 더해 출판업 본디의 노동집약적 성격이 합쳐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장은수 편집인의 페이스북에서 '3년차 편집자'가 출판계에서 희소하고 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신 걸 본 적이 있다. 출판업계의 열악한 처우로 인해 인재들이 떠나고 다른 업계에 뺏기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회사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자세히 모르지만 연차별로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발달/성장 단계 같은 게 존재한다고 들었다(파주에디터스쿨에서 <천년의상상>의 선완규 편집장의 강의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3년차에는 ~~ 역량을 키우는 시기(~~을 경험하고 발달시켜야 하는 시기), 5년차에는 ~~, 7년차에는 ~~. 아무래도 출판업계 자체가 이직이 잦고, 다른 직종에 비해 오래 몸 담을 수 없는 구조여서 (은퇴?가 이른) 출판인으로 오래 버티고 산다는 것 자체가 난이도가 높은 도전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편집자의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해주고, 대우가 달라져야 출판업계의 내실을 안으로부터 다질 수 있을 거라는 지적이 있는 것 같다. 소명의식에 호소하고,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산업'인 출판을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역부족일 것이기에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전히 계속 새로운 책들이 나오고 있고, 그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알라딘에서 관심 가는 작가와 출판사, 시리즈물에 '신간 알림' 서비스를 설정해두었는데 오늘만 해도 8권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떴다. 8권 뿐이랴. 아마 오늘 하루만 해도 100권 이상 신간이 출간되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열린책들 출판사는 오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유명한 요나스 요나손의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라는 번역소설을 출간했다. 번역을 맡으신 임호경 번역가의 이름을 2009년 1, 2월 즈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시리즈에서 처음 봤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겨울방학에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타나토노트>, <뇌> 등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을 고른 것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1시간 이상 집중해서 정독하는 시간이 쌓여서 그런지 책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길러졌고, 고등학교 진학 이후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야자'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세계문학전집으로 민음사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열린책들 책들도 많이 읽었다. 아니 사실 많이 읽진 못했고 많이 샀다 ! 최초로 출판사와 '라포'를 형성한 대상이 <열린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2 세련된 디자인 3 세계문학과 장르문학을 아우르는 지향성이 세련되게 느껴짐 4 홍지웅 사장님. <열린책들>의 입덕 포인트를 꼽아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 작가와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가져가 '대표작가'로 출판사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점이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대표작 <개미>에 홍지웅 사장님이 인물로 등장하는 부분도 라포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디자인의 경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도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주었지만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이 한 손으로 편하게 쥘 수 있다는 점, 크기가 작아서 책장에 세워두면 블록이나 성냥갑 같은 귀여운(?) 느낌을 준다는 점이 마음에 끌렸다. 사철 방식으로 제작해 책을 오래 동안 튼튼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문구가 신뢰감을 줬다. 추리소설, 범죄소설, 스릴러 소설, SF소설 같은 '장르문학'을 세계문학전집에 포함시킨 점이나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의 전신 격인 Mr.know 세계문학전집에서 '젊은 고전'들을 소개한 점(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처럼)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2010년대 초반에 도서전 같은 행사에서 젊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최애 출판사를 꼽는 설문에서 문학동네와 열린책들이 가장 높은 득표를 기록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열린책들>에 대한 호감은 어느 이벤트에 당첨돼서 무려 움베르토 에코 컬렉션 전집+ 움베르토 에코 소설들 + 미의 역사/추의 역사 를 받게 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파주출판단지를 처음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인 출판사 사옥/건물 역시 <열린책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열린책들의 형제 출판사 <미메시스>의 뮤지엄. <미메시스> 출판사는 내가 가장 최초로 접한 그래픽노블인 <아스테리오스 폴립>를 포함해 훌륭한 그래픽노블들을 지금까지 꾸준히 출간하고 있고, 건축과 예술 관련한 책들을 많이 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을 읽은지 꽤 되었다. 표면적으로 그때그때 당장 읽어야 하거나 읽고 싶은 책이 <열린책들>에서 낸 책이 아니었던 순간들이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고, 한국문학/서양철학/사회학/문화이론 분야에 독서가 집중돼다 보니 접점이 잘 안 생긴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책들> 출판사의 홍지웅 대표를 '책 만드는 사람들' 시리즈(라고 부르기엔 거창하지만... 소박하게 덕질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려 한다)의 첫 손으로 꼽은 이유는 월북출판사의 홍영환 대표님이 쓰신 <출판인 홍지웅의 생애사 연구-번역문학을 중심으로>를 재밌게 읽어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41743.html#csidx1409f73bcf3f8c09b47e2fc2818ddb2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출신으로 학내 신문 편집장을 역임했던 홍지웅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열린책들> 출판사를 설립하고 초기에 주력한 대상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들이었다. 1988년 '해금' 조치란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아나똘리 리바꼬프의 <아르바트의 아이들> 시리즈와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니꼴라이 오스뜨로프스끼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같은 책들을 출간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판매고를 올리지 못해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했고, 사장으로서 회사와 직원들을 책임져야 했기에 대출을 받아 출간한 책들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터져줘야 생활을 영위하고, 그 다음 책을 기약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동구권의 해체에 따른 냉전의 종식, 1991년 5월투쟁의 패배라는 대내외적 사회변화 속에서 그는 다른 유럽문학을 출간하며 돌파구를 모색했다. 해외에 출판사와 에이전시에 접촉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국제 네트워크와 입지전적 면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유럽문학의 성적이 괜찮아서 위기를 넘기고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파스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같은 밀리언셀러들이 터져주면서 상승곡선을 그리게 된다(어느 인터뷰에서 홍지웅 대표는 <열린책들> 사옥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어줬다면서 고마움을 표한 적이 있다). 좀머 씨 이야기의 경우, 당해에 '올해의 상품'에 꼽히기도 할 정도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이끌었다고 한다. 이념/이념적 진정성과 같은 '무거움'으로부터의 도피, 민족 국가 사회 같은 거대한 집단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개인의 심리, '혁명/변혁의 시대'에서 소비자본주의로 급격한 사회변동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했다는 '좀머 씨 신드롬'에 대한 분석이 있으나 추후에 1990년대에 대한 비판적인 문화론적 독해의 대상으로 새롭게 논의될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상업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뒤에 도스토예프스끼 전집, 프로이트 전집, 움베르토 에코 전집,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같은 전집들을 출간한다. 전작주의와 개정판 출간이라는 <열린책들>의 특징이 전집 출판에서 잘 나타난다. 프로이트 전집의 경우 판본이 세 가지 존재한다. 1997년 초판본, 2004년 개정판, 2020년 개정판. 최근에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출간했으며, 5년 전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를 출간해 북디자인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학부 시절에 정외과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가곤 했었는데 그때 이 세트를 소장하고 계신 걸 확인하고 말씀드렸더니 디자인이 너무 좋아서 사셨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런데 구매자/독자 리뷰를 확인해보니 반양장본으로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제작하다 보니 상태가 고르지 못해 비판의 목소리가 꽤 존재하는 눈치다. 이 세트 디자인을 맡으신 석윤이 북디자이너의 채널예스 연재글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후임(?)이 유지원 선생님이셔서 나 미쳐...).

링크를 가져온 기사의 인터뷰에서 홍영완 대표가 지적하듯 <열린책들>의 대표저자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이건 사실 다른 출판사들도 갖고 있는 문제이긴 하다), 한국문학 출간의 부재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일부 개선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번역출간을 주력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미메시스의 <테이크아웃> 시리즈는 괜찮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한국 출판시장에서 건재함을 자랑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더해 요나스 요나손 같은 작가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양서들을 꾸준히 내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다. 특히 출판 편집자들이 교과서처럼 애용한다는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을 꾸준히 출간하고, 출판계 후학(?) 양성에도 힘 쓰시는 걸 보면 출판인-편집자 라는 직업에 진심이신 것 같다(보통 대표 자리에 오르면 현업에서 물러나 경영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현장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여전히 현역 편집자로서 필드에서 활동하신다고 한다). '아카이브'를 중시하고 성실히 기록을 남겨 후대에 전수하는 부분도 출판인으로서 멋진 부분이라 생각한다.

여태껏 좋은 얘기들을 많이 써놨는데 사실 노동현장, 직장으로서 '열린책들'이 얼마나 괜찮은 환경일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것까지 꼭 포괄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열린책들> 정도 되는 출판사가 어느 정도 환경일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홍지웅 사장님이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하고 나면 <열린책들> 출판사가 어떻게 될지도 ...

좀 더 알찬 내용의 본격적인 출판인 탐구 성격의 글이 되려면 홍지웅 사장님이 직접 쓰신 책들을 읽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너무 묵혀두기보다 부족하지만 일단 저질러보자는 생각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작년보다 올해 더 많은 종수의 책을 출간했다는 데서 보람을 찾는 어느 출판사 대표의 말에서 출판인이란 무엇으로 사는 존재인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기쁨에서부터 문화를 창달하는 이로서 지닌 소명 의식(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치열한 고뇌,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자 하는 야심)까지 다양한 레이어의 꿈과 욕망들이 궁금해졌다. 평생 책을 만들며 '할아버지 편집자'로 살고/죽고 싶다는 소망,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소망, 독자와 책의 연결(성좌 그리기constellation)을 꿈꾸며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 개인적으로 <열린책들>에서 낸 책 중 딱 한 권만 꼽으라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꼽고 싶다(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 !!). 세 번 읽은 책. 아마 한 번 더 읽게 된다면 문학과지성사 판으로 읽게 될 것 같지만.

+ 고2 때였나. 수준별 분반을 운영했었나, 모종의 이유로 반을 이동해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다른 반에서 열린책들 판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양장본 말고 엄청나게 뚱뚱한 페이버백 버전)을 읽고 있었는데 (사실 가계도 - 이름 정리를 제대로 안 하고 읽어서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지만) 다른 반 아이가 다가와서 책 두께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약간 나를 신기해하고, (좀 과장하면) 경이로워 했던 순간. 그런 허세/자부심의 순간들이 독서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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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
이랑 노래 / YG 플러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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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월 23일 이랑의 정규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가 발매되었다. 8번 트랙의 곡 제목은 <박강아름>. 2년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봤던 <박강아름 결혼하다>의 주인공이었다(GV가 재밌었던 걸로 기억...). 8월 19일에 정식으로 개봉한 다큐멘터리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영화인 박강아름이 남편 '성만씨'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아이를 낳고,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을 기록한 영화이다. 다음은 지니매거진에 게재된 영화 소개글이다.

영화감독 아름은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에 진보정당 활동가이자 요리사인 성만을 만나 결혼한다. 아름은 결혼 후, 본인이 오랫동안 준비한 프랑스 유학행에 성만도 데리고 떠난다. 프랑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가사 노동 밖에 없는 불어 까막눈 성만은 주부우울증에 빠지고, 아름은 공동 생활의 경제와 행정 업무를 책임진 상태에서 임신을 한다. 아름은 우울한 성만을 위해 정해진 날에만 집에서 요리하고 손님을 받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둘은 '외길식당'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출산 후 아름이 본격적으로 학업과 영화작업에 집중하면서 성만의 독박육아는 더 심해지고 둘은 더 격하게 싸운다. 결국 성만은 파업을 선언한다. 아름의 결혼도 영화도 이대로 잘 갈 수 있을까?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볼지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음악 페스티벌이나 수업시간표처럼 타임테이블을 펼쳐놓고 최상의 조합을 찾기 위한 고뇌가 요구된다. 인기 있는 영화들은 이미 모두 매진 행렬을 이루고 있어 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리가 널널하게 남아 있는 비주류 중 비주류 영화를 보게 되는데 이런 영화일수록 사전정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영화제 측에서 제공하는 시놉시스에만 의존해 영화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처음 들어보는 감독, 배우, 심지어 국적의 영화를 '예고편' 없이 본편으로 바로 뛰어들어 관람하는 상황이 영화제의 재미를 담당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성공했을 때 짜릿함이 꽤 크달까. 정말 좋은 작품이지만 정식개봉으로 이어지지 않/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를 봤다는 사실 혹은 남들보다 미리 봤다는 사실이 약간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영화제가 아니라면 절대 볼 일이 없었을 1980년대 필리핀 여성영화라든지 사회학자 엄기호를 통해 말로만 들어본 적 있던 '하자센터'에서 은퇴를 앞둔 무용수 남정호가 학생들과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구르는 돌처럼> 같은 영화는 신촌 메가박스(상암월드컵경기장 메가박스)까지 간 수고를 보상해주는 영화들이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놀이공원에서 파는 티켓처럼 싼 가격에 많은 영화들을 관람할 수 있는 이용권을 사전판매해준 덕분에 코시국 이전까지 3년 정도 개근할 수 있었다.

기성의 젠더적 역할 분담이 역전된 부부의 결혼생활을 감독이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비혼주의를 지향했던 이가 상대방과 결혼이라 불리는 사회적 결합을 맺어 살아가는 좌충우돌의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준다는 영화의 성격에 혹해 관람을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소위 '안정적인 직장'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경제적인 불안정성으로부터 기인하는 막연한 불안뿐 아니라 결혼생활에서 실제적으로 맞딱드리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겪어나가고 풀어가는지 멀리서나마 지켜보며 결혼하면 뭐가 좋은지, 뭐가 힘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귀할 것 같았다. 가보지 않은 곳을 먼저 걸어간 이에게 조언을 구하듯 주변에서 직접 만날 수 없지만 책이나 영화를 통해 '선배'로 삼고 싶은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박강아름은 전작 <박강아름의 가면무도회>를 찍고 평단의 주목을 받긴 했으나 생활적 측면에서 개선된 부분이 미비했던 것 같다(독립영화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면 상업영화계의 '콜업'을 받게 되는데 여성영화의 약진 이전에는 대부분 남성감독들에게 기회가 돌아갔다고 한다. '영화제 영화' 성향이 강한 작품을 찍는 감독이라면 영화제 수상실적을 바탕으로 대학에 자리를 잡거나 기관이나 재단의 지원을 받거나 선택의 여지가 더 좁아지는 것 같다. 영화계뿐 아니라 예술 장 일반에서 비슷한 구조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며 프랑스로 유학을 준비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지겹도록 다닌 그 학교라는/이름의 공간에 서른 살/마흔 살이 되어도 계속/계속 다니려는 걸까"(<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박강아름>). 학생이란 신분은 가난한 상태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장학금도 있고, 뭣보다 독일 같은 나라는 학생들에게 지원과 복지를 다양하게 지원한다고 들었다), 학교에서 얻은 배움은 작품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외국대학의 학위를 받으면 아무래도 귀국하고 나서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점도 주효하리라.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맥락을 고려해보면 한국에서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못 받는다고 했을 때, 지금 당장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를 도모하기 위한 '적공'(원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은 백낙청의 글에서 알게 된 원불교 개념)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녀들은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는 것 같다.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 프랑스의 영화학교에 다니는 박강아름이 수업에서 받은 과제는 영화를 찍어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상영하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독박 육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성만 씨'가 폭발해 촬영(과제수행을 위한) 중단을 선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파업 선언 이후 홀로 카페에 나와 3유로 짜리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이어지고 얼마 안 가 세 가족이 비오는 바닷가에서 파도를 바라보는 장면이 결말 부분의 하이라이트를 구성하고 있다.

GV 현장이었는지 다른 매체에서 어느 여성 영화평론가가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손희정 평론가였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불확실하다). 박강아름 감독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여성감독들의 에세이 영화, 다큐가 나르시시즘적이고 타자나 사회로 시선을 확장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비판(주로 남성 영화평론가들에 의해 제기된)을 자신 역시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기존의 비평적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게으르게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했고, 젊은 여성 영화감독들이 보여주는 세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비평이 기여하고 싶다고. 박강아름은 솔직하게 말한다. '저는 저를 알고 싶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래서 "저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연습을 한다기 보다, 저를 담는 작업이 재밌고 그렇게 담긴 저를 통해 제가 몰랐던 저의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 너무 재밌고 멈추고 싶지 않아서 계속 하고 싶은 것 같아요"(지니 매거진의 인터뷰에서 인용)라고. 이랑이 올바르게 지적했듯 박강아름은 박강아름을 너무 사랑해서 카메라로 기록한다기보다 박강아름은 박강아름에 대해 알고 싶어 궁금해서 찍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부분에서 나르시즘적 자기기록이 범람하는 SNS의 시대에 '셀프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카메라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하는 것 같다. 이를 이랑은 이렇게 표현해낸 바 있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는 '박강아름'의 모습을 통해 나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공통의 질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노랫말은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지만,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릴 것 같았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편집해 전시하는 보여주기와 외부세계를 향한 지평이 닫힌 상태에서 독백을 통한 드러내기 사이에서 자신을 궁금해하고 탐구하는 박강아름의 시선은 친구가 묻는 안부나 질문처럼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건강한 자기애를 갖기 어려워지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매개로 세계를 성실하고도 창의적으로 묻고 기록하는 그녀의 작업을 동료이자 친구 이랑이 응원하는 이유도 나와 같은 남의 모습에서, 남과 비슷한 나의 모습에서 공감하고 위로와 용기를 얻기 때문이 아닐까.

(지니 매거진의 인터뷰를 참조해 재구성함)

박강아름의 전작 <박강아름의 가면무도회>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이랑의 1집의 곡들이 영화 삽입곡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박강아름은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 "이랑의 목소리가 영화의 서사 일부를 담당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랑에게 영화 음악을 제작해달라고 의뢰했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때부터 박강아름 감독님을 사랑했던 이랑은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내가 아는 한에서 '가족이 아닌 친척 만들기'라는 해러웨이의 테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가 바로 이랑이다. 암에 걸린 친구의 치료비를 보태고자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소중한 친구를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고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따서 '금융예술인'으로 거듭난 이랑('미가동'에서 벗어나셨을까요 이제). 에세이를 쓰고, 만화를 그리고, 노래를 쓰고, 공연을 하며, 앞으로 찍을 영화를 구상하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살아가는 이랑. 전화를 받고, 이메일 답장을 하고, 정산을 하고, 많은 일을 혼자서 해내는 프리랜서. 작업실을 함께 쓰고 있는 김승일 작가에게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나의 자랑'인 이랑.

생각해보면 이랑의 1집 <욘욘슨>은 많은 데뷔작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고 생각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오해하는 이들/남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들려줬고, 세상의 리듬에 동화되지 못해 예의 없고 불친절한 이들에게 쿡쿡 찔리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건 너의 리듬'(그건 나의 리듬이란 메시지도 내포되어 있는)이라고 위로하듯 응원하듯 노래했다. 럭키아파트의 복도에서 불어왔던 여름바람의 냄새와 질감을 더듬으며 추억을 꺼내보고, '뭔가 반복되는 기분/뭔가 반복되는 이별'의 루프 한복판에서 '이상한 일'(<이상한 일>)이 되어버리고 마는 연애를 떠나보내는 과정 모두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문득 한밤중에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싶은 욕망이 들지만 가난한 자신이 내일 김밥천국에서 김밥 한 줄을 먹게 되리란 사실을 확인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싶다'고 욕망을 노래하고(<먹고 싶다>), 졸업하고 나면 뭐할지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영화를 봤던 (<졸업영화제>) 대학생은 이제 영화에 의지해 겨우 잠에 들었던 자신이 겪은 불면의 밤에서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모두들 어떻게 잠이 들까 아마 나처럼 울고 있을까' 묻고 있다. 2집 <신의 놀이>에서 '내 안에 있는 그 노랠 찾아서/(...)내가 되고 싶은 가족을 찾아서'라고 노래했던 이랑은 준이치, 친구들, 힘이 없는 사람들과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환란의 세대'인 자신과 친구들에게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먼저 선수 쳐버리자'고 용기 있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고 있다.

https://switch.changbi.com/serial/chapter_info/43/292?bread_date=%EB%AA%A9%EC%9A%94%EC%97%B0%EC%9E%AC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고를 확장하는 방법은 바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랍니다. <언니단 작가>의 네 번째 편지 <포기하면 끝이야. 동생아, 살아서 다시 보자>에서 그동안 짐작해왔던 바를 그녀가 직접 고백해주어서 읽는 순간 쾌감이 일었다. 어떤 예술가들은 정말 친구를 잘 사귀는 사람인 것 같다고, 종(species)/인종/국적/젠더/언어 등 장벽이 될 수도 있는 경계를 '우정'으로 뛰어넘어 자신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성장하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름이 '이랑'이어서 그럴까. ~~이랑 친구가 된 이랑. 김승일은 '나의 자랑 이랑'에서 너는 기억의 천재니까 라고 적었지만 내가 아는 이랑은 우정의 천재이다. 박강아름과 이랑. 앞으로도 그녀들의 콜라보를 또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이랑 - <박강아름>

자 이제 내가 너의 하루를 얘기해볼게

너는 매일 아침 누군가를 재촉하며 일어나지

빨리빨리 늦는단 말이야 늦으면 어떡할 거야

재촉하는 너의 입에는 항상 뭔가가 들어있어

그걸 오물오물 씹으면서 내게 첫 말을 걸지

아 짜증나

너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뱉으며 학교에 갈 준비를 해

왜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지겹도록 다닌 그 학교라는

이름의 공간에 서른 살 마흔 살이 되어도 계속

계속 다니려는 걸까

너는 언제나 어딘가로 뛰어가고 있어

그 모든 게 너에게는 버거운 일이면서도

너의 삶도 너의 학교도 너의 결혼도 너의 아이도 너의 영화도

그런데도 너는 뛰어가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오늘도 너와 함께 박강아름에 대해 생각해

이젠 네가 내 얘기를 대신 해볼래

내 하루를 상상해볼래 어때 해볼 수 있겠니

우리의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박강아름이었으니까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강아름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강아름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강아름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강아름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강아름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강아름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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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틴더 유 트리플 7
정대건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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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10년 전, '힐링' 열풍이 있었다. '힐링' 열풍에서 떠오른 주체가 '멘토'였다. 자기계발서 저자, 스피치 전문가부터 종교 엘리트(스님), 철학자, 트렌드분석가, 심리학자에 이르기까지 직업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이들이 멘토로 호명되어 책부터 강연, 방송(때로 이들이 결합된) 등 전방위적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소위 '청년 멘토'로 유명세를 탔던 이들의 책이나 강연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당시에 미디어 노출이 상당히 심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얻은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던 것 같다.

-꼭 '~~을 하라'거나 절대로 '~~을 하지 마라'고 명확한 내용을 단호한 어조로 설파하는 카리스마적 면모(확신에 찬 모습에서 대중의 신망을 얻어냈던 것 같다)

- '멘티'의 '잘못'을 호되게 다그치고 비판(사실상 '정서적 학대'에 가까운 상담 아닌 상담이지만 멘티의 입장에서 개인적 차원의 습관이나 행동, 노력의 정도를 고침으로써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권위적인 전문가인 멘토에게 보증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멘토링의 '효능감'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예상해본다)

- 힐링의 축자적 의미에 부합하는 위안의 제공과 희망의 제시(지치고 답답한 심정, 상처받은 속내를 드러낼 만한 사회적 창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그렇다고 가정된) 이들이 집합적으로 모인 장소에서 고통을 고백함으로써 멘토를 필두로 한 타자들에게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것 자체에서 힐링 효과가 산출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적 집단적 고해성사의 구조에서 정말 진정한 고백이 가능한 것인지, 뭣보다 여기에 응답해주는 멘토의 솔루션에 문제의 소지가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힐링이란 키워드는 사라졌지만 제니퍼 M.실바의 <커밍 업 쇼트>의 용어를 빌리면 '무드 경제'에서 '치료적 서사'를 제공하는 상품과 장치들은 오히려 다변화되고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자기계발self-development과 자조self-esteem의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돈 공부'를 표방하는 재테크의 부상과 '자존감 회복'을 표방하는 일종의 셀프 힐링으로 양분화된 경향을 보인다. 힐링은 형식적 차원에서 '사사화' '개인화'된 것처럼 보인다. 내 나름대로 출판 트렌드를 분석해본 결과, 상처받은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하고 치유할 것인지(<미움받을 용기>)가 주류 트렌드의 흐름으로 자리잡은지 오래고, 자존감의 하위장르로 가장 눈에 띠는 건 다름 아닌 '인간관계'다.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판단한다는 게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지만 제목만 놓고 봤을 때 이 책들의 메시지는 '너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타인과 단절하라' '너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인간관계는 아마 가족부터 친구, 연인, 직장 동료(상사)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이 맺는 인간관계의 전반을 포괄한다.

악의적이고 부정적인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타인의 평가와 해석에 의거해 스스로의 가치를 정하지 말고, 자신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이와 관계를 정리하라 같은 조언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내용이지만 이런 조언들이 범람하는 현상이 무엇을 암시하고 의미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거보다 전반적으로 인생살이가 팍팍해지고 고단해져서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증가한 것일까? 평균적으로 사회 구성원 전반의 '인성 수준'이 하락한 것일까?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타인-사회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무한경쟁과 생존의 장에서 타인을 물화된 대상이자 수단으로 대하게 만드는 힘이 증가한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경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평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호의 자원이 점점 희소해졌을 뿐더러 끊임없이 성과를 내는 데 몰두한 성과주체(<피로사회>)는 자기착취적 자아경영인의 모습을 띤다. 이는 '번아웃 증후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주체('소진된 인간')의 초상은 이런 식으로 분석이 가능했다. 여기에 인간관계가 무엇보다 자아에 치명적인 위험이 된 데에는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어떤 맥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과잉연결된 '관심 경제'의 사회에서 타인의 부정적 평가와 비난 및 관계의 단절을 심각하고 민감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타인의 사회적 인정과 정서적 지지에 대한 기대의 욕구는 커졌는데 이런 욕구가 충족되기 어려워져서 기대의 좌절이 주는 충격이 훨씬 심대해진 것일까. 확실히 미디어는 연애 관계(우정도 일정 부분 포함되지만)에 현실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잊게 만들고, 경감시켜주는 '낭만적 유토피아'의 이미지를 조성한다. 타인과의 진실된 관계가 가져다주는 정서적 도움이 실제로 크다 할지라도 미디어에서 조성된 물화된 '행복의 약속'은 상상적인 것,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그리고 자존감 얘기를 하긴 해야할 것 같다. 자존감을 얘기하다 보면 사회구조적으로 '친밀성의 관계'가 취약해지고 불안해지는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채(신뢰와 돌봄 과 같은 사회적 자원이 희소해지는 부분) 개인의 심리적 차원으로 환원주의적인 논의가 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 자아의 성숙, 정신적 정서적으로 독립된 자아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다. 혼자 생활해보는 독립적 생활에 대한 에세이가 꾸준히 써지고 읽히는 이유 중에는 자신의 기질과 성향, 취향과 욕망(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 자기에 대한 앎을 바탕으로 자주성과 주체성을 키우고, 과도한 의존성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성숙한 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향상되길 욕망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인에 대한 의존지향성이 큰 관계를 맺게 되면 관계의 불화와 단절에서 오는 충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관계의 단절이 가져올 고통이 두려워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상대에게 대항하지 못하고(이 과정에서 자존감은 점점 더 낮아지고), 관계의 불화와 단절의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고 자책한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소통과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이로울 때(즐거울 수 있는) 인간관계가 건강하고 원만하게 유지되는 것일 텐데 정작 자기 자신의 입장은 뒷전으로 미뤄둔 것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의 입장을 이기적으로 견지했을 때, 상대방을 도구적으로 대하는 '소유적 관계'가 되었을 때 그에게 사물화의 고통, 사물화의 폭력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과잉연결된 사회에서 복잡한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에 내던져져 있는 개인이 스스로를 지키면서 주체적으로 관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자존감이란 자원이 중요하게 기능하는 것이다. 찬성-동의와 거절-거부의 여부를 결정하고, 자신과 타인의 안전거리를 조정함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이 문제가 아니라 낮은 자존감을 문제화하는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좀 더 문제적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네 멘탈의 대장장이가 되어 멘탈을 단단하게 관리하고 단련하라' 오늘날 자아에게 부과되는 도덕 명령이다. '사회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고에 기초해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자아를 도덕적으로 옳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신의 앞가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건 죄악시된다. 경제적 차원뿐 아니라 정서적 차원에서 그렇다. 사회적 연대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 때 개인은 오롯이 고통을 떠안게 되며, 구조가 아닌 주체에게 전적으로 책임 소재를 부가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개인에게 환원된 실패와 리스크의 책임은 심리적 파산 상태를 낳는다. 이는 곧 우울증이나 무기력 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불안정한 사회에서 유동하는 리스크를 최대한 예상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이런 맥락에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격언이 있을 만큼 불가해하고 불투명한 인간의 마음을 상대해야 하는 인간관계에 대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접근방식의 출현은 지극히 개연성 있는 귀결로 보인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세상에서 타인(의 고통)을 책임지기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진지하지 않은 관계, 상대방의 인격 전체를 대면하지 않고 서로의 기대와 목적에 맞게 분절화되고 파편화된 기능을 교환하는 관계들을 맺는다. 이를 테면 새벽에 'ㅋㅋㅋㅋㅋ'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떡볶이 메이트 같은 식으로. 이렇게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귀고 연애 상대를 찾고자 한다. 심심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재미를 찾고자, 언어 교환을 하고자, 성적 파트너를 찾기 위해,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해, 직접적인 일대일 소통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보다 가볍고 유연한 온라인 자아로 소통하기 위해, 연결감을 느끼기 위해, 오프라인과 다른 온라인 네트워크만의 고유한 문법이 가진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등등. 각자 '각방'에서 접속한다. '틴더'의 공항에. 전세계에 퍼져 있는 타인들을 여행할 수 있는 초근대성의 비장소로.

2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30대 틴더 유저의 '동친(동네친구와 나이가 같은 동갑 친구, 중의적 의미 중 전자에 해당함)' 실제후기. 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만한 핍진성이 알알이 꽉 차 있어 '쿡쿡'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를 테면 프로필에 생태계 교란종 바텐더 잭의 프로필에 적혀 있는 '자취하고 잘 취하는'(자취하고 잘 안 취하는 식의 변주도 존재) 문장은 틴더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관용문구이고, '희궁'('경희궁의 아침'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의 별칭)의 프로필에 적혀 있는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랐어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분과 만나고 싶어요’(친척 격의 문구로 '심리적으로 안정된 분'이 있다) 문구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성적 파트너를 구인하는 유저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자기소개의 관용어구를 꼽아본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Language exchange, 동네친구 찾아요(얼마 전에 상경해서, 이사와서 친구가 없어서), 동갑인 친구 찾아요, (여성 유저만 뜨게 설정해놔서 남성 유저들의 사정은 모르겠으나 남성 분들이 동성친구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긴 하다) 여성 분들 환영합니다, 영어 사용자 우대(영어에 좀 더 능숙한 경우일 수도 있고, 외국어를 사용할 때 다른 분위기/뇌의 부위가 활성화(?)돼서 외국어 대화를 선호하는 것 같다), '문자보다 전화가 편해요', 자신이 방문/여행한 국가들의 열거. 범주적으로 분류해보면 추천 및 취향 공유 목적(맛집 추천해주세요 ~ 카페 추천해주세요 ~ 음악 추천해주세요 ~ 책 추천해주세요 ~ 음악, 영화 얘기 나눠요), 선호하는 외모 기준에 대한 설명(180cm 이상, 무쌍 선호, 공룡상 선호, 타투 선호 등등), 'FWB' 구인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피력 - 'FWB' 구인하는 이들에 대한 극혐 표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 진지하게 연애 상대를 찾는다는 내용 등이 있다.

이렇듯 한없이 가벼운 관계부터 무겁고 진지한 관계에 대한 지향까지, 물리적 근접성에 근거한 관계성의 추구부터 외모부터 섹슈얼리티에 이르기까지 취향에 따른 '매칭'- 최적의 조합을 찾는 곳. 사람으로부터 받은 크고 작은 상처를 품고 있는, 심심함과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혹은 일상에서 낯선 만남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즐거움을 찾는(술 마실 때, 술 마시고 나서 알콜 바이브, 술 텐션으로 마음의 빗장을 풀어헤치고 작은 일탈과 모험을 감행하는) 독거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곳. 사람을 (순수하게, 순진하게) 믿지 않는, 믿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어떤 이는 감당하기 힘들겠다 싶으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된 상태로 대체가능한 관계를 맺고, 어떤 이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려는 듯("문제 있는 둘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힐링 로맨스 영화" 같이) 여전히 희망을 품고 누군가를 찾아헤맨다. 소설의 주인공인 솔과 호의 이야기이다.

‘I TINDER U’

(...) 내게 ‘아이 틴더 유’가 ‘얼마든지 네게서 사라질 수 있다’라면, 호에게는 ‘아이 틴더 유’가 ‘어쩌면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라는 낭만적인 말일 거였다.

<아이 틴더 유>, 정대건

소설을 읽는 내내 '호'에게서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속한 곳도 없고, 이제는 정말 친구도 없어서 팟캐스트만 듣는"(11) 생활에 완전히 해당하지 않지만 거의 유사했다. "연애할 땐 애인이 제일 친한 친구가 되는데, 끝나면 그게 사라져버리니까"(17) 그랬다. 사실 애인이 친구로 지내자고 했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스스로 망쳐버렸다. 그러고 나서 어찌저찌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 건 (아직은) 소속되어 있는 곳이 같다는 점이 결정적이고, 나도 그 친구도 '외로운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다.

며칠 전, 소중한 친구 사이라고 생각하는 상대방으로부터 긴 문자가 왔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나가기 버겁다는 호소이자 이 관계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조정하면 좋을지 고민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서로의 본심과 성찰을 공유하고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도덕적 명령을 따를 수 있는 채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상대방은 나를 '나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서운함과 서러움이 폭발하지 않았고, 내가 일방적으로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관계에서 상대방이 하차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와 다른 인간관계의 문법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내게 얼마만큼의 애정을 품고 있는지 계산하기보다 친구의 관계성의 형식을 이해하는 데 주력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과자와 음식에서부터 기후 위기와 청년 이행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취향과 가치관이 잘 통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대화는 많이 나눈 편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이야기, 뭣보다 우리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일천했다. 나는 아직 상대방을 잘 모르고 있다는 인식은 묘한 평온함을 선사했다. 몰랐던 부분에 대해 물어보고, 배우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을 고치면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어쩔 수 없이 관습을 모방하든 참조하든 관습에 매여 있기도 하고, '자기다움'의 고유성과 구체성을 명확하게 표출하기보다 관성에 의존해 움직이는 부분이 있었던 관계를 섬세하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그렇게 굳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그대로 괜찮은 사이, 동등한 주체로서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는 관계에 다가설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필요'의 계기를 품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순전히 '네가 보고 싶어서''네 안부가 궁금해서' 같은 가장 순수한 층위의 친밀성에 기반한 필요리든 정말 욕구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도구적인 필요이든 '나'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해주길 욕망하고, 욕망하지 않기를 욕망한다. 욕구/필요need, 요구demand, 욕망desire - 정말 예전에 문학평론가 선생님께서 정신분석학의 기본 개념인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 욕구와 욕망이 어떻게 다른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고등학생 때 배운 내용을 떠올려 욕구는 육체적인 본능적인 바람이고, 욕망은 정신적인 바람 이라는 식으로 대답했다가 이게 욕망에 대한 가장 잘못된 인식 중 하나라는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육체와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서양철학-근대철학의 전통에 대한 비판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터다). 그럴 필요 없는데 그때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 질문을 정해진 정답을 호출하는 행위로 인식하는, 질문에는 올바른 정답을 내놓아야 하지 '어림 없는' 오답들은 침묵 속에 놔둬야 한다는 분위기를 오랫 동안 체화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심지어 오답을 말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거나 꼽 주는 분위기도 있었으니 말이다). 언제까지라도 '내 편'이 되어주는 '낭만적 유토피아'의 이미지를 욕망하고, 실제로 그런 인생의 짝을 만난다면 좋겠지만 그런 '행복의 약속'이 만인에게 활짝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랐어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분과 만나고 싶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배제되어버리는 기분이 드는 그 말(33)과 비슷하니 말이다. 그런 관계가 든든하게 곁에 있어주지 않더라도 어떤 말 한 마디 해주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많이 우울해하더니 그래도 글을 완성했네.”

“네 덕분이야.”

“뭐가?”

“나 추위 많이 탔는데 그럴 대마다 여의도의 햇살을 떠올렸어.”

호가 빙긋이 웃었다.

“나는 정말 네가 아니면 유령이었어. 그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이 너밖에 없었어.”

호가 ‘그 시기’라고 표현하는 걸 들으니 정말로 한 시기가 지나간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끈질기니까 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그랬잖아.”

내가 근거도 없이 쉽게 한 그런 말조차도 그때의 호에게는 필요한 말이었다고 했다.(40)

<아이 틴더 유>, 정대건

몸의 건강이 급작스럽게 급격히 무너진 상황에서 온기를 지닌 누군가가 곁을 지켜주는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간절한 목표가 달성되지 않아 홀로 마음을 일으켜세우기 역부족일 때, 자존감이 바닥나고 뭔가를 할 의욕이 생겨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적 상황에서 '괜찮다'는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조금의 여유도 없이 언제나 조급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어느 시기'를 겪어내고 견뎌내는 데 팟캐스트로는 도저히 역부족일 때가 있다. 이름 붙이기 애매모호한 복잡하고 불안정한 관계일지라도, 끊임없이 내 욕망과 상대방의 욕망 사이에서 관계의 거리와 온도를 수정하고 수리해야 하는 원만하지 못한 관계일지라도, 순간순간의 필요가 맞아 함께 있는 순간들('매직 아워' 같은 짧고 소중한 시간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상대방이 대체할 수 없는 '스페어'가 되어있는 때가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안전거리'를 침범해온다면 도망치지 않기 어렵겠지만 '2km' 그리고 '17km' 떨어진 곳에서 상대방의 평안한 밤과 안녕, 행복을 기원해주는 <아이 틴더 유>가 보여주는 온기에 위로를 받았다.

언론사 취업을 준비 중인 N,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K, 박경리 소설읽기를 시작한 S, 홍대 인디 씬을 연구하는 문화연구자 J,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편입을 준비 중인 T - 틴더로 알게 된 친구들에게 <아이 틴더 유>를 열심히 영업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다 한 번쯤 매직 아워 같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길 가볍게 희망해본다.

+ 빵 터졌던 부분

나는 평일에는 한 번, 주말에는 자유롭게 틴더 5부제를 하면서도 줄기차게 관계를 피해 다녔고, 호는 외로움을 못 이겨 가금 틴더를 돌리며 끈질기게 관계를 찾아다녔다. 나는 틴더에서 로맨스(백마 탄 왕자)를 찾아다니는 호를 ‘틴더렐라’라고 불렀다. (19)

-익명으로? 미쳤어? 나 같으면 틴더 프로필 sinchoonmunye로 바꿨다 (38-39) -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한 호의 소식을 들은 솔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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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접속 무비월드의 '완소'(오랜만에 꺼내본다 낡은 신조어...) 코너 '미안하다 몰라봐서'에서 영업당해 본 로맨스영화. 알고 보니 33분 짜리 단편영화여서 무비월드의 축약된 버전과 본편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20자 평처럼 30분이 3분처럼 느껴진 현실 로맨스 영화였고, 좋았다.

그건 내가 이별의 여파를 여전히 겪고 있고, 일이 안 풀리는 예술가 지망생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다. 그건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게 주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홍상수 영화의 예술가/지식인 (지망생) 주체의 속물성을 냉소적으로 제시했다면 이 영화는 그 찌질함을 냉소하거나 연민하거나 하지 않고 노출시킨다. 그로 인해 밝고 능동적인 여성주인공의 매력은 극대화되지만 여주의 서사가 단촐하고,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다 보니 남성의 판타지가 투영된 대상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아쉽다. 그렇지만 감정에 서툴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보다 자기 상처에 몰두해 있는 남자가 감정에 솔직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도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남친과 헤어지고 얼마 전부터 관심을 갖게 된 영화에 꽤 진심인듯 보이는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은 남자를 만나 서로 호감을 느끼고 좋아하게 된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런 시시콜콜함으로 이 연애담을 대했을 때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지망생 백도환(엄태구 분)은 여자친구와의 이별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녀가 던진 말이 비수처럼 박혀 상처를 깊게 입었다. 시나리오를 작성하고자 띄운 한글창에 그 말을 옮겨적어 보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 동료로부터 영화모임에 나오라는 제안을 받고, 영화인들이 많이 올 거라는 설득에 마지 못해 응한다. 수줍게 자기소개를 하는 도환의 모습에 심은하(이수경 배우)는 살짝 호감을 느낀 눈치다. 자신처럼 하늘과 나무를 관찰하고 있는 은하의 모습에 홀린듯 도환은 그녀를 도촬하고, 은하는 도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대화가 이어지게 된다. 영화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영화친구'가 되자고 제안하는 은하. 도환은 조금 부담스러워하면서 몸을 살짝 뒤로 내빼보지만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며 ㅡ 내 성이 궁금하지 않느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물어본다고, 성이 심이라 심은하라고, 배우 심은하 씨보다 더 예쁘다고 ㅡ 다가오는 은하에 이내 무장해제가 된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진심리었던 도환은 심은하는 초예쁘셔서 영화를 직접 봤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거라고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명장면을 줄줄이 읊으며 급발진해버린다. 그렇게 둘의 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은하는 도환에게 묻는다.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어떤 내용이냐고. 도환은 시나리오 설명을 빙자해 자신의 연애담 - 상처주었던 말을 들려준다. 그러자 은하는 피드백을 준다. 여자를 그냥 단순히 이별을 통보하는 대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그 여자는 나름의 이별을 준비하는 기간이 있었을 거다라고 다가가보는 건 어떠냐고. 나름 충분히 준비하고 언질을 줬을 텐데 몰랐던 거죠 무심한 남자라서. 가만히 듣고 있던 도환은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그렇게 은하에 대한 연모의 정이 점점 불어나자 도환은 자신이 먼저 은하를 불러내 만남을 가져보지만 약지의 반지를 발견하고 잠시 잊고 있었던(잊으려 했던)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고 그녀를 차갑게 대한다.

다음날 7통씩 전화를 걸고, 연락을 받지 않은 상대에게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려달라고 셀프 반성 ㅡ 자책의 똥꼬쇼를 벌이다 겨우겨우 그녀를 만나게 된다. 거기서 '좋아해선 안 되는 널 좋아해서 괴롭다'는 진의를 품고 있는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은하가 남자친구가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사실 엄태구의 매력을 걷어내고 백도환 이란 인물만 놓고 보면 은하 입장에서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글 쓰는 남자' '영화하는 남자' 괜히 최악의 연애상대 유형 영역에서 양대산맥을 이루는 쌍두마차로 꼽힌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고 싶었다. 둘이 잘 돼서 사귀게 된다면 도환은 은하에게 영화 말미처럼 장난을 잘 치고, 자기 감정을 좀 더 솔직하게 전달하기를 바랐다. 은하 앞에서 영화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영화를 매개로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하길 바랐다. 상처 앞에서 멈춰서서 마음을 그만두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쉬이 상대를 대상으로 고정시키지 말고 둘 다 관계의 주체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20대 초반에 독서모임에 몇 번 나갔다. 내가 직접 독서모임을 주도적으로 조직해보기도 하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조직한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유 출판사에서 독서모임을 꾸리는 법에 대한 책을 그때 읽었더라면 좀 더 잘할 수 있었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어쨌든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갔던 자리였으나 거기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적절하게 잘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으니까. 지금도 사정이 크게 나아진 것 같진 않다.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포기를 하는 능력이랄까,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능력이랄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새로 경험해보고 싶다. 문학이나 영화 에 대한 애정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자리가 잘 없는 만큼, 혼자서 감상하고 향유하는 것도 좋지만 문학과 영화 모두 우정을 요청하니까. 그게 이런 식으로 블로그나 SNS에 리뷰를 올리고, 다른 이들의 리뷰를 읽는 방법도 있지만 얼굴을 맞대고 각자의 육성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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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민지의 [버블 패밀리]를 드디어 봤다. '드디어'라고 할 만한 전사(pre-history)가 있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서 상영일정이 있어서 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놓쳤다. 그리고 ebs 다큐페스티벌 대상작으로 수상돼 상영했는데 TV 상영일정과 일정이 맞지 않아 놓쳤다. 온라인상으로 볼 기회가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영화제에 최대한 다 출품하고 돌고 나서 IPTV나 OTT로 가야 하는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토요판'을 챙겨 읽어야겠단 생각에 한겨레에 접속했다가 강유가람 감독의 버블 패밀리 에 대한 글을 읽었다. U+모바일 tv에 영화 월정액에 가입돼 있는 상태임을 최근에 확인하고 ㅡ 그래서 핸드폰으로 볼 수 있는 영화와 IPTV 상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IPTV로 결제하고 봐야 하는데 모바일로는 무료. 모바일에서 시청가능한 영화를 IPTV에 전송해서 볼 수 있는 환경이다. 이걸 몰라 호구딜로 돈을 좀 날렸다 ㅡ 검색해봤더니 갓챠. 잡았다 이 영화...

영화내용은 이미 대충 알고 있었다. 제목이 암시하듯 호황기에 부동산에 투기하며 부를 늘렸던 가족이 IMF 외환위기에 직격타를 맞아 중산층의 대열에서 밀려난 이야기. 여전히 부동산에 집착하고 있는 부모님을 감독이 직접 담아낸 영화라고.

박해천의 '아파트' 3부작 등 아파트와 중산층에 대한 담론에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이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 개발로 폭발하기 시작한 부동산 투기가 1980년대 3저 호황과 올림픽의 열풍을 타고 이어졌고, 1990년대 일산, 산본, (분당?) 3기 신도시 개발까지 계속되다 1997년에 파산한 이야기. 사실 재벌과 상류층은 오히려 IMF를 기회 삼아 부를 더 축적할 수 있었지만 중산층은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고.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몰입해서 봤다. 이는 아마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청년 세대 감독이 애증의 관계인 부모님과 '우리 집'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현실적인 고민이 담겨 있고, 비빌 부동산이라고 없는 동/흙수저로서 집과 땅에 대한 여정을 통해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는 화해의 서사여서 그랬던 것 같다.

가족들이 묻는 말을 제대로 답해주지 않는 아버지(영화제작 지원비를 갖다 쓰자는 아버지;;), 남편의 사업이 무너진 이후로 15년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오신 어머니, 영화를 찍는 딸. 빚이 있고, 1년-1년 반 뒤면 현재 살고 있는 집이 허물어질 예정이지만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아니 현실적인 대책을 궁리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여전히 부동산 대박을 꿈꾸고 있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부동산 버블이 한 가족에게 남긴 상흔과 균열이 무엇인지 바라보게 한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주지 못한, 그래서 자식을 빚쟁이(학자금대출)로 만든 부모에 대한 원망에 대해 말했다. 그런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어 독립했으나 졸업 이후 다시 부모님 집으로 되돌아온 감독에게 아버지는 종잣돈을, 어머니는 감독 명의의 등기문서를 선물한다. 감독은 땅 살 돈이 있었으면 등록금을 내주지 그랬냐며 엄마에게 따지지만 엄마는 땅값이 오르면 몇 배 오를 수 있다고 답변한다.

100만원 짜리 아파트를 샀다 300만원에 팔아본 울산에서의 첫 부동산 경험, 이 원초적 기억 이후 IMF 전까지 발전과 성장의 낙관주의로 일관했던 어머니의 세대적 계층적 감각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뭣보다 빚이 남아 있고,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에서 남들도 다 어렵게 살고 있다는 체념과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낙관주의가 묘하게 섞여 있은 어머니의 태도를 보며 내 어머니가 많이 떠올랐다. 먹고 사는 밥벌이의 전장에서 수 십 년 동안 뒹군 베타랑의 능숙하면서도 피곤함이 섞인 에너지 같은 거랄까.

가족들끼리 각자의 경제상황과 사정을 제대로 모르고 있고, '돈 문제'에 있어 소통과 합심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모습이 계속 이어지는 걸 보며 참 어려운 거구나 싶었다. 가족이라는 거, 인륜적 공동체기도 하지만 뭣보다 경제적 공동체/결사체라는 사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각자의 관점과 태도가 다르면 많이 어렵구나ㅡ 어렵겠구나 싶었다.

최근에 아빠가 이런 얘기를 했다. 부동산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알았다고.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뉘앙스였다. 과감하게 공격적인 투자(투기)만이 중산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길임을 이제야 알았다고. 나는 거기서 '콘크리트 유토피아' 학자연하는 소리를 운운할 수 없었다. 중국집, 공판장, 버스 기사, 청소일, 현재 아파트관리 일 등 다양한 직종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다단계 같은 곳에 돈을 손실해가며 어쨌든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노력해온 세월이 유구하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노후 대비를 하기 위해서라도 든든한 지원군의 존재를 필요로 할테니까.

8살 때인가 옆집에 사는 '이웃사촌'과 강원도 금강 쪽으로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이웃사촌은 회사에 다니고 계셔서 승용차를 끌고 가 텐트를 치고 숙박했다. 우리 집은 그때 공판장을 하고 있던 때라 트럭을 타고 가서, 트럭 짐칸에 설치된 천막 같은 구조물을 텐트 삼아 숙박했다. 아까 1990년대 유년기의 기억을 회상하며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진하게 겪은 기억이 없다고 적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때 한 번 강하게 겪었던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트럭에서 자는 '가난한' 우리 가족 모습을 남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하면 부끄러웠던 것 같다(그때 나는 7-8살 정도였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텐트에서 자는 게 '정상적'인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뭔가 분하게 부끄러워서 잠을 잘 못 잤던 것 같고, 그런 식으로 투정 몽니를 부렸었는지 아버지는 이웃사촌네 텐트 가서 자라는 말을 하셨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쪽 팔린' 짓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수없이 마음을 추스리고 분을 삭이고(?)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차박의 원조(?) 격이었고, 4인 가족이 자기에 불편한 환경도 아니었고 그때 다녔던 치악산 국립공원이나 금강 같은 여행지 모두 엄청 좋은 추억인데 그땐 마르크스도 베버도 박정희 전두환 아무도 몰랐다.

나는 현재 아파트에 살고 있다. 엄마 집인데 여기로 이사한지 5년 정도 됐다. 그전까지 전세살이를 오래 했었다. 이사를 많이 다니다 할아버지가 고향땅을 팔아 지은 빌라에 들어가서도 꽤 오래 살았다.

기억 하나. 초3 때인가 서프 라는 게임을 했다. 이때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아마 아파트였던 것 같다. 친구는 현질을 해서 캐시를 바르고 있었는데 그게 되게 편리하고 좋다고 느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까지 방문한 친구네 집들은 아파트긴 아파트만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었다. 중학교 이후로 브랜드 아파트를 갈 일이 생겼는데 여긴 뭔가 좀 다르구나 하는 걸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지 수도 많고, 대리석 기둥들도 있고, 약간 게이티드 커뮤니티 같은 성격이 있음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던.

만났던 친구들은 모두 잘 살았다. 강동구의 좋은 아파트, 과천의 좋은 아파트, 구로 쪽에 중소기업. 유년기/청소년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계층화된 경험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주눅들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학원에서도 당연하게도 나보다 잘 사는 집안의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다 나랑 비슷한 형편인 친구를 보면 괜히 동질감이 느껴지고 마음이 갔다. 그래도 잘 사는 집안의 고학력 부모님 맡에서 어렸을 때부터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얘기를 많이 듣고 조금 시야가 유연해질 수 있었다. 계층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경험, 내 스스로 주눅 들거나 컴플렉스가 사라잡히지 않고 내 자존을 지키며 사람들을 사귈 수 있을지 앞으로의 과제 중 하나인 것 같다.

내 학자금 대출은 몇 십 만원 정도 남았다. 대학교 1학년 때 생으로 나온 등록금을 다 지원받았고(한 학기에 300만원 초반대), 2학년부터 부분 장학금을 받아서 100만원 정도 냈던 것 같고, 3학년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러다 대학원 와서 2학기 총 1000만원을 지원받았고, 계속 지원만 받을 순 없다는 생각에 학자금 대출 2학기를 받았다. 그러니까 총 1000만원. 조교 장학금과 알바로 열심히 갚아나간 결과 상환을 거의 다 할 수 있었다. 대학 4년 내내 기숙사 4인실을 배정받을 수 있었고, 대학원도 집에서 통근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주거비에서 지출이 많이 안 나오니까 주객전도 식으로 알바를 미친듯이 하지 않아도, 친구들이랑 밥도 먹을 수 있었고 연애도 할 수 있었다.

막연하게 독립된 생활을 상상해볼 때가 있다. 월세와 공과금, 세금 이 있는 삶. 눈 뜨기 싫어도 새벽-아침에 일어나지는 삶. 어쩌면 집에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고, 영화를 같이 볼 수도 있는 삶. 수 천 권의 책들 중 고르고 골라 소박하지만 튼실한 미니멀한 서재를 꾸린 삶. 하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이 너무나도 멀어 2년마다 (지금은 법이 바뀌어서 좀 다르겠지만. 혹은 청년임대주택 등도 있으니까...) 이사해야 하는 삶이 좀 막막해지기도 한다. 내게도 마민지 감독처럼 졸업 이후 깜짝독립선물 같은 게 준비돼 있을까. 부모님은 어쨌든 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노후를 대비하면서 가능하다면 자식들에게 보탬을 주시려 하는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도움이 돼 드릴 수 있을까.

아빠 혹은 엄마와 언제 한 번 여행을 가보고 싶은데 그런 날이 언제 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꼭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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