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린 그분의 교회는 십자가가 지닌 그 모순에 상응하여 그가 그 속에 서 있고 또 관계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갈등에 편파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으며, 어느 한편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는 현존하는 파당들을 위하여 어떤 한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버림받는 인간성과 억압된 자유의 편에 서기 위하여 한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단 하나의 정당한 출발점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속에 처한 구체적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자유하게 하는 십자가를 인식하는 데 있다. - P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설계자들 - 이스라엘 민족의 비밀스러운 흔적
이스라엘 크놀 지음, 정예중 옮김 / PCKBOOKS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변하는 진리가 있을까요? 인생은 모호합니다. 학문의 세계는 치열합니다. 합리적이라고 여겨졌던 이론도, 보다 세밀하고 논리적인 주장 앞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이 있다면, 기존의 논의들은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됩니다.


신앙과 학문의 긴장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흔히 성경이 진리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진리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문자 자체의 오류가 없다'라는 말이라면 그 말은 참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랜 시간 기록되고 형성되어 왔기에 다양한 맥락과 환경을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의 형성에 관련된 부분은 성서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의견으로 나누어집니다. 성경이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는 공통된 의견은 모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성경의 기록을 어디까지 신뢰하며 근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다양한 주장이 공존합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 성서학과 석좌 교수인 이스라엘 크놀(Israel Knohl)은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과 성서 신앙의 근원에 대해 기존의 성서학자와 고고학자들의 학설과는 다른 시각을 제안합니다. 그는 그동안의 연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고고학적 유물과 성서 기록에서의 불일치의 문제를 상기시킵니다.


저자는 최소주의(성서의 역사성을 최소로 인정하며 고고학 등과 같은 성서 외의 자료를 1차 자료로 보는 관점)와 거리를 두지만, 최대주의자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과 문명의 형성이 복합적이고 다분화된 과정들의 산물임을 강조하는 그의 태도와 일치합니다.


크놀은 고고학적 자료들을 면밀하고 주의 깊게 활용하면서도 성경의 말씀 또한 두루 살펴봅니다. 그는 성서가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기록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불일치와 모순이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 역사적인 요소들이 잠재되어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탄생과 성서 신앙의 배경이 되는 큰 전환점이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전환되는 주전 13~12세기 사이에 발생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시기에 중동 지역과 에게해 연안을 휩쓸었던 대대적 재난으로 인해, 거대한 왕국들과 도시들은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공황 시대에 다양한 민족과 부족들이 자신의 정착지를 떠나 유목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가정합니다. 여러 난민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 등을 간직한 채 이곳저곳으로 방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토착민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여러 전통이 결합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은 여러 조각들이 모여 재탄생한 견고한 민족 공동체의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성서 신앙은 소수의 이스라엘인들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했습니다. 성서의 신앙은 진공상태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의 접촉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신앙과 학문의 긴장 가운데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저자의 치열한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성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분투는 비단 그때 당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을 사수하는 것은 급변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붙들어야 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리_하나님의 흔적 1 - 40인의 일상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흔적
신재철 지음 / 세움북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서에 기록된 한 문장만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없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잇속만 차리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공동체의 상황보다 자신의 앞날을 더 생각하는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그 사람만 포기하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을 텐데, 왜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더 내밀한 사정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공동체의 리더와 그 공동체가 처음부터 매우 큰 실수와 강요를 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러 상황과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습니다.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때 그 사람을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서사는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과 소명을 인식하게 만듭니다. 나의 필요로 인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만화방 교회 이야기』의 저자 신재철 목사는 '좋은 인터뷰'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아갑니다. 사역자, 기업인, 의사, 강사, 작가, 예술가 등, 이 책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저자는 코로나로 인해 대면접촉이 제한되던 때에 보다 의미 있는 사역에 대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좋아했던 찬양사역자들의 근황이 궁금했고, 이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러한 여러 차례의 만남이 이 책으로 열매 맺습니다.


저자는 각자의 이야기를 터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최대한 자신의 역할을 제한하고, 상대방이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말입니다. 저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인생을 살아오며 느꼈던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는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삶의 고통과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매 순간 함께하신 분의 더 큰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아픔의 순간에 우리는 그분을 잊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눈물 흘리시며 우리와 함께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40인의 이야기는 일상 가운데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향하게 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놀라운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경험한 그들만의 이야기가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노래가 됩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너'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된다는 데 있습니다. 홀로 경험하는 외로운 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 싸움을 함께 한 동료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우리 또한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함께 노래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계속 -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모토로 아무튼 시리즈 7
김교석 지음 / 위고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와 같은 오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가운데 무엇인가 끝까지 붙잡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하루하루이지만, 그래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그동안의 습관이 또 하루를 살아가게 합니다.


악인은 떵떵거리며 약자에게 한 행동에 대한 일말의 뉘우침도 없습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자신의 일임에도 부풀려 포장합니다. 모든 삶이 걸려 있는 중차대한 타인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악인들은 외칩니다. 사랑하세요. 소통하세요. 공감하세요. 배려하세요.


그럼에도 일상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저 앉을 수 있게 해줍니다. 읽고 쓸 수 있게 해줍니다. 가슴을 치며 읽고, 통곡하면서도 쓸 수 있게 해줍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억울함과 분노를 잠시 내려놓게 합니다.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이 나임을 깨우쳐 줍니다.


TV 칼럼니스트이자 전 『필름 2.0』의 기자였던 김교석은 이 책 『아무튼, 계속』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전해줍니다. 소소한 자신의 반복되는 삶이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음을 말합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지를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모든 시간을 붙들고 싶어 합니다. 흘러가 버리는 것을 뒤에 아련하게 놓아두고 가는 삶이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에 묵묵하게 서 있는 삶을 선택합니다. 더 빠른 속도를 경쟁하듯 추구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느리지만 삶의 의미를 천천히 되새기며 사는 삶을 살아갑니다.


운동과 청소, 요리와 같은 소소한 일상을 삶의 중심에 둡니다. 똑같은 요일과 시간에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만 어느새 그것이 하나의 의미가 됩니다. 변화 없는 일상으로 인해 변화무쌍한 세상과 맞섭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행위는 전복적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가치가 최우선이라 합니다. 자신의 탐욕을 쫓으라 합니다. 사람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의 돈과 자신의 행복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반복된 삶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요. 간혹 내가 힘들어질 수 있지만, 주변의 사람을 돌아보라고요.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일상의 위대함이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려의 말들 - 마음을 꼭 알맞게 쓰는 법 문장 시리즈
류승연 지음 / 유유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려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상대방의 의중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배려는 오히려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줄 때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꾹꾹 눌러왔던 한 마디의 무게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가볍게 대응한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한낱 자기만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배려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서사를 알고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현재 그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상대방의 정보를 뛰어넘어 그 존재 자체를 끌어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당신을 배려해서라고 말은 하는데, 제시한 대안은 자신을 위한 것일 때의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령, 자신의 이득을 위해 상대방을 내치면서, 너의 비전과 사명을 위해 내가 이러한 결정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사회부와 정치부 기자로 6년 동안 국회를 출입했던 이 책 『배려의 말들』의 저자 류승연. 그 누구보다 빨리, 열심히, 잘할 것을 요구했던 저자는 발달이 느린 아들과 함께 살며 작은 성장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말이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다름에 대한 이해는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됩니다. 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고통은 매우 다릅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한 사람은 상대방이 경험한 외적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에 귀를 기울입니다. '너'를 듣는 것이 배려의 시작입니다.


저자는 배려가 단순히 고통을 떠안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 배려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손을 살짝 잡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를 살리는 것이 배려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아주 자연스러운 전개로 우리 사회 곳곳의 소외된 사람들을 비추어줍니다. 강압적이거나 부담스럽지 않게요. 이 또한 독자들을 배려한 저자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만 마음을 열어보길 소망합니다. 우리 또한 나그네, 이방인이라는 것을. 우리 또한 언젠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 주면서요.


때로는 자신을 배려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늘 억눌리고 눈치 보며 상대방만 생각해왔잖아요. '나'를 배려해야 '너'가 보이니까요. 거창한 무엇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일상에서도 보석 같은 순간이 있으니까요. 때로는 그런 일상과 평범함이 너무 그리울 때도 있더라고요.


사랑과 배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동적인 행동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수동적임을 알 수 있죠. '너'에게 맞추어야 하거든요.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방법이 아니라, '너'가 원하는 방식과 태도가 진정한 사람이죠. 그렇기에 사랑은 매우 소극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사랑과 배려는 어려운 것 같아요. 매우 세심하게 상대방을 관찰하게 이해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사랑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랑을 한번 해보세요. 무엇인가 훨씬 다른 차원의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요. 아,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구나를 경험하면, 더 깊은 사랑을 하고 싶을 수도 있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