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설계자들 - 이스라엘 민족의 비밀스러운 흔적
이스라엘 크놀 지음, 정예중 옮김 / PCKBOOKS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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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하는 진리가 있을까요? 인생은 모호합니다. 학문의 세계는 치열합니다. 합리적이라고 여겨졌던 이론도, 보다 세밀하고 논리적인 주장 앞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이 있다면, 기존의 논의들은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됩니다.


신앙과 학문의 긴장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흔히 성경이 진리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진리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문자 자체의 오류가 없다'라는 말이라면 그 말은 참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랜 시간 기록되고 형성되어 왔기에 다양한 맥락과 환경을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의 형성에 관련된 부분은 성서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의견으로 나누어집니다. 성경이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는 공통된 의견은 모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성경의 기록을 어디까지 신뢰하며 근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다양한 주장이 공존합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 성서학과 석좌 교수인 이스라엘 크놀(Israel Knohl)은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과 성서 신앙의 근원에 대해 기존의 성서학자와 고고학자들의 학설과는 다른 시각을 제안합니다. 그는 그동안의 연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고고학적 유물과 성서 기록에서의 불일치의 문제를 상기시킵니다.


저자는 최소주의(성서의 역사성을 최소로 인정하며 고고학 등과 같은 성서 외의 자료를 1차 자료로 보는 관점)와 거리를 두지만, 최대주의자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과 문명의 형성이 복합적이고 다분화된 과정들의 산물임을 강조하는 그의 태도와 일치합니다.


크놀은 고고학적 자료들을 면밀하고 주의 깊게 활용하면서도 성경의 말씀 또한 두루 살펴봅니다. 그는 성서가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기록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불일치와 모순이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 역사적인 요소들이 잠재되어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탄생과 성서 신앙의 배경이 되는 큰 전환점이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전환되는 주전 13~12세기 사이에 발생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시기에 중동 지역과 에게해 연안을 휩쓸었던 대대적 재난으로 인해, 거대한 왕국들과 도시들은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공황 시대에 다양한 민족과 부족들이 자신의 정착지를 떠나 유목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가정합니다. 여러 난민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 등을 간직한 채 이곳저곳으로 방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토착민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여러 전통이 결합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은 여러 조각들이 모여 재탄생한 견고한 민족 공동체의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성서 신앙은 소수의 이스라엘인들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했습니다. 성서의 신앙은 진공상태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의 접촉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신앙과 학문의 긴장 가운데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저자의 치열한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성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분투는 비단 그때 당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을 사수하는 것은 급변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붙들어야 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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