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봇 다이어리 : 인공 상태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8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 알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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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나 주제에 따라 읽기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시를 대할 때와 과학 서적을 마주할 때는 그 자세부터 다르다. 철학이나 신학서적을 읽을 때와 에세이를 볼 때도 많은 차이가 있다. 다른 장르에 비해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텁텁해지면 소설책을 펼친다. 머리가 뻑뻑해질 때도. 


책을 읽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책 읽기의 목적은 '즐거움'이다. 문유석이 『쾌락독서』에서 주장하듯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다(14)." 독서를 신비화하거나 숭배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른 사람이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을 나무랄 필요가 없다. 내가 즐거우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SF소설은 거의 보지 않았다. 이 세계를 잘 모른다. 그러니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SF, 판타지 소설 작가 마샤 웰스(Martha Wells)의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를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시리즈물이다. 2019년 9월에 알마에서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이 출간되었다.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알마, 2019)

 

시리즈물이기에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을 읽은 뒤,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를 읽으면 더 자연스럽고 풍성하다. 하지만 이전 시리즈의 정보가 없다 해도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 만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개별적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형태다. 이전의 에피소드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책이라면 이미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알마, 2020)

 

​이 책에서 머더봇은 전편(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에서의 사건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연루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기억의 장소로 가려고 한다. 그 과정 가운데 다른 인공 존재의 도움과 감시 등이 시시각각 등장한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달린다. 마치 지금도 이러한 인공 존재들과 함께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이 든다. 그만큼 작가의 묘사는 구체적이며 섬세하다. 그러면서도 사건의 전개는 과하지 않다. 적절한 절제와 완급조절이 탁월하다. 


흥미진진하지만 내용은 깊다. 어떤 면에서 매우 진중하다. 인간의 악, 사회의 부조리, 인간의 존재. 여러 질문들이 머리를 떠다닌다. 작가는 그러한 지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과 인간의 근원적 질문은 강하게 마음에 부딪힌다. 이야기를 통한 질문은 더욱 무겁게 가슴에 와닿는다. 


SF소설을 처음으로 접하는 독자라면, 이 시리즈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이미 SF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미 이 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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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개정판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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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다: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는 김영하의 산문 세트 3부작 중의 하나다. 『읽다』는 작가의 독서 행위에 대하여 진솔하게 풀어낸 글이다. 2018년에 출간되었으니, 『보다』 (2014),  『말하다』 (2015)보다 뒤늦게 출간되었다. 그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필체는 그의 산문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김영하는 20여 편의 책을 출간한 소설가다. 많은 작품이 그에게서 나왔지만, 그는 자신이 읽은 책과 쓴 책의 비대칭성에 주목한다. 많이 읽었지만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써서 세상에 내어 놓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고민 가운데서 그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책, 즉 고전이라 부르는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의 부제는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다. 총 여섯 챕터의 글들은 여섯 날이 된다. 그리하여 하루하루 저자와 함께 고전의 숲을 함께 산책할 수 있다. 저자는 흔쾌히 고전의 길잡이가 되어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한다.


첫째 날은 위험한 책 읽기다. 저자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등을 언급한다. 이를 통해 고전이 계속 읽힐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왜 책 읽기가 위험한가? 저자는 이러한 고전을 읽을 때 우리 내면의 오만을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독서는 그동안의 신념을 뒤흔들고 자아를 분열시킨다. 


둘째 날은 미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이야기로 우리를 이끈다. 이들은 독서광이다. 그들은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 또한 보게 된다. 저자는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잠시 이야기의 틈으로 들어가 거대한 세계에 마주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셋째 날에 저자는 카프카의 『성』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더불어 『마담 보바리』를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독서를 통해 '길'을 찾는 행위가 내포한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저자는 소설을 읽는 행위가 어떤 교훈이나 주제를 파악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바로 헤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우리는 최대한 주의를 집중하여 소설에 빠져든다. 끝까지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하여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 안에 구현된 세상에 잠시나마 빠져보고자 하는 것이다. 


 넷째 날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다. 많은 소설이 사회적 통념이나 금기를 깬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윤리와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선택의 독자의 몫이다. 계속 읽을 것인가, 아니면 책을 덮을 것인가. 소설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독자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싸워가면서도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어 책을 붙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소설을 읽음으로 어떤 유익을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저 읽는 것이 바로 소설의 매력이다.


다섯째 날은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를 소개하며,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코넌 도일의 『주홍색 연구』,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통해 매력적인 괴물들에 대하여 고찰한다. 단순하게 판단했을 때 독자들은 악보다 선을 더 선호할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여러 작품들을 통해 살펴본 악을 대면하는 인물들은 복잡다단한 내면을 표현한다. 그들을 그대로 포기하기에는 이미 우리의 내면과 닮아있는 점이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강압적이며 교훈적 어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있는 악과 대할 수 있으리라.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저자는 소설을 읽는 것이 광대한 우주를 탐험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서로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도 어떤 지점에서 동일하게 읽히는 부분이 있다. 이야기의 망망대해 가운데 우리는 명확한 목적이나 유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를 세상과 연결시키고, 알게 모르게 더 큰 차원으로 넓혀주는 힘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와 소설이 가진 힘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려고 하는 독자들의 친절한 안내자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뚜렷한 목적지가 없어 표류하는 독자들,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서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따뜻한 목소리로 함께 여행해보자 손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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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
김현 외 28인 지음 / 알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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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안, 혼란, 무력감을 호소한다. 『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는 고통과 고립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스물아홉 명의 작가들은 시와 에세이,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앞표지와 뒷표지는 각각 다른 장르로 시작한다. 앞표지는 에세이로, 뒷표지를 시로 시작하며, 앞표지와 뒷표지는 거꾸로 되어 있다. 쪽수도 에세이(E)와 드로잉(D), 시(P)로 표기되어있다. 독자는 원하는 장르를 선택하여 볼 수 있다. 표지는 마분지로 마감하여 색다른 질감을 선사한다. 표지 또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인다. 몽환적이며 뭔가 모를 생동감이 느껴진다.


에세이를 읽었다 머리가 아파오면, 시를 읽고. 마음이 뜨뜻해지면 그림을 감상한다. 다양한 맛과 향이 우리를 유혹하니, 이 책 한 권 들고 여행이나 떠나면 좋겠다. 커피 한잔 내려놓고 비 오는 창가에서 빗소리 들으며 이 책을 읽는 것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진다.

 

​이 책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이 많지만 학문적인 에세이도 포함되어있다. 특히 미생물학 박사로 미국에서 백신 연구를 하고 있는 문성실의 글은 팬데믹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분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과학 큐레이터 이지유 작가의 글은 우리의 안목을 훨씬 더 폭넓게 만들어준다.   


아. 이 책을 급히 볼 생각은 하지 마시길. 부디 천천히. 아쉽다면 아쉬움이지만 엔솔로지 작품을 마주하며 장편소설의 플롯을 기대해서는 안되니. 동일한 상황도 각자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다른 경험이 되니.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힘들 때마다 꺼내 읽으면 큰 힘이 될 듯.


그럼에도 각 작품은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정황이 주는 답답함과 혼란스러움. 그 가운데서도 여러 작품을 통해 우리는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끊어져있고 떨어져 있고 멀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장석주의 마지막 속삭임은 우리를 희망으로 이끈다.


삶이 사막, 밤, 광활함에 잠식되더라도

고개를 떨구거나 의기소침에 빠지지는 말아요.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내게, 우리는 서로에게 기꺼이 

일상의 안녕과 평온한 기쁨을 건네는 집이 될 테니까요(66).


"의지와 노력만으로 언제든지 누릴 수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불안과 우울, 무력감이 현실의 시간을 허공에 조각내버리는 듯했다. 그렇게 조각난 허무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어느새 2020년의 절반이 지났다."

안지미
- P12

"부모의 삶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자신(나)의 삶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마흔이 되고 보니 그때 마흔의 부모란 애송이. 칠순이 되어 (이제 여기 없는) 그때 칠순의 부모를 되돌아보면서 저는 저의 어떤 면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될까요."

김현

- P24

"우리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한다. 작은 기쁨을 던져 그것을 깨뜨리려 하거나 위협을 한다. 슬플 겨를도 없이 시간에 매몰되어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까지로 건너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슬픔을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는 슬픔을 기다리지 않는다. 비극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서윤후
- P56

"공상은 유용한 것들에 대한 무기력한 투항이 아니에요. 공상은 근육의 이완과 백일몽의 모호함 속에서 기쁨은 촘촘해지지요. 이것이 모험가의 일은 아닐지라도 아주 무익하진 않아요. 시간을 헛되이 쓰는 잉여 활동에 가까운 이것의 쓸모는 엉뚱한 지점에서 나타나지요. 머릿속에 꿈의 공장을 짓는 일이라는 점에서 공상의 쓸모란 ‘쓸모없는 쓸모‘에 가깝지요."

장석주
- P63

"삶이 사막, 밤, 광활함에 잠식되더라도 고개를 떨구거나 의기소침에 빠지지는 말아요.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내게, 우리는 서로에게 기꺼이 일상의 안녕과 평온한 기쁨을 건네는 집이 될 테니까요."

장석주
- P66

"지난 백 년과 다르게 우리는 기술이 있고, 경험이 쌓였으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달았다. 앞으로 백 년을 내다보고, 전 세계가 공조할 수 있는 전염병 대응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일들을 통해 전염병과의 두더지 게임이 시작되었다."

문성실
- P73

"정작 심각한 것은 친인들을 잃어버린 물리적 거리보다 접속사를 상실한 언어의 거리가 아닐까. 살아온 삶을 설명할 언어를 잃고 점차 허무로 치닫는 영혼의 감염이야말로 오랫동안 인간을 괴롭힐 것이다."

장은수
- P81

"언어가 닿아 있는 한,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가 소멸하지 않는 한, 영혼 또한 존재한다. 영혼이 아직 있는 한, 입술은 언어를 내보낸다. 이로부터 위대한 순환, 즉 절망적 세계를 구원하는 시의 운동이 나타난다."

장은수 - P82

"20세기의 역사는 ‘접속사‘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문명이 어떤 운명에 처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공포와 고독, 절망과 광기, 냉소와 허무에 시달리던 이들은 끝내 언어를 되찾지 못하고 또다시 전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에서 ‘유대인 대학살‘과 ‘원자탄 투하‘라는 인류사적 비극을 겪었다."

장은수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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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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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마련한 도스토옙스키 한 달 읽기 챌린지를 통하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세 권을 다 읽었다.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선택하여 한 달 동안 완독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예전에 '죄와 벌'은 읽었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꼭 읽어보려고 하던 차에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이 그렇지만, 인간 내면의 세밀한 묘사는 그 어떤 심리학 저서보다 탁월한 듯하다. 

문학이 가진 힘이라고 할까? 

인간 내면과 인물과 인물들 간의 갈등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다. 

마치 내가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반문하게 된다.


카라마조프가의 세 형제는 매우 다른 각각의 캐릭터다.

어떻게 보면 여러 인간의 전형을 나타내는 듯하기도 하다.


이 셋 중에 닮고 싶은 인물을 고르라면 아마 대부분은 막내 알료사를 꼽을 것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가장 조화로운 캐릭터다. 그의 신앙심과 인격은 자연스럽게 그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표현된다.  분명한 목표와 진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살필 줄 아는 따뜻한 인물로 그려진다.


둘째 이반은 자신의 이상향과 실제가 가장 많이 차이를 보이는 인물이다. 

냉정한 지식인으로 탁월하고 진취적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2』에서의 '대심문관' 부분은 이반이 자신의 동생 알료사에게 들려주는 서사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인용하는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일 것 같다. 심지어 이 부분만 따로 책으로 출판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이반은 현실에서는 자신을 철저히 걸어 잠근다. 적극적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이 막아서야 할 시점에서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반면 맏형 드미트리는 어떠한가? 그는 행동파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과격하고 파괴적이다. 열정적이며 어떤 면에서 매우 순수한 인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반과 적극적 대조를 볼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책도 그저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끔찍한 위기를 묘사하지만 그 가운데 구원을 내포한다. 그리하여 부정 가운데 긍정을 도출한다. 특별한 해답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글을 곱씹고 다시 들춰보면 그 안에 은은하게 남아 있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질문 가운데 터져 나오는 살아 숨 쉬는 생동력이란! 알료사의 마지막 외침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 아이들이여, 아, 사랑스러운 벗들이여, 삶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무엇이든 옳은 일을 한다면, 삶은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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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핑 도스토옙스키 - 대문호의 공간을 다시 여행하다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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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도스토옙스키를 만나면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어디까지가 그의 삶과 잇대어져 있을까?

소설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실존했던 인물이 있었을까?

전체적 이야기는 어디에서 착안했을까? 등


『매핑 도스토옙스키』는 매우 독특한 책이다.

도스토옙스키의 평전이나 전기라고 분류해도 되지만,

일반적인 평전이나 전기와는 다르다. 


노어노문학과 교수이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다수를 번역했고,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강의를 해왔던 석영중 교수는,

그 삶의 궤적을 따라 여행을 떠난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곳곳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와 유럽까지.

도스토옙스키의 삶의 흔적을 따라간다. 


이 책의 장점은

그 삶의 명과 암을 모두 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크게 유익했던 것은

그 삶의 그림자들이 어떻게 소설로 다시 태어나고,

소설의 도구로 사용되었는지다.


도스토옙스키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것은 대부분 그의 의사와 무관했다. 시베리아 유형과 도박 중독과 천식을 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숙명적인 이동은 예외 없이 그의 작품 속 서사의 일부로 굳어졌다. 시베리아는 『죽음의 집의 기록』과 『죄와 벌』에, 모스크바는 『백치』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가난한 사람들』에서 『미성년』에 이르는 수많은 소설에, 유럽은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백치』와 『악령』에, 트베리는 『악령』에, 스타라야 루사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실제의 공간과 지명은 그의 문학 속으로 들어와 때로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때로는 저자의 의도를 전달해 주는 비유이자 상징이 되었다. 지도 위의 랜드마크는 시간 속의 사건으로 전이되었다. 특정 공간을 따라가는 저자의 이동 궤적은 소설 속에서 사상의 움직임으로 복제되면서 놀라운 역동성의 문학을 창출했다(6).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옆에 두고 함께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그의 삶과 사상의 전환과 발전 등을 볼 수 있으며,

더불어 그의 작품에 대한 풍부한 해석은 선물과 같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기억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선을 상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본질로의 회귀이며, 현재를 있게 해 준 근원에 대한 인정이며, 앞으로의 삶을 희구하게 해주는 동력이다.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다른 차원의 항구함으로 고착시켜 주는 힘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현세에서의 삶, 유한하고 비극적인 삶을 <불멸>로 전환시켜 준다. 기억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각기 다른 시간들이 연결되고, 슬픔도 기쁨도 인생이란 이름의 거대한 물줄기로 합쳐진다(420-21).



연민은 그의 윤리적 어젠다 맨 앞줄을 차지한다. <연민은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인간 실존의 법칙이다> 혹은 <연민-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전부다>라고 말할 때 그가 의미하는 것은 값싼 동정이나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니다. 러시아어로 <연민sostradanie>은 <함께so>와 <고통stradanie>을 합성한 단어다. 영어의 <연민cpmpassion>도 같은 원리다. 요컨대 타인의 고통을 불쌍히 여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함께 고통당하는 것이 곧 연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물질의 분배가 아닌 고통의 분담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 P39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멈춘 적이 없지만 또 그렇다고해서 부자라고 무조건 비난하지도 않았다. 탐욕과 인색을 혐오했지만 돈 자체를 악으로 치부하지도 않았다.
도스토옙스키가 돈과 관련해 일관되게 우려했던 것은 병적인 집착에서 촉발되는 맹목적인 <축적>이었다. - P43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을 정립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그는 집중해서 강도 높게 인간을 관찰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가차 없는 분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관찰은 <3인칭의 인간>이 아닌 <나>를 포함하는 <1인칭 우리 인간>에 관한 철학으로 굳혀졌다. 그만큼 더 설득력이 있고 개연성이 있다.
그가 유형지에서 발견하고 탐구했고 이후 소설에서 끝없이 발전시키게 될 인간 본성의 출발점은 <자유>다. 자유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인 동시에 심리적이고 종교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로 들어오면서 그것은 한 개인으로 하여금 현실 속에서 도덕적인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일종의 <인격 수양> 비슷한 어떤 것이 된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그 소설을 <교육적>이라고 했다. - P113

도스토옙스키는 최고의 가치로서의 자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지향을 둔 삶을 강조한다. 자유를 지향하는 삶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삶,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삶이다. 그의 소설들이 보여 주는 것은 자유를 획득한 인간(어차피 그것은 불가능하다)이 아니라 자유라는 궁극의 종착점을 향해 온갖 고난과 좌절을 무릅쓰고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중단 없는 자유에의 지향, 자유라는 목적에 대한 갈망이다. - P117

<사람은 누구나, 설령 치욕 속에 놓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본능적으로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의 인간적 가치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다. 인간적인 대접은 이미 오래전에 신의 형상을 상실한 사람들조차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 - P133

도스토옙스키의 활력은 육체의 질병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삶에 대한 사랑이 그를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다. 그는 살아 있음, 그 자체를 사랑했다. - P167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매 순간 <소식>을 만들어 내는 신문의 역동성은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과 화학적으로 결합했다. 덕분에 무상한 현실은 불변의 문학으로 응축되었다. 시사적인 모든 것은 초시간적인 것이 되었다. 저널리즘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유명한 예술론도 없었을 것이다. <예술은 항상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이다.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존재해 본 적도 없고 존재할 수조차 없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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