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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적 교회 - 탈육신 시대에 교회의 역사성과 공공성 회복하기
마이클 프로스트 지음, 최형근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10월
평점 :
마이클 프로스트(Michael Frost)는 시드니 북쪽의 맨리에 "Small Boat Big Sea"라는 선교적 기독교 공동체를 설립하여 목회하고 있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작은 예수들』(포이에마, 2009),『새로운 교회가 온다』(Ivp, 2009),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SFC, 2015) 등을 통하여 선교적 공동체의 필요성과 구체적 대안 등을 역설한 바 있다. 그의 글은 쉽고도 힘이 있다. 이는 그가 믿고 있는 바를 살아내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생명력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는 1장에서 4장에 걸쳐 현시대를 분석한다. 탈육신이라고 명명한 현시대는 어떤 하나의 세계관에 대한 헌신이나 충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는 사회로부터의 이탈과 타자를 대상화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대상화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게 거리를 만들어 우리와 그들의 생각을 분리한다. 이러한 대상화는 사람들을 비인격화하여 항상 무시하고 경시하며, 희생시키고 괴롭히는 것으로 귀결된다. 또한 불안정함과 가벼운 행위들, 스크린 문화와 가상 현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탈육신적 현상의 주요원인은 이원론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지배하는 몸 대 영혼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몸과 몸의 형태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이원론적인 토대로 인해서 우리의 몸과 정신/영혼 간의 단절이 일어난다. 이러한 단절은 도덕성의 영역에서 극대화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몸은 해방되어야 할 감옥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에서 인격이다(93)."
저자는 탈육신적인 시대의 풍토에 적절한 응답을 제시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후반부는 그러한 응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는 철저히 구체화된 종교라고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셨다. 내적 확신이나 느낌은 행동으로 드러날 때 가치가 있다. 또한 성육신은 예수를 따르는 것을 포함하며, 이는 지속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받는 것으로 확장된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가능한 빨리 세상에 오셨다가 인간을 고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과 우리 사이의 우정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143)."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몸으로 부딪히고, 함께 삶을 공유하셨다.
진정한 제자도란 무엇인가? 이는 우리의 지적 향상이 아니라, 핵심 욕구의 변화이다. 우리의 출발점은 세계관이라기보다는 욕구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K. A. 스미스(James K. A. Smith)의 Desiring the Kingdom을 적절하게 인용하며 요약한다. 결국 우리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본질적인 요소는 사랑이며, 우리는 사랑에 따라서 행동한다. 사랑으로 행동할 때 경험하게 되는 것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과 신앙은 '교회'라는 한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통합된 접근은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예배하면서 다른 모든 영역을 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낸시 머피(Nancy Murphy)의 "영적인 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풍성하고 역동적인 연합으로의 초대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선교는 어떠한가? 탈육신적 충동은 우리의 선교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에서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행동주의를 보이는가하면, 교회와 세상은 점점 이원화되고, 복음전도는 점점 더 내면화되고 개인화된다. 우리의 선교가 복음을 진정으로 믿고 주변 이웃들의 삶에 깊숙히 개입해서 복음을 실천하는 겸손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근거해야 한다는 기독교 이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205).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적 의무에 대해 복음의 조명을 구해야한다.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가 어떻게 드러나야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철저히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함께 삶을 공유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사회 문제들에 정면으로 대응해야한다. 우리는 평화를 중재하며 이웃을 섬겨야한다(265)."
점점 개인화되고, 분리되며, 탈육신화되어 가는 이 시대 가운데 교회는 분명한 대답을 제시해야한다. 그것은 정답의 형태가 아니다.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며, 그 여정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서의 삶이다. 여행객으로서 추상적이고 분리되어있는 모습이 아니라, 순례자와 나그네로서 참여하고 집중하며 경청하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것과 같이,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의 삶 전체를 드려야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과 세계를 다스리신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