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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셨네 - 폴 트립 부활 복음 묵상
폴 트립 지음, 전의우 옮김 / 아바서원 / 2026년 2월
평점 :

부활절이 되면 교회는 분주합니다. 고난이 미처 끝나지 않은 가장 어두운 시간 다급하게 부활을 준비합니다. 해마다 그 분주함 한가운데서 묘한 공허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부활을 축하하는 일과 부활을 살아가는 일 사이에 어느 틈이 느꺄지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분명 가장 중요한 사건인데도, 절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어제의 불안과 피로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이 책은 트립의 365일 묵상집 《매일 복음》에서 부활을 주제로 엮은 30일 묵상집입니다. 책은 얇고 손에 가볍게 잡히지만, 책 안에 담겨진 내용은 가볍지 않습니다. 저자는 부활이 2000년 전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머문다면, 오늘 우리의 분노와 두려움, 깨어진 관계와 지친 일상 앞에서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을 다시 살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이지요.
저자의 시선으로 부활을 읽으면, 그 부활은 복음서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는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장면, 유월절 어린양의 피, 이사야가 전한 고난받는 종의 모습까지. 오랜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모두 부활의 빛 아래 놓여 있음을 말합니다. 구약은 부활을 향해 쌓여 온 약속의 언어였음을 강조합니다.
책의 구성은 간명합니다. 매일 짧은 성경 본문이 있고, 그 뒤에 묵상과 반성 질문, 기도가 이어집니다. 이러한 구조 가운데 저자는 먼저 인간의 곤경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지,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마주하게 한 뒤에야 복음을 말합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아야지만 복음이 삶을 새롭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특히 힘 있게 다루는 부분은 죄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실패할 때 자신을 향한 이해가 흔들립니다. 결국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자기 정죄가 깊이 파고들지요. 이 책은 부활이 바로 그 정죄를 어떻게 허무는지를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는 선언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의로움을 스스로 입증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점은 부활과 일상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저자는 분노, 두려움, 관계의 갈등, 중독 같은 아주 구체적인 삶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일상에까지 닿아야 합니다. 반복되는 실패 앞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관계 앞에서도 부활은 생명력 있어야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유효해야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아마도 오랫동안 붙들어 저자의 일상의 신학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의 큰 힘은 복음을 '지금 이곳'의 언어로 읽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감동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복음의 언어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래된 진실은 때로 너무 익숙해서 힘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 사셨네》는 그 오래된 진실을 다시 오늘의 언어로 들려줍니다. 축하로 지나가 버린 부활을 다시 삶의 자리로 데려오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