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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일 - 생각을 편집하고 삶을 디자인하다 ㅣ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93
김담유 지음 / 스리체어스 / 2023년 6월
평점 :

책을 펼치자마자 언어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에디터를 언어에 탐닉하는 사람이라 정의하는 문장은 그 자체로 고백처럼 다가왔습니다. 언어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삶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에디터는 단순히 원고를 고치는 직업인이 아닙니다. 발견하고, 연결하고, 대변하는 존재로서의 에디터는 더 입체적인 얼굴을 가집니다. 언어와 사람을 잇는 이 다리의 역할에 묘한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책 속 네 가지 주제인 욕망, 감별, 연결, 노동은 삶의 무게와도 닮아 있습니다.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고, 감별은 길을 밝히며, 연결은 함께 걷게 하고, 노동은 길 끝까지 지탱하게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에디터의 일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습니다.
“무대를 만들고 관객을 불러들이는 사람도 주목받는다”는 말은 오래 여운을 남겼습니다. 배우만이 아니라 장을 여는 이의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 우리의 시대를 설명합니다. 가까운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능력이 곧 오늘의 감각임을 깨닫습니다.
책은 결국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왜 우리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까. 저자의 대답처럼 그것은 인간만의 일이자 가장 인간다운 일이기 때문이라는 말은 마음 깊은 곳에 내려앉습니다.
책이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글이 원고가 되고, 원고가 책이 되며, 독자를 만나 완성되는 여정은 삶의 순환과도 닮아 있습니다. 결국 책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는 자리입니다.
때때로 이 일은 외롭고 고단합니다. 그러나 원고를 붙잡는 순간 다시 중심을 찾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텍스트는 에디터를 지탱하는 뿌리이자 다시 나아가게 하는 숨결입니다.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얻는 지혜 또한 깊습니다.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작은 장점을 찾아내며, 가능하면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삶의 태도로 다가옵니다. 관계를 가꾸는 일이야말로 결국 책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원고에 대한 개입의 정도는 독자와 저자 사이의 거리에 따라 달라집니다. 학술서는 저자의 고유한 목소리를 존중해야 하고, 교양서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어야 합니다. 에디터는 그 사이에서 길을 내는 안내자가 됩니다.
책을 덮고 나서 저는 ‘일의 주권’이라는 말을 오래 곱씹었습니다. 삶이 흔들리고 주저앉을 때에도,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는 고백이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얇지만 단단한 이 책은 책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오래 머무는 울림을 전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