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 인생의 바닥에서 하늘을 만난 사람들
구미정 지음 / 비아토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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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자리에서는 멀리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보려면, 더 낮아져야 합니다.

땅에 닿은 눈높이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는 세상의 지도는 대개 높은 자리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넓게 조망하지만, 그 안의 숨소리와 눈빛은 잘 담기지 않습니다. 낮은 자리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있습니다. 발밑의 흙, 맞닿은 시선, 서로의 숨결이 스며 있는 자리입니다.

구미정 저자는 이번 책에서 그 낮은 자리를 걸어갑니다. 여성신학자로서의 깊은 통찰, 인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주변부를 향한 애정이 글마다 묻어납니다. 이전 저서들처럼, 그는 멀리서 설명하는 대신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낮은 자리의 시선은 불편함을 줍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우리를 깨웁니다. “우리는 왜 그들을 보지 못했는가?” “그들의 자리에 서면 무엇이 보이는가?” 질문은 단호하지만, 사람을 향한 태도는 부드럽습니다. 비판과 환대가 한 문장 안에 공존합니다.

이 책은 신학이자 인문학입니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함께 걷는 저자의 경험이 성경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빚어냅니다. 『교회 옆 미술관』에서 성화를 통해 성경 인물을 새롭게 보았듯, 이번에는 낮은 자리에서 삶과 신앙을 다시 봅니다. 높이 나는 조망 대신, 발을 붙이고 천천히 걸으며, 사람과 사건을 세밀히 바라보게 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나의 자리를 묻게 됩니다. 혹시 너무 높은 곳에서만 판단하고 있지 않은지, 너무 멀리 서서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낮은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은 우리에게 이해와 환대, 그리고 함께 살아갈 용기를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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