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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영성 -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선교적 영성
데이비드 보쉬 지음, 김동화.이길표 옮김 / 한국해외선교회출판부 / 2023년 3월
평점 :
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원합니다. 명확한 해답이 있었으면 합니다. 수학에서 연산을 하듯 어떤 공식을 대입하면 문제가 풀리기를 바랍니다. 특정한 과정을 밟아나가면 원하는 단계로 도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필수적인 단계들이 있다는 환상을 품곤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정답은 없습니다. 삶은 모호하고 목표는 다양하며, 그까지 가는 방법도 천양지차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라고 주장하는 많은 의견들은 저마다의 세계관에서 작동합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삶의 모양도 매우 다릅니다.
『변화하는 선교』의 저자 데이비드 보쉬(David Jacobus Bosch)는 이 책 『길의 영성』을 통해 보다 실제적인 선교적 삶을 제시합니다. 급변하는 세상, 맘몬을 섬기는 이 땅에 선교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그러한 삶의 구체적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보쉬는 '영성'이라는 모호한 단어가 주는 불편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합니다. 마치 명상이나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영성,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일상의 순간이나 기도하는 시간에도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의 신앙과 선교는 마치 일상과 영성이 나누어져 있는 듯 보이게 했습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돌보는 그 순간이야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돌보는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성은 우리의 전인격에 서서히 스며들어갑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교회와 세상을 생각할 때도 큰 도움이 됩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지만,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로 보냄을 받았다는 명제는 언제나 중요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손쉽게 이 둘을 분리하여 생각하곤 하지요. 그렇기에 저자는 차라리 균형보다는 긴장이 더욱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제3의 길은 십자가의 모델입니다. 세상과 완전하게 동일시되면서도, 세상과 근본적으로 분리됨을 상징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세상에 속하셨으면서도, 십자가 위에서 분명하게 세상과 맞섰다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를 함께 품고 살아가는 것이 영성입니다.
저자는 고린도후서를 중심으로 선교사의 필수적인 자질, 영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상황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힘겹고 어렵지만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운명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줄곧 뭔가 커다란 일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초인적이거나 기적만을 바라지 않죠. 오히려 기독교 영성은 일상 속에서 가능함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그렇기에 선교사들에게 있어서도 낭만적인 업적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대적들은 현란한 무기로 자신을 뽐냅니다. 그것은 매우 강력하게 보이고,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무기는 인내와 사랑, 진리와 약함, 섬김과 겸손입니다. 우리는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복음적이어야만 합니다.
저자는 선교지에서의 실제적인 어려움과 선교사들이 빠지기 쉬운 실수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탁월한 이론과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솔직한 고백은 자칫 의로워 보이는 표면적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자기 탐욕과 교만, 가식 등을 보게 만들어줍니다.
비록 정답은 없지만, 우리는 우리를 앞서 자신을 내어던지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분은 확신이 있으셨지만 겸손하셨습니다. 우리의 확신 있게 진리를 전하지만, 관대하고도 세심해야만 합니다. 고난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기쁨으로 이 길을 걸어갑니다. 매 순간 그분의 뜻을 구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