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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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혐오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시류를 쫓아 자신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자신을 맡긴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높은 장벽을 쌓습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도태시키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고정된 힘이 존재하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힘을 더욱 공고하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부와 높은 지위처럼 명확하게 보이는 권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앎'처럼 보이지 않는 힘도 있습니다. 어떤 영역에 타인보다 더 많은 지식이 있다면 그것 또한 사회적인 지위가 됩니다.


영국의 범죄 소설 작가 루스 렌들(Ruth Rendell)은 『활자 잔혹극』을 통해 보이지 않는 장벽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사회에 공공연하게 스며들어 있는 차별과 편견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우리도 모르게 형성된 매우 크고 단단한 벽과 같습니다.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작가의 첫 문장은 강렬합니다.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에 갔을 때의 답답함과 막막함을 떠올린다면 말입니다.


문맹은 단순하게 읽고 쓰는 행위를 못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어가 없음으로 인하여 생기는 장벽입니다. 나의 언어가 없으면 나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나의 감정을 명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사회생활이 힘겨울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문맹만이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의 사람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앎'을 겸손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인격적이고 교만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신성한 활자가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타인을 향한 폭력과 무자비함의 도구가 될 뿐입니다.


이야기는 다양한 인물들의 결핍을 드러냅니다. 그러한 연약함은 특정한 부분에서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가로막는 장벽이 됩니다. 또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흐려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재클린 커버데일의 경우는 특히나 그러하죠.


때로는 당연하다고 여기지는 행위가 상대에게 크나큰 수치심과 모욕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오페라를 보고 듣는 것이 범법행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음악과 외국어로 진행되는 오페라는 가정주부 유니스에게는 그 가족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높은 장벽이 되는 것이죠.


활자 중독자라 할 수 있는 자일즈 몬트는 활자를 읽을 수 없는 유니스와는 묘하게 대립됩니다. 물론 자일즈는 대인 관계는 거의 하지 독특한 인물이긴 합니다. 자신의 벽에 유명인의 문구를 적어 놓거나 기인들의 책을 읽는 식입니다. 자신의 이복동생과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을 하기도 하죠.


여러 등장인물들의 스토리를 읽다 보면 어느새 유니스가 커버데일 일가를 죽일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한 사건이나 사람을 우리는 조금 더 여유 있게 입체적으로 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작가는 활자를 읽고 쓰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너'의 감정을 알고 읽는 것이라 말하는 듯합니다. 진정한 소통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교묘한 장벽을 쌓고는 있지 않은지, 우리도 모르게 혐오를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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