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
김미옥 지음 / 파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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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수 없을 때 읽습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무너질수록.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상황이 될수록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글을 만나면 읽을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을 수 있습니다. 문장이 문장을 부릅니다. 어느 순간, 처한 상황보다도 더 큰 무언가를 느끼게 됩니다.


쓸 수 없을 때 씁니다. 도무지 글이 진도가 안 나갈 때, 무력할 때 씁니다. 신비하게도 글쓰기는 슬픔과 불안의 명확한 이유를 명명해 줍니다. 흐릿하여 호명하기 어려울 때는 닥친 상황에 잠식됩니다. 하지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머리는 냉정해지고, 가슴은 뜨거워집니다.


읽고 쓰는 사람인 김미옥은 탁월하고도 꾸준한 서평으로,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그동안의 열정이 이 책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날카롭고도 따뜻한 저자의 서평은 책 자체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배경지식은 한 차원 높은 독서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그 책의 저자와 그 책이 가진 맥락을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입체적인 책 읽기가 가능합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책 읽기를 통한 깊이와 넓이는 한 책을 통해 저자의 의도를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김미옥은 독서가 위태로운 청춘을 무사히 건네게 해주었고, 글쓰기가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고 고백합니다. 글은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으며, 동시에 살 수 있게 해준 도구였습니다. 글을 통해 저자는 회복과 치유를 경험했고, 힘겨울수록 더욱 쓰기에 힘썼습니다.


보통 독서를 많이 하게 되면 허영이나 교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특정한 출판사를 기피하거나, 편집이나 내용, 번역에 대해 말을 보태기도 합니다. 저자 또한 젊은 날의 치기를 정직하게 말합니다. 문체와 가독성에 치중하여 작가를 읽어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견디고 이겨낸 저자의 모습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마음 다해 책을 읽고, 사랑 담아 서평을 적는 것이지요. 부족한 모습이 보일지라도 그 책을 쓴 저자의 마음에 잇닿으려고 노력합니다. 사람 자체를 읽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그러하겠지만 깊은 독서의 세계에 들어갈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무지와 무감각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더 넓은 책의 세상으로 초대됩니다. 모르기에, 느끼지 못하기에, 아파하지 않았기에 더 읽습니다.


읽을수록 쓰고 싶습니다. 쓰면 구체화되고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쓰는 것만큼 나의 몫이 됩니다.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저자와 그 배경에 대해 더 살피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할 때, 조금 더 저자의 마음과 의도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김미옥의 책 읽기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의 세계에 잠기는 독서입니다. 그녀의 서평은 작가의 관점과 세계에서 미처 독자들이 읽지 못했던 부분을 포착하는 쓰기입니다. 이러한 독서와 글쓰기는 예리하고도 넉넉하며, 진정으로 책과 작가를 사랑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누구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 담고, 세상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예상하지 못한 힘겨움 가운데서도 일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다시금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보다 더 넉넉해진 품을 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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