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창세기
김종호 지음 / 그돌스튜디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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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내음에 모든 근심이 일순간 사라집니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약간 귀찮기도 하고, 해야 할 일도 많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계속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로 인해 어깨와 머리가 뻐근해지니, 잠시 멈추어가라는 신호인 것만 같아 숲으로 달려왔습니다.


특별한 것을 준비하지는 않았어요. 분명 무엇인가 유익과 즐거움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신선한 공기는 마음의 무거운 짐을 잊게 만들어주네요. 그저 누리고 싶었습니다. 이 순간을요. 다른 힘겨움들을 내려놓고 지금 이곳의 풍성함을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어요.


깊은 숲까지 오기 위해서는 탁월한 안내자가 필요했어요. 혼자 오기엔 두렵기도 하고, 무엇보다 숲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거든요. 창세기의 숲을 누구보다도 잘 안내해 줄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종호 교수님은 구약학과 히브리어를 가르치시며, 누구보다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분이셨어요.


김종호 교수님은 『삶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창세기』를 통해 창세기의 숲으로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창세기의 전체 이야기를 크게 조망하면서도, 세세하게 붙들어야 하는 핵심적 사실들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정해진 답을 강요하기보다 함께 무엇인가를 찾아보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저자의 관점은 인간을 향한 사랑을 듬뿍 담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자료의 나열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공감이 담겨 있습니다. 힘겨운 인생에 함께 고통스러워하며, 그러한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진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저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수사로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어요. 때로는 건조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항을 건너뛰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숲에서 중요한 히브리어 어휘는 하나하나 짚어서 설명해 줍니다. 떨어지는 나뭇잎 같아 보였지만, 그것은 이후의 이야기를 위한 복선과 같은 필수적 장치였지요.


툭툭 내 뱉는 말과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고대 근동에서 모든 인간이 왕 같은 존재로 평등하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낸다고 말해줍니다.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요. 담담한 언어에서도 사랑이 담길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언어는 이 책에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통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돕는 자'라는 단어도 결코 가부장적인 용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거울에 비추어진 자기 모습', '동등한 협력자'라는 의미를 지니면서,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동등한 존엄성과 인격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이 있다 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는 어떤 결론을 위해 과정을 생략하거나 몰아가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마음을 꾹꾹 담아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창세기의 숲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납니다.


저자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를 그저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로만 남겨두지 않습니다. 그들의 약함도 고스란히 기록합니다. 가령 17세임에도 '소년'이라고 기록한 요셉의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성경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천상의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연약함과 악함을 간직한 존재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의 삶이 우리네 삶임을 보게 됩니다. 삶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고통이 우리만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의 이야기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서막과 같으면서도, 우리의 인생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홀로 고군분투하는 삶인 것 같지만, 그 뒤에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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