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영혼의 치료제
애덤 S. 맥휴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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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뒤흔드는 기막힌 일 앞에 한숨과 눈물만 늘어납니다. 마음을 다잡고 일상을 살아보려 노력하지만, 또 다른 말 앞에 번번이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붙들고 있으면 무너지는 것은 우리이기에 놓아주려 애써봅니다. 마음이 쪼그라들어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조금만 더 천천히 가보려 합니다.


이런 작은 신음도 들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너무도 힘겨워 하나님 앞에서도 머뭇머뭇거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뒤바뀌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과 고통을 잘 알고 계시며, '위로'를 선물하십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7)"


그렇습니다. '위로'는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듣고 계셨습니다. 울부짖음, 몸부림, 한숨까지도 들으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경청하신 하나님이며, 구속의 드라마는 '들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출 2:24)"


애덤 S. 맥휴 (Adam S. Mchugh)는 『경청, 영혼의 치료제』(도서출판 CUP)에서 경청에 대한 다양하고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성경의 말씀이 중심이 되면서도, 상담의 경험들이 풍부하게 담겨있습니다. '들어줌'의 행위가 어떻게 '환대'와 '위로'가 되는지를 꼼꼼하게 살핍니다.


'경청'은 능동적 행위입니다. '들음'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마음을 내어주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집중된 상태, 나의 에너지를 쏟는 순간이 됩니다. '경청'은 '나'를 열어 '너'에게 향하는 시간이며, 공간입니다. 그 순간 '너'의 고통은 '나'의 아픔이 되며, '너'의 슬픔은 '나'의 눈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경청하시는 분입니다. 저자는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우리를 듣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들으심으로 인해 구속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말에는 행하셨다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들으심은 곧 행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되 하염없이 들으십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 가운데 가장 적절한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소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듣지 않으려 합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은 온갖 소음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 나의 필요 이전에 아버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하소서, 듣겠나이다"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를 겸허하게 합니다. 우리를 순종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열어둡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성경 읽기를 통한 기도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이미 성경에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이나 복음서를 통해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풍덩 빠질 수 있습니다.


또한 온 만물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묻어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피조 세계에 가득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듣고 본다면 일상 곳곳에서 하나님을 들을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세요. 우리가 듣는 음악, 서로의 대화, 바람 소리와 찬란한 태양 말이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이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드디어 '너'에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들으면서도 훈수를 더하고 싶은 충동에 빠집니다. 아니면 내가 더 큰 고통 가운데 있다며 한 수 더 뜨는 방식으로 듣기도 합니다. 교묘하게 말을 돌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마음 다한 경청은 '너'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너의 기준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매우 더디지만 상대의 진심을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의 의도를 파악해 보세요. 지금 그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부분이 제일 시급한지, 힘겨운지를 들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말하기를 즐겨 합니다. 말해야만 하는 시간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습니다. 그 말에 영향력이 있으려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어야 합니다. '너'가 사라진 말들은 허황됩니다. '너'의 상황과 마음이 없는 언어는 공허합니다. 조금 더 들어야겠습니다. 진심을 다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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