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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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행복이란, 우리의 일상에 비밀스레 숨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적극적으로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거든요. 갑작스레 짠하고 나타나는 경우도 드문 것 같아요. 주변에 꼭꼭 숨어 있어 쉽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네요. 그래서 신중하게 찾아보고 있어요.


참으로 신기한 것은 행복이란 것이 상황과는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물론 비극적인 순간에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겠지요.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순간에 행복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힘든 와중에도 행복을 느낄 수가 있거든요.


절망의 순간 함께해 준 위로와 응원이 그 어떤 상황에서보다도 더욱 벅차게 느껴졌어요. 물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실타래이긴 하지만, 분명 그 어디쯤에서인가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비합리적인 강요와 압박, 교묘한 술수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참 큰 힘이 되더라고요.


백수린 작가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은 누구나 느끼는 행복한 환경을 말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이는 행복함, 쉽게 휘발되는 만족을 말하지 않아요. 힘겹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 안에서 경험하는 끈끈하고 농도가 매우 짙은 행복을 저자의 글에서 발견하게 돼요.


작가는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추억해요. 그곳은 서울이지만 세련된 건물이 없는 곳이에요. 좁은 골목과 비탈, 낡은 집으로 이루어진 동네예요. 주민들은 이곳의 속도와 리듬을 즐겨요. 작가도 이러한 질서를 존중해요.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봐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노을의 아름다움을요.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에서는 부와 가난도 뒤바뀌어요. 타인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의 손익을 계산하며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보다도 더 많이 가진 사람인 것이죠. 에어컨이 없어도 함께 웃고 떠들며 마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인 거예요.


인근에 사는 친한 언니와의 식사 자리에서 했던 말이 떠올라요. "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 말이야."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목적지를 향해 가지만, 어쩌면 우리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여행자인 것 같아요.


행복을 발견하는 삶은 마냥 기쁨 가운데 있지는 않아요. 슬픔을 안고 살아가죠. 그럼에도 작가는 마주하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아요. 능동적이고 주체적이지만, 그러한 삶의 의미가 선물이라는 것도 잘 알아요. 내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고 싸웠던 것들이었어요.


맞아요. 우리네 삶은 여전히 골치 아파요. 분투하는 삶이지요. 뭔가 딱딱 맞아들어가지를 않아요. 한쪽이 맞춰지면 다른 쪽은 무너져요. 그럼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곳곳에 여전히 사랑이 움트고 있어요. 아직은 살만해요.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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