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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마지막, 특별한 열흘
배성혜 지음 / 좋은땅 / 2024년 3월
평점 :
이야기는 우리를 상상하게 합니다.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의 짐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잠시이지만 이야기가 들려지는 순간에 염려와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풍성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듬성듬성 드러났던 빈 공간이 이야기로 가득 채워집니다.
더하여 좋은 이야기는 우리를 그 이야기 안으로 동참하게 만듭니다.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웃고 웁니다. 조용히 그들 곁에 있습니다. 그들과 눈 마주치고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함께 햇살을 맞고, 포옹하며, 감격을 나눕니다.
성경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장르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의 상황에 맞게 그 순간 가장 필요한 내용을 여러 장르를 통해 전달합니다. 전기나 편지, 역사적인 서술 등을 통해 우리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재구성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시대와 문화, 언어의 차이는 당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되지 못하게 하는 장벽입니다. 하지만 배성혜 작가는 이 책 『사도바울의 마지막, 특별한 열흘』에서 성경(text)과 배경(context)을 섬세하게 분석하여, 현재의 독자까지의 공백을 충실하게 메꾸어줍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인해 성경은 새로운 옷을 입고 우리에게 들려집니다. 사도들의 행적은 보다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딱딱했던 문자 속 성경 인물들은 생기를 얻어 실존하는 인물과 같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곳곳의 유쾌한 장면들의 배치로 인해, 죽음을 앞둔 사도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더욱 생동감이 넘칩니다.
더불어 우리의 언어와 문화가 곳곳에 등장하니 그 현장감이 더욱 살아납니다. 가령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15)"는 속담이나, 다섯 사도가 흥분하여 "강강술래(73)"를 한다는 대목과 '부름받아 나선 이 몸, 나의 죄를 정케하사'를 부르는 사도들(253, 390)을 보며 동일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한국 저자가 가진 힘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각자의 경험을 풀어냅니다. 누가가 들려주는 데오빌로 이야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와 공명을 이루며, 풍성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도 어느새 데오빌로는 사도들의 든든한 지지자로 새겨집니다.
베드로와 마가를 통해 듣는 성령 세례 이야기로 우리는 그때 당시 마가의 다락방으로 초대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이 강하게 쏟아부어지는 경험입니다. 그때 당시의 분주함, 설렘과 기대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성령 세례가 임하던 그때의 흥분과 혼란, 감사와 찬양의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마주하는 누가의 기록은 이렇듯 여러 사도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때로는 성경에서 미처 파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과 복잡한 배경 등이 묘사됩니다. 바울이 눈물과 자책 가운데 들려주는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와 헤롯과 야고보에 대한 이야기 등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관찰자의 시선에서 사도행전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사도행전을 대하게 됩니다. 사도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자신이 경험하거나 들었던 사건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보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연출됩니다. 우리는 보다 선명하게 그들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사도들의 이야기는 그리움에 잠기게 하기도 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게도 합니다. 슬픔과 기쁨, 두려움과 평안이 공존하는 그 공간에서의 열흘. 이후 순교의 현장들. 작가의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며, 그 이야기가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