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타사르의 지옥 이야기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김관희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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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불편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영원토록 벌받게 하실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모든 만물과 인간을 위해 이 땅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내어드림으로 모두를 살리십니다.



그럼에도 그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경에서는 구원의 부분에 있어 모순되게 보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지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구원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해석하고자 했던 가톨릭 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그는 '신학적 미학'이라는 신학 체계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보다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표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풍성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은 신비입니다. 발타사르는 이 책 『발타사르의 지옥 이야기』에서도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강조합니다. 구원과 종말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그 사랑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발타사르는 지옥이 없다거나 지옥이 비어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심판관이 되실 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좌절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이 심판관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이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덮어주시는 무한한 사랑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어떤 법도 그 사랑 앞에 힘을 잃게 됩니다.



저자는 성경에서 경고와 희망을 동시에 말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그 어떠한 것도 가벼이 여길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구원받을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위협성 텍스트가 많이 있습니다. 구원과 종말의 문제에 있어 우리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은 언제나 정당화될 수 있음을 저자는 상기시켜줍니다.



지옥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지옥에 대한 묵상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할 때 정당화됩니다. 지옥이 가상의 그 무엇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가능태라면, 우리는 최대한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철저하게 자신을 향해 있어야 해야 함에도, 지옥을 이야기할 때 자신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역사적 인물들이나 자신이 혐오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차 없이 지옥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 중에 나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고백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런 점에서 지옥은 '나'와 '너'에 대한 명확한 선 긋기를 넘어서야 비로소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는 주제입니다.



발타사르는 바울과 모세의 기도를 예시로 들어 자신이 저주를 받더라도 다른 형제가 구원받기를 갈망한 믿음의 선진들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자유는 '나'를 뛰어넘어 '너'를 품에 안고 '우리'가 함께 구원받고자 열망하는 믿음임을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기대하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 가운데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말입니다. 그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요청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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