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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개 ㅣ 파랑새 그림책 17
나자 글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1998년 12월
평점 :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나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과의 교제는 새로운 힘을 더하여줍니다. 이름 없는 사람으로 스쳐 지나갈 수 있었지만, 특별한 계기는 '나와 너'의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줍니다.
짧은 인사지만 마음을 다하면 그것이 우리만은 사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작은 배려의 몸짓과 한 마디가 한 사람을 살리는 크나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거창한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외적인 조건보다도 중심과 존재를 보고자 하는 마음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힘겹고 각박한 세상에서 휩쓸리다 보면, 우리 또한 거칠어지기 일쑤입니다. 내면보다는 외형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사람을 재단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으로 대하기보다 여러 명 중에 하나 정도로 가벼이 여길 때가 있습니다.
『푸른 개』의 저자인 나자(Nadja)는 짧은 동화를 통해 묵직한 울림과 통찰을 던져줍니다.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사람의 마음속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가장 귀하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상대방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바람인데 말입니다.
주인공인 샤를로뜨는 커다란 개가 자기에게 왔을 때 작은 환대를 베풀어줍니다. 진심 어린 눈빛으로 불쌍히 여깁니다. 개를 쓰다듬고 초코빵을 나누어 먹습니다. 샤를로뜨는 푸른 개에게 아무것도 기대한 바가 없습니다. 그저 불쌍히 여기며,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줍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만남이 주는 유익을 생각합니다.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 우리에게 유의미한지를 묻습니다. 이 책에서 엄마가 그러합니다. 푸른 개는 더럽고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가 진정 원했던 것은 편안하고 즐거운 관계입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부정한다면 진정한 관계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최소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책임지는 자세라도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안위를 위한 말이나 행동이라고 가정한다면 이후에 그에 합당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샤를로뜨에게 있어 엄마는 함께 있어 주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산딸기를 따기 위해 숲속에 혼자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아이의 슬픔 때문에 교외에 나왔는데, 정작 아이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중성입니다. 말이나 생각은 때로 참으로 교묘하고 허무합니다.
샤를로뜨를 어둠과 악,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상은 부모가 아닌 그 개였습니다. 푸른 개는 따뜻하게 불을 피워줍니다. 함께 있어 줍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악과 대항합니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을 때, 푸른 개는 밤을 새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아이를 지킵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아빠는 단 한마디만 합니다. "(개의) 이름을 뭐라고 할까?" 엄마가 아이를 다그칠 때도, 아이의 슬픔을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주려 할 때도 아빠는 이 책에서 부재한 것처럼 그려집니다. 눈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림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단 한순간 아빠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때야 아빠의 눈빛은 따뜻하게 개를 향합니다. 나와 네가 관계를 맺는 순간입니다. 아이에게만 의미 있던 푸른 개는 이제 이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됩니다. 진정한 관계의 시작은 너의 이름을 물어보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가족의 일원이 된 푸른 개는 머리맡에서 샤를로뜨에게 말합니다. "맘 푹 놓고 자.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고 보니 마음을 푹 놓고 잔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늘 스트레스나 분노, 의심과 염려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너 옆에 있어줄게." 어려움과 고난의 순간, 세상은 무채색으로 변하는 듯합니다.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때 단지 옆에 있어 주는 존재는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돌이켜보면 그가 힘들 때 마음 모아 그 옆에 있어주기만 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