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아버지 - 예수의 비유 설교
헬무트 틸리케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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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말과 글은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옵니다. 그 언어가 우리의 일상을 잘 묘사한다면, 더욱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삶과 잇대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더더욱 분명한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흩날리는 글, 탐욕을 부추기는 글, 현란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언어가 난무합니다. 그 가운데 진주를 찾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작가나 설교자를 찾습니다. 마음을 다하며 연구하고 분석한 텍스트를 아름답게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탁월한 신학자이자, 위대한 설교자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신학계에 두각을 나타낸 틸리케는 실제로 반(反) 나치 고백교회 운동에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글과 말은 살아있고, 예리합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비유를 "하나님의 그림책"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이 책의 독일어 원제가 "하나님의 그림책"입니다. 틸리케는 비유가 어려운 비밀로 우리를 이끄는 힘이 있다 말합니다. 청중은 듣지만, 바로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밝히지 않고 감추며, 열지 않고 막습니다.



우리 안에만 머무는 이야기는 우리를 가두어 놓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도 없으며,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틸리케는 "피조물을 묘사한 그림책은 우리를 피조물의 내적인 자기 성찰 안에 감금"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를 아버지께로 안내합니다. 명확하게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세상에 빛을 비추어줍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분명한 이름을 얻게 됩니다. 닫혀있던 것이 열리게 되고, 비밀스럽던 것이 구체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우리는 이름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의 언어와 세상의 이미지를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철저하게 낮아지셔서 우리를 배려하십니다.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줍니다. 따뜻함을 줍니다. 어렵지 않고 쉽게 우리에게 확신을 선물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시끌벅적한 세상의 무대에 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인간의 연약함, 죄로 가득함을 만나게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였음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틸리케의 설교는 독특합니다. 기존에 알았다고 생각하는 본문을 새롭게 만나게 합니다. 너무도 자주 읽고, 설교를 통해 들었던 예수님의 비유가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됩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면을 보여줍니다. 똑같은 본문이라 하여 그것이 동일한 메시지를 던져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내면의 상태에 따라, 혹은 관점의 차이에 따라 본문은 여러 말을 합니다. 틸리케를 따라 성경을 읽다 보면 매우 낯설게 본문을 보게 됩니다.



새롭게 만나게 되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실존과 맞닿습니다. 나의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동안 깊숙하게 감춰두었던 나만의 비밀을 꺼내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나의 겉모습이 아닌 참 자아, 진정한 존재와 대면할 수 있게 만듭니다.



틸리케의 설교는 묘한 매력과 힘이 있습니다. 말씀 앞에 우리를 서게 만듭니다. 허황되고 이상적인 무엇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실제적인 고민에 빠지게 만듭니다.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설교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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