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 자캐오에게 말을 건네다
토마시 할리크 지음, 최문희 옮김 / 분도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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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지냈습니다.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하고,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주일성수나 헌금 생활 등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습니다.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주어진 정답에 따라 행동하려 했습니다.



명확한 선을 긋고, 내부자로 있는 것이 편했습니다. 안전해 보였죠. 간혹 질문이 떠오르더라도 재빨리 떨쳐냈습니다. 불경해 보였거든요. 괜한 어려움을 끼치기가 싫었습니다. 나 하나만 침묵하면 평안한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순간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양한 부류가 있지만 거칠게 표현하자면) 내부자이지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외부자이지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저조차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좌충우돌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복음서를 읽고, 성경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을 가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편협한 시각으로 예수님을 재단하지는 않았는가 돌아보았습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품이 너무도 컸고, 따뜻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놓으시면서까지 말입니다.




체코의 신학자이자 사제이며,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마시 할리크(Tomáš Halík). 그는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자케오에게 말을 건네다』에서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을 환대하시는 예수님에 주목합니다. 외부자도 내부자도 아닌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명확하고 분명한 교리를 원합니다. 체계적이고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확신 말이지요. 하지만 저자는 우리 삶과 세상은 불확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참 신앙은 정답을 제시하기 이전에 인내 가운데 신비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고난과 의심이 우리 삶에 찾아올 때는 우리의 평안이 깨어지는 순간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희미했던 얼굴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상황은 어렵게 흘러가지만, 우리의 신앙은 무한한 신비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실상 복음서의 예수님은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를 택하십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오히려 중심부의 사람과 제도, 그 사회의 지도자들과는 철저한 긴장 상태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가난한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복음서 뿐만 아니라, 바울의 서신도 동일합니다. 바울은 울타리를 뛰어넘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이라는 큰 장벽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방인을 찾고, 이방인을 위해 사역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믿음으로 말이죠.



결국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경 없는 안전한 삶을 허락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이 없는 편안함이 지속되리라 약속하지 않으셨음을요. 오히려 어둠 가운데도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듣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 자신이 경계선에 있음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외부자와 같은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비난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또한 온전하지 못한 사람임을 자연스레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도 질문이 가득하며, 혼란함으로 흔들리는 존재임을 말이죠.



그제야 주변 사람이 보입니다. 아파하는 사람이요.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분들이요.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고 울부짖고 소리치는 사람들 말입니다. 말없이 품어 안아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음을 이제는 잘 알기에 말입니다. 신비의 밤을 인내로 견딘 사람이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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