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은혜와 평화와 구원에 대해 말합니다. 복음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어디에서나 저항과 반대에 부딪힙니다.

복음은 사람을위한 것이지, 사람을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사람이 계획하거나 추론으로 도출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신적 기원을 가지며,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과 욕망, 정욕과 열정을 좇지 않습니다

정신과 마음, 욕구와 의지, 영혼과 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저항합니다

본질적으로 볼 때 복음을 향한 반대는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육신과 세상과 사탄은 항상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에 저항하는 가장 크고 강력한 적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굳건하게 자기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환난의 때에 믿음을 저버리고 그릇된 방법으로 신앙고백을 비틀어버린 수많은 이들의 슬픈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참으로 면목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의 이름을 우리 입술의 고백으로 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고, 도덕적으로 병들게 되고 말 것입니다.

수치심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자신의 특정 행위나 상태가 낮다고 느끼는 불쾌한 감정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복음이 우리에게 선포될 때 오는 선한 감정과 우리 양심의 고소, 악한 행동을 한 후 우리가 직면하는 슬픔, 특정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드러운 감정 등을 부끄러워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칠 때,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우리 자신이 낮아지고 우리의 명성과 명예가 사라지는 것이 어찌 보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공상일 뿐이며, 명예는 상상 위에 세워진 것뿐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우리 자신을 부유하고 풍성한 자로 여기며, 아무것도 필요 없는 자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품을 때에야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었고, 모든 것이 필요한 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계 3:17].

인간과 함께 하는 명예는 대부분 무지와 겉모습의 열매입니다. 칭찬으로 마음을 끄는 기술은 우리의 실제적이고 참된 본성을 감추고, 학습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따라 우리의 의견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참되고 정직하시지만, 모든 인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인간이 항상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본래 거짓을 말하는 자입니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거짓되며 부정직합니다. 실재와 겉모습, 본질과 드러남, 속 사람과 겉 사람은 서로 모순됩니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상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가 바른 빛 가운데서 이런 공상과 상상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부하고, 풍성하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공상과 상상입니다

죄가 가진 가장 두려운 비참함은 우리가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죄는 죄책이고, 부패이며, 수치인데, 그 위에 어리석음과 무지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길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런 상상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뜻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다는 사실과,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유일한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모든 것, 즉 우리의 명성과 명예, 우리의 소유와 피, 우리의 영혼과 생명을 버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욕구는 외관상 자신의 모든 권세와 능력과 더불어 사람을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복음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8:7].

육신을 따르는 인간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인간은 우리 자신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참되고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수치심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자신의 특정 행위나 상태가 낮다고 느끼는 불쾌한 감정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복음이 우리에게 선포될 때 오는 선한 감정과 우리 양심의 고소, 악한 행동을 한 후 우리가 직면하는 슬픔, 특정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드러운 감정 등을 부끄러워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칠 때,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우리 자신이 낮아지고 우리의 명성과 명예가 사라지는 것이 어찌 보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공상일 뿐이며, 명예는 상상 위에 세워진 것뿐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우리 자신을 부유하고 풍성한 자로 여기며, 아무것도 필요 없는 자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품을 때에야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었고, 모든 것이 필요한 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계 3:17].

인간과 함께 하는 명예는 대부분 무지와 겉모습의 열매입니다. 칭찬으로 마음을 끄는 기술은 우리의 실제적이고 참된 본성을 감추고, 학습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따라 우리의 의견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참되고 정직하시지만, 모든 인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인간이 항상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본래 거짓을 말하는 자입니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거짓되며 부정직합니다. 실재와 겉모습, 본질과 드러남, 속 사람과 겉 사람은 서로 모순됩니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상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가 바른 빛 가운데서 이런 공상과 상상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부하고, 풍성하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공상과 상상입니다

죄가 가진 가장 두려운 비참함은 우리가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죄는 죄책이고, 부패이며, 수치인데, 그 위에 어리석음과 무지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길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런 상상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뜻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다는 사실과,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유일한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모든 것, 즉 우리의 명성과 명예, 우리의 소유와 피, 우리의 영혼과 생명을 버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욕구는 외관상 자신의 모든 권세와 능력과 더불어 사람을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복음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8:7].

육신을 따르는 인간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인간은 우리 자신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참되고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모든 참된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성령의 사역의 열매인 마음의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다 성취하셨다 할지라도, 만약 승천 이후에 모든 진리로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지 않으셨더라면 그리스도의 사역은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세상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확신케 하시며 그리스도를 증언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주요 교회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교회 공동체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증언하십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전능한 권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 굳어졌던 마음이 깨지고, 가장 완고했던 무릎이 구부러지며, 가장 큰 소리를 외쳤던 입이 닫힙니다.

성령의 증언 앞에 우리의 생각과 사상들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거품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 마음에 심어진 믿음이 불신앙에 대한 다양한 유혹에 직면할 때, 이 믿음을 말과 행실로 드러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계속 필요합니다.

담대히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용감함은 말씀을 맡은 사역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이 담대함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증언하는 것, 믿음을 굳게 하고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담대함의 근거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복된 확신과,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간구할 수 있다는 자유에서 비롯됩니다.

이 담대함은 성경과 교회 역사에서 언급되는 용감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고백자들의 수많은 예를 통해 우리 안에서 더 단단해집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들은 결코 홀로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서 자신이 버림받고 홀로 서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인류의 핵심이자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시류를 거슬러 노를 젓고,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복음을 위한 것이라고 속이면서 하는 악한 말들을 견디기 위해 분명히 필요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저들과 함께하는 자들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왕하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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