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통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서로의 상황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어느 정도의 소통은 일어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동반된다. 혹여나 서로의 성향이 잘 맞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소통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관계가 조물주와 피조물이라면 어떻겠는가? 직접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 초월하는 실체와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어렵다. 영적 실재와 어떻게 대화할 수 있겠는가? 



본래 인간은 영적 존재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장 잘 반영한 존재였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인간은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창조 세계인 만물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음에도 우리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썩어져 가는 것들로 달려갔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인간은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오직 그분만이 썩는 것을 썩지 않는 것으로 만드실 수 있다.      



말씀이신 그분은 인간의 비참함을 보셨다. 그분은 범죄로 인해 형벌받는 인간의 고통을 모른 체하실 수 없으셨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 고통을 친히 담당하셨다. 그분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모든 저주를 끊어내어 주셨다.     



인간의 죄로 인해 가로막혔던 하나님과의 소통이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었다.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인간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담대함을 얻게 되었다. 이제 더는 죽음은 우리를 옭아맬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는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그는 당시의 잘못된 견해들을 과감하게 배척하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왜 인간이 되셔야만 했는지를 훌륭하게 논증한다.



그는 만물의 창조와 인간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성육신을 논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비참함과 인간이 처한 곤경이야말로 성육신의 결정적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날카롭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또한 핵심적 사항을 요약하고 반복하며 이해를 돕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다.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이 짧은 이 책에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있는 소망을 변호할 말을 준비하라 했다(벧전 3:15).



오랫동안 여러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살아 남아 우리에게 살아 있는 복음을 전해 주는 책을 고전이라 한다면.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비하여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다.



더하여 C. S 루이스의 서문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외침이다. 아타나시우스의 글과 C.S 루이스의 서문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최고의 가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03-31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S. Lewis 는 서문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데, 자신의 저서가 아닌 책은 그렇지 않나봐요.
C.S Lewis 의 이름이 반가워서...^^

모찌모찌 2021-03-31 17:23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루이스 책 읽은지 넘 오래되서 서문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ㅎ 암튼 이 책 서문은 참 좋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