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술과 시가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더라도 또한 그것들이 서로 비슷하다 할지라도, 웅변술은 시보다 훨씬 고등한 것입니다.

참된 웅변술은 양심을 뒤흔드는 것 이상을 목표합니다. 웅변술은 사람의 의지를 움직이기 위해 그의 지성과 마음을 관통하려 합니다.

웅변술에서 말은 우선 최고의, 개혁하는, 재창조하는 권세에 접근합니다. 그것은 근원적이며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가깝게 다가갑니다.

복음 설교자는 자신의 청중들에게 하나님과 반드시 화목해야 할 것을 간청해야 합니다.

웅변술은 탄원이며 드라마이자 행동입니다. 결국 웅변술은 이 모든 것을 다 합친 것 그 이상입니다.

웅변술은 투쟁이요 분투입니다. 설교자는 반드시 자신의 청중과 씨름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반드시 청중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는 청중들이 스스로 포기하고 그들 자신을 내어줄 때까지 이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모든 반대를 제거하고 모든 핑계를 물리치고 모든 탈출구를 봉쇄해야 합니다.

말씀 사역의 엄중함과 무거운 책무는 그 설득의 과업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며 그 무엇보다도 논증과 예증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인간의 의지는 그렇게 해서는 꺾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의지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시기 때문에, 오직 그것으로 인하여 웅변술의 설득력 있는 요구는 비로소 설교자가 책임질 수 있는 과업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 설교에는 성령의 역사가 동반되기에, 목사의 말은 그저 성령의 전능한 손 안에 있는 수단일 뿐입니다.

거짓과 죄는 진리와 거룩함의 옷을 강탈할 수 있고 마치 빛의 천사들처럼 옷 입을 수도 있지만, 진리는 본질적으로 우아합니다. 진리는 그 단순성의 미덕으로 인해 아름답습니다.

진리는 화려한 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웅변은 오직 자유로우며 그 본성에 따라 진리와 거룩함을 섬길 때만 가장 높은 승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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