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한 반응보다 목회 사역과 인본주의 전통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도 없다.
목회자는 다른 사람의 슬픔에 간섭하거나 그것을 조작할 권리가 없다.
고통은 우리가 특별히 은총에 쉽게 노출되고 하나님의 여러 차원과 깊은 자아의 내면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다.
고통을 하나의 ‘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인접한 문명권과는 달리 애가에서는(성경에서는!) 신적 분노의 결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준다는 주문이나 주술적 행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기교’를 습득하려는 태도에 대한 경고나 다름없다
고통을 다루는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목회자들은 훈련이나 기질에 의해 행하는 사람, 고치는 사람들이다.
고통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답을 주지 않는다. 치료제를 제공하지 않는다.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
애가에서는, 목회 사역의 피할 수 없는 일부인 고통에 대해 "도우려고" 노력하는 대신 고통스럽고 끈질기게 그것을 대면하는 일을 목회 사역의 기초로 삼는다
목회자로 하여금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확실히 익히게 함으로써 애가에서는 목회 사역에서의 "오래 참음"을 권면하며,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의미와 존엄성을 부여하고, 치유하는 일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맡긴다.
애가의 권면을 따를 때 목회자는 고통에 관해서 훨씬 덜 하면서도, 목회 사역에는 훨씬 더 큰 힘을 얻을 것이다.
목회자는 고통당하는 사람을 고치라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목회 사역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거짓된 겸손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고치는 일에 몰두하는 것보다 그 사람에게 더 모욕적인 행동은 없으며, 단호하지만 고요하고 신실한 태도로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아침을 기다리는 그 시간 내내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보다 고통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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