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분명한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설교는 모인 사람들이 쓰는 말로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찬송은 예배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모든 시간과 장소와 하나님 백성을 이어주는 기도와 찬양이 되게 했다.

성찬대와 세례반에서 취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를 실질적이며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기도는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만들어냈다.

매주 주일 예배는 혼돈의 물을 나누고 그 물이 명령에 따라 좌우로 갈라져 사람들이 승리를 기뻐하며 그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게 한다.

한 시간 동안 모든 진리는 균형 잡혀 있고 동시대적이며 완전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확증되고 받아들여진다

많은-아마도 대부분은 아닐 테지만-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구원의 징조와 축복의 연속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본당 입구에서는 교인들의 죄는 한 주간 목회자의 심방과 상담, 위로와 가르침을 위한 제목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러한 전환은 갑작스러우며 폭력적이고 어렵다.

본당 입구는 언약 안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개인적 삶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와 하나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목회적 관심을 집중하는 공간이다.

교회에서 선포하는 메시지는 대개 분명하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며, 모든 개인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라는 줄기에 접붙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독특한 상황 때문에 자신에게는 일반적인 진리가 적용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계시 이야기가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목회자는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는 장엄한 이야기의 한 장, 혹은 적어도 몇 단락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통찰을 제공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가난한 이방인 과부 룻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반증이다. 그는 중요하지 않은 이방인이었지만, 완전한 구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이 필수적이다.

룻은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였다! 룻기는 뿌리를 잃고 비천하고 소외된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가 보잘것없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그 줄거리가 만들어진 거대한 서사시에 꼭 필요한 한 부분임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순절에 읽도록 정해진 룻기는 분명히 목회적인 문서가 되었다. 오순절의 케리그마적 주제는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의 계시다

백성의 삶은 임의적이며 우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경험의 연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야기였다. 줄거리와 구조, 목적, 의도가 존재했다. 각 사람의 삶의 모든 세부사항은 더 큰 이야기의 일부이며, 더 큰 이야기는 곧 구원이다.

시내산 사건은 두 기본적인 현실을 결합하는 일종의 회전축이다. 하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내가 포함된다는 것(선택)이며, 따라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중요하다는 것(언약)이 두 번째이다.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중요하다.

선택은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내며, 언약은 책임 있는 관계를 묘사한다.

선택은 하나님이 나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선언이며, 언약은 내가 하는 일들이 어떻게 이 계획에 맞아 들어가는지에 관한 설명이다.

하나님의 행위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우리 삶은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결과(consequence, ‘결과’라는 뜻과 ‘중요성’이라는 뜻을 모두 가짐-옮긴이)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하다consequential.

우리는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는지 그렇지 않는지가, 우상을 만드는지 그렇지 않는지가, 살인하거나 도둑질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등등이 중요하다.

시내산 계시는 우리가 중요하며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이다.

역사가 의미 있는 까닭은, 그 안에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시내산은 백성이 순례를 찾아간 특별하고 거룩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이 명확히 드러나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응답했을 때 그들이 우연히 그곳에 있을 뿐이다. 거기서 결단이 이뤄졌으며, 그러므로 그것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세계 최초의 역사가들이었다. 날마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신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들은 신앙이든 불신앙이든, 죄든 의로움이든, 순종이든 반역이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확실한 것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 모두가 의미를 지니며, 그 의미가 상호작용을 하고 이야기의 내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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