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대한 이해는 또한 종교적 암을 영적 성장으로 오인하는 것을 막아준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 경제 속에서 우리는 생각 없이 숫자의 관점에서 진보를 평가한다

우리는 성장이 산술적 은유가 아니라 생물학적 은유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생물학에서 성장은 시기, 수동성, 기다림, 비율, 성숙과 연관이 있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크기가 있다. 비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성장이라는 과정은 매우 복합적이고 신비롭다

모든 회중은 자신에게 알맞은 비율과 균형, 크기가 있다. 장소와 조건이 다른 회중은 비율과 크기도 다르다. 그 크기를 바깥에 있는 사람은 결코 정할 수 없지만, 지혜로운 목사라면 그 한계를 생각하고 존중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적절한 크기가 있다. … 넘어서는 안 되는 단위가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았는데, 유명한 그리스어 ‘메덴 아간meden agan’은 도를 넘지 말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단위에 대한 감각, 말을 조심하고 자신의 경계를 아는 것에 대한 감각을 우리는 완전히 잃어버렸다.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의식할 때에만 강하다. 그렇지 않으면 프로메테우스처럼 하늘의 독수리에게 간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지금은 하늘의 독수리도 없고, 프로메테우스도 없다. 대신에 우리는 암에 걸린다. 암은 선진 문명의 주요 질병이다.

말을 조심하는 것, 즉 한계에 대한 건강한 존중은 목사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한 열정은 인간의 한계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멈추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강렬하게 활동하실 때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간섭하지 않기 위해서 신중해야 하고 말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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