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마땅히 되어야 할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그를 미워하는 것은 위험하고도 쉬운 일이다. 우리가 먼저 그의 존재 자체를 존경하지 않으면 결코 그가 마땅히 되어야 할 그 사람이 될 때까지 그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성급함은 그를 아예 죽여버릴 것이다."
게다가 회중은 목사의 계몽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멍청이가 아니다. 잘난 체하는 태도는 적대적인 태도보다 더 나쁘다.
회중은 표토이다. 죽음을 흡수하고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에너지와 유기물로 부글거리는 표토이다.
그것을 대하는 유일하게 성경적인 자세는 외경심밖에 없다
우리 앞에 무엇이 있는지, 정말로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볼 때 목사들은 회중의 쉐키나 앞에서 신을 벗는다.
모든 교구가 다르다. 각 영혼이 다른 것보다 더 다르다. 교구는 영혼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저쪽에서 효과가 있는 것을 이쪽에서 쓸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야심은 가득하지만 하나님을 공경하지는 않으며, 하나님에 대해 불경하기 때문에 회중에 대해 불경하다.
삶이 더 지역적일수록 더 강력하고 다채롭고 풍성하다는 통찰로 이끈다. 거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울타리는 경계이고 장소를 규정해준다. 어떤 것이 내 것인지를 알면 내 것이 아닌 것도 알고 그래서 이웃으로 살 수 있다.
우선, 우리가 우선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우리의 임무가 된다.
우리가 교구에만, 우리 회중에만 머물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면 그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목사는 ‘행동’이 있는 곳에 있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려도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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