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전복적 존재임을 기억한다. 나의 장기적 효율성은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를 들키지 않는 데 달려 있다.

나는 새로운 방법론을 배워야 했다. 진리를 말하는 것, 사랑하는 것, 기도와 비유를 배워야 했다

자아의 나라는 강력하게 방어진을 치고 있는 영토다.

대부분의 죄는 단순한 도덕적 과오이거나 나약한 의지가 아니라, 비싼 비용을 들여 열심히 세운, 하나님을 막는 방어벽이다.

죄를 직접 가격하는 것은 마치 망치로 못을 박는 것과 같다. 못은 더 깊숙이 박힐 뿐이다.

때로 예외도 있고, 전략적으로 지시된 대결도 있지만, 성경이 선호하는 방법은 간접적인 조치다.

예수님은 체제 전복의 대가이셨다.

랍비는 중요한 존재이지만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다.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연설 형식인 비유도 전복적이었다. 비유는 평범한 이야기로 들린다.

비유는 전복적으로 우리의 방어벽을 슬쩍 넘어 들어간다. 그러나 일단 성 안으로 들어오면 방법이 달라져서 갑자기 총검을 휘두르고 결국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리 예상과는 달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인격이 존중되고 보존된다. 하나님은 밖에서 강제로 자신의 실재를 우리에게 부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안에서부터 꽃과 과일을 길러내신다.

하나님의 진리는 외부의 침입이 아니라 사랑에 찬 구애이다.

평범한 우리 생활은 그 나라에서 잉태와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씨앗이다.

비유는 우리의 상상력을 신뢰한다

전복은 세 가지를 함의한다. 하나는 현재 상황이 잘못되었고 그것을 타도해야 이 세상이 살만해진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너무 심하게 잘못되었기 때문에 보수는 소용이 없다.

둘째, 살만한 다른 세상이 태어나려 하고 있다.

전복자는 이상주의적 꿈이 아니라, 실제 세상의 본질에 대한 확신에 따라 행동한다.

셋째, 군사력이나 민주적 선거처럼 한 나라가 타도되고 다른 나라가 세워지는 일반적 방법은 쓸 수 없다.

예수님은 진리이면서 동시에 길이시다. 복음이 전달되는 방법도 제시되는 진리와 마찬가지로 그 나라의 한 부분이다.

불행히도 목사들은 전복이라고 하는, 끊어진 적이 없는 이 성경적 방법론을 손쉽게 폐기하고 대신에 공격이나 선전을 택할 때가 많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럴 수 있는데, 바로 허영과 순진함이다.

허영. 우리는 잔치가 열리는 세상에서 짝도 없이 한쪽 구석에 서 있고 싶지 않다

순진함. 우리는 교회를 이미 하나님나라로 생각하고 더 잘 조직하고 동기부여만 잘하면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성경이나 역사 그 어디에도 교회가 하나님나라와 동의어였던 적은 없다.

교회는 많은 경우 세상보다 더 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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