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칭의 교리 말고도 갈라디아서 속에 있는 심오하고 다채로우며 풍성한 내용이 그에 걸맞은 관심과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은 아쉽다.

? 바울은 왜 갈라디아서를 썼는가?

? "할례받을 필요가 없다neednot"는 주장과 "할례받으면 절대 안 된다mustnot"는 주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 바울이 이방인 남성 신자의 할례와 "율법의 행위들"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 이신칭의 가르침이 어떤 상황과 문맥에서 등장하는가?

? ‘의롭게 됨(혹은 의롭다고 여겨짐)’, ‘믿음’, ‘율법의 행위들’ 등 갈라디아서의 키워드는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 믿음과 행함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 ‘그리스도와 연합’ 또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은 정확히 어떤 현상을 말하는가?

? 갈라디아서 5장과 6장의 권면은 1-4장의 신학적 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이 책을 읽고 나서 갈라디아서를 다시 읽을 때 "이 부분은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독자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내용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독자 자신이 질문을 던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을 읽으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질문은 모두 좋은 질문이다. 이 책이 날 선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보여 주었기를 바란다.

또한 바울이 어느 부분에서 억지를 부리는지, 그의 주장 중에 어떤 것이 설득력이 부족한지 독자 스스로 정직하게 느끼며 판단하면 좋겠다.

갈라디아서가 특정 시대에 특정한 교회의 특정한 문제를 다룬 상황적 편지라는 사실, 고대인의 의사소통 방법, 고대인의 세계관, 이 세 가지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읽을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가 저술될 당시의 맥락에서 파악한 뒤에 교리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른 순서이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쓴 다른 편지와 비교할 때 두드러진 점이 몇 가지 있다. 갈라디아서를 제외한 다른 편지를 쓸 때 바울은 당시의 편지 쓰기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 편지들은 편지 발신자와 수신자에 대한 정보(예: 바울이 디모데에게)에 뒤이어 감사의 표현이나 건강 기원 등을 담고 있었다.

갈라디아서 도입부에서 바울은 이러한 관행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그는 감사 표현 대신 저주를 써넣었다. 그것도 두 번(1:8-9)이나! 갈라디아서가 회중 앞에서 처음 낭독될 때 갈라디아 회중은 자기들의 관습적 기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 대목에서 무척 놀랐을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전복적 의미가 곳곳에 박힌 구약해석, 독특한 은혜 이해, 복음 설명, 일반적이지 않은 율법 이해, 새로운 기반 위에 쌓은 윤리적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중심에 청자의 두려움을 자극하여 자신의 편에 서게 하려는 바울의 계산된 수사법이 있다.(수사법은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수사학에서 도출된 기술이다.) 편지 도입부의 저주문구는 그가 사용한 수사법의 한 예이다.

1장을 채우는 주제는 바울 사도직의 신적 기원과 권위, 회심 전과 후 바울 삶의 극적 변화, 그리고 예루살렘 사도들과 미묘한 관계이다. 이러한 굵은 씨줄에, 본론에서 자세히 다룰 은혜의 본질, 복음의 규범성(복음은 순종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율법 이해, 갈라디아 교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진단이 희미한 날줄의 형태로 엮여 있다.

바울은 그의 사도직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직접 임명된 것이며,자신이 전한 복음만이 유일한 복음이라고 강조한다(1:7-9, 11 참고). 이 주제는 1장을 지배한다

바울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면 바울의 복음은 ‘절대적 권위’가 있다는 말이 된다. 즉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이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먼저 예수의 죽음을 우리 죄들을 위해 자신을 ‘주신’ 행위로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표현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유사 단어(‘넘겨 주심’)로 다시 등장하며, 이어지는 21절에서 이 특별한 표현을 쓴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사건’이 지닌 선물의 측면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넘겨) 주신 행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값진 하나님의 선물이고, 따라서 무효화될 수 없으며 무효화해서도 안 된다. 이 신학적 사실과 당위성으로부터 바울은 의로움이 율법을 통해 올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자기-주심과 은혜의 관계, 그리고 은혜와 칭의의 관계를 스케치 정도로만 남겨 둔다. 그리고 나중에 편지 본론에서 자세하고 복잡한 논증을 통해 이 관계들이 규명된다.

"현재의 악한 세대로부터 집어내시기 위해" 예수께서 돌아가셨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현시대의 악한 손아귀에서 우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다시 말해 우리가 악한 시대와 분리된 채 살아가도록 예수께서 돌아가셨다.

바울은 편지의 초두부터 그리스도 죽음의 의미를 기반으로 신학(구원론)과 윤리(현재의 악한 세대를 거슬러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하나로 엮어 말한다.

5-6장에서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열매를 논하는 것은 결코 이 중요한 신학적 편지의 부록이 아니다.

믿음은 삶으로, 특히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5:6).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사건’ 안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뜻이다(1:4).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쓴 다른 편지와 비교할 때 두드러진 점이 몇 가지 있다. 갈라디아서를 제외한 다른 편지를 쓸 때 바울은 당시의 편지 쓰기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 편지들은 편지 발신자와 수신자에 대한 정보(예: 바울이 디모데에게)에 뒤이어 감사의 표현이나 건강 기원 등을 담고 있었다.

갈라디아서 도입부에서 바울은 이러한 관행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그는 감사 표현 대신 저주를 써넣었다. 그것도 두 번(1:8-9)이나! 갈라디아서가 회중 앞에서 처음 낭독될 때 갈라디아 회중은 자기들의 관습적 기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 대목에서 무척 놀랐을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전복적 의미가 곳곳에 박힌 구약해석, 독특한 은혜 이해, 복음 설명, 일반적이지 않은 율법 이해, 새로운 기반 위에 쌓은 윤리적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중심에 청자의 두려움을 자극하여 자신의 편에 서게 하려는 바울의 계산된 수사법이 있다.(수사법은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수사학에서 도출된 기술이다.) 편지 도입부의 저주문구는 그가 사용한 수사법의 한 예이다.

1장을 채우는 주제는 바울 사도직의 신적 기원과 권위, 회심 전과 후 바울 삶의 극적 변화, 그리고 예루살렘 사도들과 미묘한 관계이다. 이러한 굵은 씨줄에, 본론에서 자세히 다룰 은혜의 본질, 복음의 규범성(복음은 순종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율법 이해, 갈라디아 교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진단이 희미한 날줄의 형태로 엮여 있다.

바울은 그의 사도직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직접 임명된 것이며,자신이 전한 복음만이 유일한 복음이라고 강조한다(1:7-9, 11 참고). 이 주제는 1장을 지배한다

바울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면 바울의 복음은 ‘절대적 권위’가 있다는 말이 된다. 즉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이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먼저 예수의 죽음을 우리 죄들을 위해 자신을 ‘주신’ 행위로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표현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유사 단어(‘넘겨 주심’)로 다시 등장하며, 이어지는 21절에서 이 특별한 표현을 쓴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사건’이 지닌 선물의 측면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넘겨) 주신 행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값진 하나님의 선물이고, 따라서 무효화될 수 없으며 무효화해서도 안 된다. 이 신학적 사실과 당위성으로부터 바울은 의로움이 율법을 통해 올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자기-주심과 은혜의 관계, 그리고 은혜와 칭의의 관계를 스케치 정도로만 남겨 둔다. 그리고 나중에 편지 본론에서 자세하고 복잡한 논증을 통해 이 관계들이 규명된다.

"현재의 악한 세대로부터 집어내시기 위해" 예수께서 돌아가셨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현시대의 악한 손아귀에서 우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다시 말해 우리가 악한 시대와 분리된 채 살아가도록 예수께서 돌아가셨다.

바울은 편지의 초두부터 그리스도 죽음의 의미를 기반으로 신학(구원론)과 윤리(현재의 악한 세대를 거슬러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하나로 엮어 말한다.

5-6장에서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열매를 논하는 것은 결코 이 중요한 신학적 편지의 부록이 아니다.

믿음은 삶으로, 특히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5:6).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사건’ 안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뜻이다(1:4).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인간에게서 연원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복음"(1:7)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은 이들은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켰다."

감정, 권위, 세간의 인정, 청자와의 관계 등 여러 요소가 화학 작용을 이루어야 설득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갈라디아 회중과 가까이에서 직접 소통할 수 있었던 "복음을 변질시킨 자들"은 확실히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던 바울이 선택한 설득 방법은 감정에 호소하는 수사학, 더 정확히는 청중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논법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 즉 그리스도의 유일한 복음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음을 천명한다.

광의의 맥락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절대 침해될 수 없는 바울 복음의 규범성normativity은 바울이 선언한 저주를 통해 보전된다.

갈라디아서는 편지이고 그 안에 이중으로 저주 문구가 적혀 있기 때문에 이를 읽는 자 중에 혹 바울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바울 복음에 걸맞지 않게 사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된다.

복음이 은혜를 통해 가져다준 복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므로,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고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이 곧 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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