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진실을 말하는 법을 배울 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교육은 어디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게 인간 된 도리라는 암시조차 주지 않는다. 오히려 전혀 다른 말을 한다. 거짓말하지 않는 게 인간 된 도리라고 말이다.

이 잘못된 풍토가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 이제 우리는 이 둘이 다르다는 사실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해!"라고 할 때도 어디까지나 부정확한 표현을 삼가라는 뜻으로 하는 말일 뿐이다.

진실을 말할 것, 전체적인 상황을 공정하게 이야기할 것, 정보를 잘못 전달하지 말 것, 얼버무리지 말 것, 정보를 숨기지 말 것,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 ‘그럴듯한 주장’을 입에 담지 말 것, 한쪽에 치우친 견해를 증명하기 위해 뻔뻔하게 정보를 취사선택하지 말 것, 진짜로 열불이 났으면서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인 척하지 말 것, 그저 제 잇속을 따져 움직이면서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척 속이지 말 것.

우리가 아이들에게 절대 가르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결코 우연히 배울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건의 실상이 존재한다는 점, 실상을 알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할 때 행복해진다는 점이다.

신앙을 제일로 여기던 옛 종교인들은
도덕적 진리를 위해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고문했다.
실익을 중시하는 요즘 현실주의자들은
육체적 진리를 위해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고문한다.

정말로 중요한 건
어느 편에서 싸웠는지다.

개혁한다는 건
형태가 찌그러진 무언가를 보고
모양을 잡으려 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 모양이 어떤 건지는 이미 알고 있다.

진화나 진보라는 단어를 붙들고 말씨름할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개혁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reform’이라는 단어에는 ‘form’이 들어 있다.

알아서 전개되는 게 진화고, 대개 잘못된 길일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거나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게 진보라면, 개혁은 이성적이고 단호한 인간을 상징한다.

미신과 사회 여건에 영향받지 않도록
커다란 호수 한가운데 있는 외딴 섬에서
홀로 아이를 키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섬과 호수와 외로움을 선택하는 것이다.

종교를 선택하지 않아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을 선택하지 않고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종교를 배제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곧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독히도 음침하고 기괴한 환경.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누구나 자유롭게
종교에 관해 논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구도 종교를
입에 올릴 수 없다는 뜻이다.

박해의 본질은 스미스필드에서 자행된 고문이나 화형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재물로든 벼슬로든 그 나라에서 권력을 쥔 자가 시민들이 믿는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나 철학으로 시민들을 지배하는 것, 이것이 박해의 본질이다.

새해의 목적은 새해를 맞이하는 데 있지 않다. 영혼과 코, 발과 척추, 귀와 눈을 새롭게 하는 것, 바로 여기에 새해의 목적이 있다. ‘새해 결심’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결심도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 없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이후의 삶을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이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효율’이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행동이 이루어진 뒤에라야 그 행동이 효율적이었는지 비효율적이었는지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그 일에 대한 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효율에는 선택권이 없다. 행동이 완료된 뒤에라야 성공인지 실패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을 시작하려면 개략적으로라도 옳고 그름이 있어야 한다.

승자를 응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응원받는 그 순간에 그는 승자가 아니었으므로. 이긴 편에서 싸운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싸움이란 본래 어느 쪽이 이길지 알아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성공에 집착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나른한 감상주의자일 것이다. 늘 뒤를 돌아보아야 할 테니 말이다. 그저 승리만을 좋아한다면, 항상 전투에 늦으면 된다.

용기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용기는 죽을 각오로 살기를 바라는 강렬한 열망을 의미한다.

적에게 에워싸인 군인이 무사히 탈출하려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와 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함께 필요하다.

삶에 대한 집착만으로는 안 된다. 삶에 집착하면 겁쟁이가 될 테고, 그러면 탈출을 감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는 지독하게 무심한 태도로 살고자 해야 한다. 물을 갈구하듯 삶을 갈망하고, 포도주를 마시듯 죽음을 들이켜야 한다.

기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눈길을, 빗길을 조심조심 걷게나
길은 아주 단순하지만,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아이처럼 논다는 말은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심각하고 중요한 일인 양 논다는 뜻이다. 해야만 하는 허드렛일이나 작은 걱정거리라도 생기면, 그렇게 거대하고 야심 찬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어른들에게는 정치와 상업, 예술과 철학에 쏟을 힘은 있어도 놀 힘은 없다.

하지만 과거를 직시하려면 진짜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는 도저히 잊을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사실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직시하는 이들은 우리보다 현명하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사람들이 분명하다.

우리 주위에 위인이 없는 주된 이유는 우리가 늘 위인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떠받들 위인을 찾느라 손과 무릎이 바쁜 사람은 절대 위대해질 수 없다.

디오게네스가 뭘 잘못했느냐고? 그의 잘못은 너무도 명백하다. 디오게네스는 모든 인간이 정직한 동시에 부정직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위선자는 몹시 불행한 사람이다.

가장 정교하고 고된 지적 예술에 온 힘을 쏟은 끝에 아무도 모르게 걸작을 완성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투에 임하여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머쥐어도 칭찬 한마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능수능란한 사기꾼은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천재요,
무인도에 사는 나폴레옹이다.

세상에는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는
말들이 있는데,
살다 보면 그런 말을 꽤 자주 듣게 된다.

멀쩡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신중하게 내릴 수 있는 정의는 하나뿐이다.

멀쩡한 사람이란 가슴에는 비극을,
머리에는 희극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다.

예술가적 기질은
아마추어들을 괴롭히는 병이다.

톨스토이식 해석을 지지하는 자들은 사자가 어린양과 함께 누우면 어린양처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양이 주도한 악랄한 합병이자 제국주의다. 사자가 양을 먹어 치우는 대신 양이 사자를 흡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사자는 과연 어린양과 함께 누워서도 당당하고 흉포한 성질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교회가 풀려고 했던 문제이자 교회가 이루어 낸 기적이다.

겸손은 자신을 점으로 줄이는
화려한 기술이다.
작은 점 혹은 큰 점이 아니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가 아예 없는 점.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 복잡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우주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갖가지 특성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자기에게 살짝 짐승 같은 면도 있고, 악마 같은 면도 있고, 성자 같은 면도 있고, 시민 같은 면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로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자기에게 약간의 광기가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러나 미치광이가 자기는 멀쩡하다고 굳게 확신하듯이, 유물론자의 세계는 몹시 단순하고 견고하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네가 나를 때리지 않으면 나도 너를 때리지 않을게"라고 말하면서 도덕이 시작된 게 아니다. 이런 거래가 있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 거룩한 곳에서는 우리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 말자. 그래선 안 된다"라고 말한 흔적은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지킴으로써 도덕성을 얻었다.
그들은 담력을 기르지 않았다.
성지를 지키기 위해 싸웠더니 자기도 모르게 용감해졌다.
그들은 깨끗해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제단에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였더니,
자기도 모르게 깨끗해졌다.

칠면조의 삶과 죽음은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나, 스크루지의 영혼과 크래칫의 몸은 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바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관념적 지식을 위해 인간의 가정을 불행하게 하지도, 축제를 망치지도, 선물과 선행을 모욕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직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본래 다 위험한 법이라네.
나도 한때는 그랬었지."

겸손은 주로 인간의 오만과 끝없는 욕구를 억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에게는 늘 새로운 욕구가 생겼고, 새로운 욕구가 자비심을 웃돌기 일쑤였다. 향락의 위력이 기쁨의 반을 망가뜨렸다. 인간은 즐거움을 쫓아다니다가 가장 큰 즐거움을 잃었다.

자기가 사는 세상을 키우고 싶으면 스스로 작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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