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의 저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였으며 그들의 목표는 독자들이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 P15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사실은 이 책들이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려주기‘ 위해 쓰였다는 것입니다. - P15
청중이 낭독되는 이야기를 잘 따라가도록 돕는 방법이 있습니다. 짧고 선명한 문장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 P16
이야기 중간에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비슷하게 들리는 말을 자주 사용해 듣는 이들이 명확하게 알아듣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 P16
관객들은 사건의 전모를 이해했지만, 극속의 인물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청중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바로 사건의 의미를 열어젖히는 정보, 극의 의미를 여는 열쇠를 이야기의 시작, 곧 프롤로그에서 이미 전해 받았기 때문입니다. - P20
그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듣기를 원했고, 자신이 강조하는 예수의 특정한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랐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보았다면 놓쳤을지도 모를 부분들에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 P22
성서에서 ‘복음‘은 매우 특별한 ‘기쁜 소식‘을 뜻합니다. 70인역 성서역본에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다"라는 말은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일을 뜻합니다. - P26
마르코는 이 말을 통해 자신이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음을 독자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인 메시아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P26
이어지는 마르코의 드라마에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묻는 다양한 물음이 등장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 주어집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이 올바른 대답임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처음부터 우리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들었습니다. - P38
우리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가 하느님 같음을, 하느님의 특성과 권한을 가졌다고 말하는 동시에 예수가 왕, 혹은 이스라엘의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P39
특별한 관계를 지칭하는 이 1세기 개념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순종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 P39
예수는 하느님을 충분히 기쁘게 해드렸기에, 우리는 그가 하느님께 철저하게 순종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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